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의 도시 안동을 지키는 숨은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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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의 도시 안동을 지키는 숨은 살림꾼
  • 이철승
  • 승인 2022.11.06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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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부터 탈놀이와 깊은 인연
‘하회마을 세계유산 등재’ 기억남아
문화재 활용 좋지만 보존도 중요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그 찬란한 칭호를 붙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도시가 품은 수많은 문화유산 덕분이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근현대를 걸쳐 불교와 유교, 민간신앙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문화유산을 자랑하며 무려 3개(봉정사, 도산서원, 하회마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기도 했다. 지난 9월에는 세계유산축전까지 성공적으로 마치며 다시 한 번 문화수도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 가운데서 안동시 문화유산과는 안동의 모든 유산을 관리하고 지켜내야 하는 중책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대학 민속학과를 졸업한 이상일 동문이 문화유산과장을 맡아 안동 문화유산 수호에 앞장서고 있다. 이 동문이 근무 중인 안동시청을 찾아 그의 대학시절 이야기, 안동시 문화유산에 대한 생각, 그리고 후배들을 향한 조언을 들어봤다.  

지난달 안동시청 문화유산가를 찾아 이 동문을 만났다.
지난달 안동시청 문화유산과를 찾아 이 동문을 만났다.

Q. 안녕하세요. 먼저 문화유산과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마디로 안동시에 있는 모든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를 보존,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비지정문화재가 가치를 인정받아 지정문화재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일, 그리고 이미 지정된 문화재의 훼손을 막고 보수하는 등의 업무다. 그 외에도 문화재청과 연계한 문화재 활용사업, 세계유산 지정 등 각종 문화유산 관련 업무를 맡은 부서라고 생각하면 된다.

Q. 민속학과에 재학할 당시 학창시절을 떠올리자면 어떠신가요?
고등학교 시절 문과였고 역사 쪽에 관심이 많았다. 사실 1지망은 사학과였는데 입시가 뜻대로 풀리지 않아 2지망인 민속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원래 가고 싶은 학과가 아니다 보니까 민속학에 크게 관심은 없었는데 막상 들어와서 배워보니까 재밌고 민속학과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 공부도 나름 했지만 동호회 활동을 꽤 열심히 했다. 그때 민속학과 학생들이 탈반(탈반덧뵈기)에 많이 들어갔다. 당시에는 민속극 연구회라는 명칭으로 출발한 동호회였다. 나도 탈반 활동에 애정을 많이 느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도 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Q. 탈반 활동 당시 특별한 추억이 있으신가요?
1980년대는 굉장한 격동기였다. 학생운동이 시작되던 시절이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운동에 대한 의식이 퍼져나가던 때였다. 내가 속한 탈반의 상황도 비슷했다. 보통 타 대학의 탈춤동아리, 풍물패는 운동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우리대학은 그렇진 않았다. 동아리의 방향성을 두고 일종의 과도기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명칭도 탈반덧뵈기로 바뀌었다.  
초창기 탈반은 정말 순수한 탈춤 연구회, 민속극 연구회였다. 이후에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학생들이 탈반에 많이 들어오면서 동아리의 성격, 심지어 존폐여부까지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학생운동과 순수 탈춤 연구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다가 결국에는 양쪽의 성격을 다 가진 탈반덧뵈기가 탄생한 것 같다. 탈춤이라는 정체성은 잃지 않으면서도 중간에 사회적인 공부도 함께 했다.
  
Q. 동아리부터 보존회까지 하회별신굿탈놀이와의 인연이 깊어 보이신다. 탈반 시절과 지금 보존회에서 연행하는 탈놀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민속극 연구회(탈반덧뵈기)가 처음 출범할 당시에는 선배들이 합숙훈련을 하며 보존회의 전신인 하회가면극 연구회에서 탈놀이를 직접 전수받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동아리와 보존회의 동작이 서로 달라지게 됐다. 보존회 쪽에서는 탈반이 원형을 변형시켰다고 주장했고, 탈반은 탈반대로 우리가 연구회 시절부터 배운 동작이 맞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같은 지역에서 같은 탈놀이를 공연함에도 동질감보다는 이질감을 많이 느꼈다.  
춤이 한가지로 정형화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대학 동아리 활동이 꼭 정해진 정통성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자신들만의 고유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같은 춤이라도 서로 다른 맛이 있지 않겠나. 

Q. 문화유산과에서 근무하며 기억에 남는 업무나 문화유산은 무엇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하회마을의 세계유산 등재다. 지난 2010년에 안동 최초로 하회마을이 등재에 성공했는데 그 업무를 직접 담당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문화유산이라면 만휴정을 꼽고 싶다.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만휴정을 처음 주목했을 때가 90년대 말 정도인데 그때 “안동에 이렇게 작지만 자연유산을 겸비한 문화재가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그 정취가 참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소문이 많이 나서 그때의 정취가 점차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가치를 알아보고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반면에 훼손 같은 문제들도 걱정하게 돼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Q. 지난해 안동시가 ‘문화재 안내판 개선사업’ 우수사례로 선발됐는데 어떤 사업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전문용어로 쓰인 기존 문화재 안내판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금도 문화재청 차원에서 보다 쉬운 문화재 안내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지역의 경우 안동부설초등학교 선생님의 제안으로 이 사업이 시작됐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문화재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QR코드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었다. 안동부설초 동아리 ‘문화재까투리’ 학생들이 직접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안동시가 이것을 받아들여 하회마을을 비롯해 4개소에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어린이용 영상안내판을 제작, 초등학생 누구나 흥미롭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은 만큼 내년부터 조금 더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지역 학생들에게 문화재 스토리 아이디어를 공모해서 마찬가지로 QR코드를 통해 문화재 안내판 개선에 활용하려 한다. 사업을 통해 어린 학생들이 문화재에 많은 관심 가졌으면 좋겠다. 

Q. 올해 안동에서 월영야행과 세계유산축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안동시의 문화재 활용 사업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안동시의 문화유산 활용은 크게 세계유산 활용 사업과 일반 문화재 활용 사업으로 구분된다. 양쪽 모두 문화재를 관광사업과 연계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안이다. 안동시가 올해 문화재청 공모사업에 12건이 선정되며 문화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역시 월영야행이 가장 알차게 진행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올해의 좋은 분위기를 이어 나가며 내년에는 더 효율적으로 행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Q. 앞으로 문화재 활용 사업이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문화재 활용에 앞서 우선 생각해야 할 문제는 보존과 관리다. 경제적 측면, 관광 측면에서 활용 사업이 더 우선시 되는 게 조금 안타깝다. 물론 시대적 흐름을 무시하고 무작정 보존만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문화재가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활용사업을 검토하기에 앞서 보존·관리 방안을 세워야 한다. 그래도 활용 사업이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관람객을 늘렸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의가 있다.   

Q. 안동시가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도 유교 문화재에만 집중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시다시피 안동에는 시대별로 다양한 문화유산이 많다. 그래도 안동의 대표적 문화를 떠올리면 유교문화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실제로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이 유교 문화재다. 때문에 유교와 관련된 지원사업, 활용사업이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불교 문화재 또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만 종교적인 특수성이 소통의 걸림돌이 될 때가 있다. 사업을 진행하려면 사찰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데 서로 방향이 맞지 않아 아쉬울 때가 있다. 
그리고 비지정문화재들에 대한 지원 근거 문제도 있다. 시 입장에서는 비지정문화재도 최대한 관리하고 지원하려 노력한다. 대표적으로 성주풀이도 지정문화재가 아니지만 공연 등에 있어 시에서도 어느 정도 지원해주고 있다. 다른 비지정문화재도 전수조사를 통해 까치구멍 집 등 몇 개는 문화재 지정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행정적으로 명확한 지원 근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지원만 해준다면 특혜 아닌가. 
문화재 복원 문제도 그렇다. 복원하려면 과거 형태를 그대로 재현해야 하는데 과거 형태에 대한 충분한 근거자료 없이 어렵다. 복원은 적은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다. 충분한 고증자료를 확보하고, 이 문화재가 복원할 가치가 충분한지 또한 고려해야 한다.         

Q. 서울은 ‘미래유산’제도를 통해 근현대 유산을 관리하고 있는데 안동도 비슷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역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는 문제다. 서울은 특성 있는 도시다. 워낙에 빠르게 변하는 곳이기 때문에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근현대유산 활용이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또한 조선시대부터 구한말, 근현대 문화유산을 집중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고려시대 이전 유산은 찾기 어렵다. 반면에 안동은 고려나 조선시대 유산은 많이 보유했으나 근현대유산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근현대 거리가 있는 목포나 구룡포 같은 경우 당시의 흔적이 온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에 비하면 안동은 이미 많은 곳이 바뀌어 버렸다. 
 대신 옛 사진과 물건을 수집하는 등 현대사 기록화 사업은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건축물의 경우 무작정 보존하거나 철거하기보다는 역사적인 가치를 심사숙고해서 보존 여부를 결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Q. 문화유산과 업무를 수행하며 아쉬운 점은 없으신가요?
 모든 일을 100%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기에 아쉽다. 문화유산을 두고 여러 가지 요구가 많다. 그러나 예산, 보존 등의 문제가 얽혀 아쉬운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고택 같은 문화유산은 소유자들의 편의와 문화재 보존관리가 서로 상충한다.     
 개인적으로 가상현실을 활용한 문화유산 체험도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첨단기술이 문화재와 만난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관람객들이 직접 안동에 와서 실물을 보고 문화유산의 정취를 온전히 감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앞으로 특별한 목표가 있으신가요?
아이고 내가 목표랄게 뭐가 있겠나. 무사히 퇴직했으면 좋겠다. 어느덧 공무원 발령받은 지도 어언 35년이다. 이 정도 열심히 일했으면 좀 쉬어도 되지 않겠나. 퇴직 후에 할 만한 일이라면 이제 마음 놓고 보존회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안동대 후배들을 위한 격려와 조언 부탁드립니다.
별다른 팁이랄게 없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학예직은 연구직이기 때문에 본연의 연구업무도 열심히 해야하고, 행정기관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행정 업무 또한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공부가 진짜 어렵다. 내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두 가지가 농사, 그리고 공부다. 공부를 열심히 해놓으면 선택의 폭이 커진다. 전공 공부, 영어 공부, 전부 공부의 연속이다. 자기 일에 매진하다 보면 전문성이 생기고 길이 보이게끔 되어있다. 
어떤 일을 하던 늘 공부하고 그 분야에서 감을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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