보이지 않아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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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알아요
  • 김규리 기자
  • 승인 2022.11.0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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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본관 별동에 설치되있는 점자 안내판
대학본관 별동에 설치되있는 점자 안내판

 

언어는 생각과 느낌을 나타내고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자, 음성, 몸짓, 또는 그 사회 관습체계를 뜻한다. 단순히 목에서 내는 소리와 눈으로 보는 모양뿐만 아니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 간의 약속까지 포함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한글과 함께 사용되는 언어가 있다. 바로 점자다. 이번달 4일 점자의 날을 맞이해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점자에 대해 알아보자. 점자는 볼록 튀어나온 점을 손가락 끝으로 만져 읽는 특수 문자다. 점자의 체계는 6점식으로 6개 점이 가로 2개 세로 3개로 나열돼 한 칸에 들어간다. 자국어 점자를 만들어 사용하는 모든 국가에서 공통으로 채택하고 있다. 점의 모양은 개수와 위치로 구별하며 점형이라 한다. 점의 위치는 점형의 중요한 요소로 한 칸을 구성하는 각각의 점에 번호를 매겨 구분한다. 왼쪽 위에서 아래로 1점, 2점,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점, 5점, 6점이다. 만들어 낼 수 있는 점형은 총 64개고 점이 하나도 찍히지 않은 경우를 제외한 점형 63개를 이용해 문자를 표기한다.


뿌리를 찾아서
점자의 시작은 프랑스에서 군사용으로 개발한 12점식 점자이다. 어두운 밤에 불빛 없이 암호를 해독할 방법을 고안한 것이다. 이후 파리맹학교 교사 루이 브라유는 더 읽기 쉬운 지금의 6점식 점형를 창안했다. 여섯 점으로 된 점형은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한 번에 모든 점의 위치를 읽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브라유는 점자 체계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역사 교과서를 점자본으로 출판했지만 당시 파리맹학교 교사들의 반대로 학교에서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점자를 몰래 사용해 공부한 학생들의 성적이 사용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월등히 좋아 유용성이 입증돼 1854년부터 파리맹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점자를 사용하게 됐다. 파리맹학교에서 점자를 문자로 공인한 것은 점자가 세계 시각장애인의 문자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위대한 시작, 훈맹정음
우리나라는 평양에서 1898년부터 점자를 사용했다. 미국인 홀(R. S. Hall) 선교사가 뉴욕 점자를 토대로 평양 점자를 창안하고 맹여학생에게 가르쳤다. 평양 점자는 4점식으로 자음의 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아 우리나라 점자로 정착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렇지만 평양 점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점자이고 약 28년 동안 시각장애인용 문자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1913년 조선총독부에서 제생원을 설립하고 일본 점자를 가르쳤다. 송암 박두성 선생은 당시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일본 점자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현실에 불만을 가져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1926년 11월 4일 최초의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발표했다. 훈맹정음은 광복 이후 현대에 들어서까지 많은 제정과 개정을 거쳐 악보와 수학, 과학, 컴퓨터 분야의 특수 기호도 표기할 수 있게 됐다. 2015년 8월 국립국어원 소속 ‘점자규범정비위원회’가 신설됐고 전체 회의와 공청회 등을 거쳐 2017년, 개정 한국점자규정이 고시됐다.


한글 점자,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글 점자는 묵자와 다른 몇 가지 특성이 있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알아보자면 우선 풀어쓰기 방식이다. 묵자는 자음과 모음을 합쳐 ‘강’이라고 쓰지만 점자는 ‘ㄱ,ㅏ,ㅇ’이라 쓴다. 두 번째는 첫소리 자음과 끝소리 자음의 모양이 다르다. 우리는 초성과 받침에 같은 ‘ㄱ’을 쓰지만 점자는 음절 단위를 원활하게 구별하기 위해 다른 모양을 쓴다. 그리고 초성 ‘ㅇ’은 사용하지 않는다. ‘아’를 쓰고 싶다면 그냥 ‘ㅏ’만 적으면 된다. 세 번째 글의 부피를 줄이고 읽기와 쓰기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27개의 약자와 7개의 약어를 사용한다. 약자로 정해진 단어는 풀어 쓸 수 없다.


턱없이 부족한 점자 표기
점자는 우리 눈에 잘 띄진 않아도 곳곳에 있다. 화장실, 승강기 버튼, 건물 출입구 등등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은 점자와 음성 안내 서비스를 이용해 위치나 정보 등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그렇기에 시각장애인이 일상생활을 하기 위해선 많은 점자와 음성 안내 서비스가 필요하다. 점자는 장소와 기능별로 꼭 표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우선 점자 안내판이다. 점자 안내판은 스탠드형과 벽면형이 있고 주 출입문과 가까운 곳에 설치해야 한다. 시각장애인이 시설의 공간과 구조, 이동 동선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다음은 손잡이 점자 표지판이다. 계단, 에스컬레이터, 경사로, 복도 등의 손잡이에 점자 표지판을 설치해 방향, 층수, 목적지 정보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승강기 점자 표지판이다. 승강기 호출, 조작 버튼에 점자를 표기해 위아래, 열림 닫힘, 층수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안내 표지판 외엔 점자 표기를 의무화하는 관련 규정이 없었지만 약사법 개정에 따라 2024년 7월부터 지정된 의약품과 의약외품에 점자를 표기해야 한다. 하지만 약사법 외엔 점자 표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없고 화장품법 개정안, 식품 등의 표시 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이 발의된 상태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일부 기업들이 자발적 참여가 있지만 아직은 더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


끝이 없는 배움, 멈출 수 없는 발전
점자는 어떻게 배울까. 경상북도시각장애인복지관(복지관)에서 점자의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각장애인의 점자 해독률은 전체의 5% 정도다. 시각 장애는 선천적 장애뿐만 아니라 노안과 사고 등 후천적으로 생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점자는 손가락 감각으로 글을 읽기 때문에 ‘촉지 훈련’에 긴 시간을 투자한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은 수업을 들으면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목표로 한다. 점자는 배우는 기간은 아주 짧게 6개월 정도에서 몇 년 걸리기도 한다. 점자는 초·중등 의무교육처럼 국가 차원에서 제공하는 교육 기관이 없어 부족한 교육 공급을 채우기 위해 복지관에서 점자 교육을 제공한다. 또한 일반 학교에 입학해 장애 특수반에서 수업을 듣거나 맹학교에 입학해서 배울 수 있다.
복지관은 비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도 점자 교육을 한다. 코로나19 이전엔 특수 학교 학생들, 포항시, 경상북도 지역 주민, 시각장애인 활동 지원사 등 수강생을 복지관으로 불러 점자의 모양, 읽는 법, 모양, 필요한 이유 등에 대해 강의했다. 복지관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지역 사회 내에서 시각장애인을 대변해줄 수 있는 지원군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 이후엔 경상북도 내 여러 지역을 방문해 구체적인 교육 대신 점자를 직접 찍고 만지는 체험 활동하면서 점자가 어디에 필요한지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점자가 필요한 곳을 상기시키고 장애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기 위함이다.


우리대학과 점자
우리대학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있다. 장애 학생의 원활한 학교생활과 학업 수행을 위해 지원방안을 모색하고 평생교육원과 협력체제를 구축해 다양한 학습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또한 장애와 장애 유형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차별과 선입견을 해소하기 위해 경상북도시각장애인복지관과 함께 ‘장애인식개선 캠페인’을 펼쳤다. 캠페인은 지난 9월 30일 ANU 스퀘어에서 진행했으며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이해도 향상을 위한 유형별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

점자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삶을 위해서다. 앞으로 점자가 더 많은 곳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이미 새겨진 곳에선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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