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말. 한결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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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운 말. 한결같이
  • 이철승
  • 승인 2022.10.0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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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투수와 특급 투수의 차이
나를 나타내는 건 ‘지금’뿐

 괴물 투수 류현진. 야구를 잘 보지 않는 사람이라도 뉴스에서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한국야구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데뷔 시즌부터 MVP를 받으며 한국프로야구를 평정하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큰 실패 없이 근 10년간 활약했다. ‘괴물’이라는 별명과 이런 어마어마한 스펙들만 보면 류현진이 어느 누구보다 빠르고 날카로운 공을 던지는 투수라고 생각된다. 실제로도 류현진의 투구는 엄청나다. 그러나 야구팬들은 알겠지만 야구계에는 류현진보다 더 빠르게 공을 던지고, 더 날카로운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들이 꽤 많다. 단순히 이 선수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투구만 놓고 보자면 류현진의 순위는 상위권을 보장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류현진이 괴물투수가 된 이유는 바로 꾸준함 때문이다. 

‘매일’ 잘하는 투수
잘 던지는 투수는 많지만 매일 잘 던지는 투수는 드물다. 1회에 퍼펙트한 투구를 보여준 후 2회에 힘이 빠지기도 하고, 잘 나가다가 홈런 한 방에 맥이 풀려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또 주자 유무, 날씨, 홈구장 여부, 팀의 득점 수 같은 주변 요소에 따라 투수들의 컨디션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류현진은 여기에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 소속팀이 악명높은 한화이글스였음에도 팀의 승패와 상관없이 그는 묵묵히 자기 공을 던졌다. 류현진과 반대 유형의 투수를 일컫는 '퐁당퐁당'이라는 말도 있다. 물가로 던져진 돌이 큰 포물선을 그리며 퐁당거리듯, 잘하는 날과 못하는 날의 기복이 두드러지는 경우이다. 

대학을 졸업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서 인간관계도 넓어지고, 편집국장을 비롯해 내 이름 뒤로 따라오는 크고 작은 책임과 직함이 생겼다. 여러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일이 술술 풀리고 내 힘과 시간을 전력투구 하고 싶은 때가 있는가 하면, 꼴찌팀의 고독한 에이스처럼 버텨야 할 때도, 동료의 어설픈 플레이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모범답안은 모든 활동 모든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겠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또한 최근의 행동을 돌아보았을 때 류현진보다 퐁당퐁당 투수에 가까웠다.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에는 전력투구했지만 이미 첫 단추가 엇나간 일, 동료가 실수로 지체된 일에는 마치 홈런 한 방 맞고 자포자기한 투수처럼 성의 없게 임하곤 했다. 

나를 나타내는 건 지금 하는 행동  
영화 배트맨 비긴즈 속 브루스 웨인(배트맨)은 히어로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방탕한 생활을 즐긴다. 그러던 중 친구 레이첼을 만나자 민망하게 “지금 이건 내 진짜 모습이 야니야”라고 둘러댄다. 레이첼은 뼈있는 한마디를 날린다. “너를 나타내는 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야”. 브루스는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지만 레이첼의 말은 너무나 정확했다.

다시 야구 이야기로 돌아와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지난 경기를 잘했어도, 더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도 오늘, 이 자리에서 증명하지 못하면 끝이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 두 가지는 '다음 경기'와 '남은 관중'이다. 오늘 경기를 이미 망쳤다면 '잘 지는 경기'로 마무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체력은 가능한 적게 소모하고 평소에 하지 못할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아무리 경기를 망쳤어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관중도 있다. 이들을 위해 이미 승부가 기울었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당연한 예의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행하는 과제, 프로젝트가 꼬이더라도 그 결과물을 기다리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일이 생각만큼 풀리지 않더라도 그들을 생각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노력해야 한다. 

나 또한 신문을 편집하며 같은 마음을 갖고자 한다. 모든 발행과정이 마음에 쏙 들지 않더라도, 이 글을 읽어주실 당신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에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그간의 퐁당퐁당을 반성하며, 다시금 좋은 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다짐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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