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과 원피스, 결핍과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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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과 원피스, 결핍과 창업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4.03.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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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스토리 _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 박민재(교육공학·18) 동문

일하다 잠시 여유가 생기면 잠시 웹툰을 챙겨 보곤 한다. 화산귀환, 광마회귀, 나 혼자만 레벨업. 소위 말하는 회빙환, 회귀/빙의/환생은 요즘 웹툰들의 단골 소재다. 과거로 돌아가서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선점해 빠르게 강해진다는 게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이런 전개는 학창 시절 내 가슴을 뜨겁게 했던 소설과 만화와는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주인공이 근성과 재치를 가지고 동료를 모으며 사건을 해결해 가는 내용이 인기가 많았다. 만화나 소설은 청소년부터 청년 세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품기 마련이다. 우리들이 회빙환에 열광하는 모습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시 태어나는 수준의 기연이 필요하다는 걸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학생 창업에 대한 글을 부탁받고 많이 고민했다. 아마 2년쯤 전이었으면 ‘실패를 했기에 성취할 수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같은 말을 적었을 것 같다. 마치 원피스나 나루토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하지만 조그마한 성과라도 만들어 낸 지금에 와서는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창업으로 성공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시기인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거품이 쭉 빠진 창업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최소 회귀, 빙의, 환생 중 하나는 하고 돌아와야 할 것이다. 변화보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콜라파고스에서 창업을 하다는 건 기존 강자들이 쌓은 성벽에 홀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나마 나눠 먹어야 할 내수시장은 역사적인 속도로 자연 소멸 중이고 경기는 최악이다. 취미로 창업을 하는게 아니라면 대학생이 창업을 한다는 건 바 보같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년에 창업을 했고, 오늘도 잠을 줄여가며 다음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꽤나 거칠었다. 3층 복도에는 가끔 자전거 탄 선배가 지나가거나, 수업이 지루한 학생이 뒤로 나가 배드민턴을 치는게 어색한 풍경이 아니었다. 타고난 덩치가 크지 않았던 나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나름대로 생존전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공부를 했는데 생각보다 잘 맞았다. 매 시험에서 전교 1~2등을 유지했고, 그 사회적 위치를 통해 결핍을 매우는 데 성공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곳은 너무 평화로웠다. 어느날 스스로 학교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물었는데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는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결핍을 느낄 게 없어 그랬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담담하게 말하지만 어지러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한국 교육이 이상한 이유를 찾아내겠다며 학교 대신 도서관으로 향했고, 수학 시간에 창문 밖 산을 바라보다가 교실이 너무 갑갑해서 그대로 창문을 넘어 산을 오르기도 했다. 저녁에 산을 혼자서 올라가는 건 상당히 무서운 일이었고, 얼마 못가 내려왔다. 그리고 학교를 자퇴했다.

세상으로 튀어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난 피시방 죽돌이가 되었다. 얼마 오르지 못하고 내려온 산처럼 말이다. 돈이 떨어지면 농장, 공장, 편의점, 주유소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세상이 나를 한심하게 보던 시기였지만 나에겐 꽤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게임에 재능이 없던 탓에 티어를 올리는데 큰 노력과 많은 고민을 해야 했는데, 이때 결핍과 노력, 그리고 재미의 연관성을 알게 되었다. 결핍은 사람을 노력하게 만들고, 노력의 결과로 오는 성취는 즐겁다. 엄밀히 따지면 성취보다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게임에서 목표를 달성하고 나자, 재능의 한계가 느껴졌고 흥미가 떨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잘하는 영역에서 목표를 높이 잡고자 했다. 그러면 한계를 느끼는 날도 미뤄질 것이고, 그동안 노력하는게 즐거울 것 같았다. 당시에는 교육학 공부를 재밌게 했기에 ‘학교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자’를 목표로 삼았다.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으로 사회운동이나 책 집필이 떠올라서 ‘학생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어야 한다’는 팻말을 하나 만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학원가에서 뻘쭘하게 1인 시위도 해보고 서울시 교육청에 무작정 찾아가 인터뷰도 해보고 하다가, 이런 방식으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것 같아 돌아왔다. 기회를 잡으려면 대학은 가야 할 것 같아 수능을 쳤고, 안동대 교육공학과에 들어왔다. 여담이지만 지금도 나는 밖에서 내가 경험하며 깨달은 것 보다 시험 점수가 대학에 입학하는 지표로서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 의아하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경험을 열심히 쌓다가 창업 캠프에 참여하게 됐고, 이거면 저 목표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업을 파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그저 열심히 달렸다.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니 전공은 당연하고, ICT 기술과 디자인 공부도 병행했다. 작은 서비스를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는 데 재미를 붙였고, 그 결과 지난 5년간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공모전과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이뤘다. 작년에는 교육부 인증 학생창업 유망팀, 창업아이디어 대회 교육부장관상,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했다. 학생 수준에서는 할 만큼 했지만, 막상 에듀테크로 창업을 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건 여전히 먼 이야기였다. 한참 고민하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새로운 결핍을 향해 떠났다.

지금 내 결핍은 지방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사업체를 만들고 재밌게 굴려보는 것이다. 너무나 운 좋게도 로컬 창업 쪽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요즘은 열심히 결핍을 채워나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실 화산귀환이든 원피스든 그게 중요하진 않다. 회빙환을 해야 할 정도로 부의 양극화가 심해진 것은 맞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다. 우리가 만화를 보며 주인공을 응원하는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앞에 위기가 닥치고 위기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학생 창업을 한다면 평범히 취업을 하고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위기와 시련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 위기가 주는 결핍을 하나하나 채워나가며 즐겁게 살아가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돈도 많이 벌면 좋지 않겠는가. 우리의 인생은 짧은 이야기고 어떤 내용으로 채워나갈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나는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그런 결핍의 서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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