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거 ‘사랑’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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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거 ‘사랑’ 아니야
  • 이지윤
  • 승인 2022.10.08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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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서 그런 거야’라 포장하기
가해자의 변명은 듣고 싶지 않다.

아빠가 저녁 식사 후 현관에 나와 담배를 피울 때면 쌉싸름한 아빠 냄새가 좋아서 조용히 옆에서 말동무를 하곤 한다. 보통 이따 어떤 과일을 먹을 거냐니, 내 연애사는 어떠냐니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녀의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난간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지 하다가 조금 큰가 했던 소리가 점점 고성으로 바뀌더니 이내 한 쪽이 손을 번쩍 들어 상대방의 뺨을 내리쳤다. 가느다란 몸이 크게 휘청하더니 아스팔트 위로 힘없이 꽂혔다. 아빠와 내가 ‘어어….’ 하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빠는 담배도 채 태우지 못한 채 자리를 박차고 1층으로 내려갔다. 당황하고 화난 목소리로 “왜 사람을 때립니까?”하고 소리를 치자 “아저씨 저 알아요? 왜 끼어들고 그래요?”하고 더 큰소리를 쳤다. 쓰러져 앉아 있던 여자는 일어나 “오빠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라고 사과를 했다. 솔직히 여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친구의 팔을 잡으며 아빠와의 사이를 어떻게든 벌리려는 모습을 보면 딱 저런 말을 했겠구나 싶은 상황이었다. 아빠는 “여자친구는 사랑해줘야지 아무리 잘 못 했다고 해도 때리면 되나?” 하며 잘 타이르려 했지만 화난 남자는 얼마나 자신의 여자친구가 부정한 일을 저질렀는지를 설명할 뿐이었다. 

점점 소리가 커지자 조용한 주택가에 모두가 ‘무슨 일 있나’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자 둘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현관에서 멍하니 보고 있던 나를 아빠가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곤 거실에 앉아 “어떻게 아빠 빼고는 나와보지를 않냐”며 “딸 키우는 집이 없는가 보다”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상황을 듣자 하니 여자친구가 짧은 옷을 입었는데 ‘그렇게 입지 말아라’라고 하니 ‘옷을 갈아입겠다’라고 한 후 그대로 외출을 한 모양이다. 그렇게 외출 후 남자친구를 마주쳤는데 ‘왜 거짓말을 하냐’, ‘누구를 만났길래 옷이 그 모양이냐’와 같은 이야기를 하며 싸우다 여자친구 쪽이 ‘내가 무슨 옷을 입든 내 자유니 집착하지 말라’라는 말을 했다가 이 사달이 났다고 한다. 아빠는 여자가 거짓말을 한 것도, 남자가 걱정한 것도 이해는 가지만 때린 순간부터는 무엇도 중요치 않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뿐이라는 말을 했다. 만약 내가 차가운 길에서 맞고 있었다면 당장 저항할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아빠 같은 사람이 내 안위를 걱정해주지 않았다면 모두가 안전한 집에서 나를 보고만 있었다면 나는 흥분한 남자친구를 달래기 위해 무릎 꿇기도 고사했을 것이다. 무려 5년도 더 된 이야기다.

만약 2022년에 이 일이 일어났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나는 아직도 지금 내 나이 또래로 보이던 그 언니가 무사히 집에는 돌아갔을까. 잘 헤어졌을까. 아니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그 남자를 고쳐 쓰려고 몇 번이고 바닥에 쓰러졌을까 걱정이 된다. 아직도 데이트 폭력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 재범률은 70% 이상이라고 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두 명이 동시에 똑같은 온도와 양으로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에 더 존중하고 배려하고 이해해야 한다. ‘사귄다’는 즉 ‘내 것’이 되는 계약이나 소유의 관계가 아니며 ‘사랑하니까’라는 이유로 요구하고 따라야 하는 주종관계도 아니다.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만나 연인이 되었다면 서로를 사랑하고 소중히 할 줄 알자. 화가 난다고 해서 사람을 해치거나 아프게 해서는 결코 안 된다. 내 친구들이, 내 동생들이, 내 언니와 오빠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어떠한 폭력에서 안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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