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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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 이철승
  • 승인 2022.09.05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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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이라 담아내지 못한 말들
이 대학의 미래를 묻습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던가. 편집국장으로서, 학생 언론인으로서 지난 1년간 참 많이 고민하고 발버둥 쳤다.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신입생 미달사태 이후 비대위의 구성과 해체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봐오고 나름의 생각을 밝혀왔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내 행적에 대한 적잖은 회의감이 찾아든다. 그동안 무얼 위해 행동했던가. 내 행동으로 무얼 바꿀 수 있었던가. 언론인, 중립성이라는 굴레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들, 매번 모 교수, 모 학생의 입을 빌려야만 했던 말, 오늘은 반드시 털어놔야겠다.

 

실패를 실패라 부르지 못하고

우리대학은 이미 2019년 대규모 구조개혁을 진행한 바 있다. 인문학과 예술이 한 배를 타고, 한 지붕 아래 세 단과대가 공생하고, 체육학이 자연과학으로 분류됐다. 이 기막힌 상황의 화룡점정은 목적도, 방향도, 책임자도 없는 대규모 신생학부의 출범이었다. 해당 학부는 본부의 무책임한 관리 속에서 출범 3년 만에 학과장을 4차례 교체했고, 그 사이 충원율과 모집정원은 큰 풍파를 겪었다. 교수, 직원, 학생, 삼척동자까지 급조한 학부의 문제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크게 공론화 된 적이 없다. 지난해 안상준 전 교수회장의 본부를 향해 비판과 서태원 교수의 콜로키움이 그나마 의미있는 시도였다. 결과적으로 무관심 속에 큰 소득을 거두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나조차도 은연중에 표현을 꺼리고 있다는 점에 헛웃음이 나온다. ‘창의융합학부’가 성역인가? 정원도, 커리큘럼도, 학생회 구성도, 어느 것 하나 탈 없이 넘어간 적 없는 학부를, 충분한 준비 없이 본부가 급조한 학부를, 왜 실패를 실패라고 부르지 못하는가? 성찰과 반성없이 새 계획만 세우면 그만인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지도 모를 학부 구성원들은 또 무슨 잘못일까.    

총장이 바뀌고 보직자가 바뀌었으면 책임이 없어지는가? 지난 총장선거 시절부터 이미 개편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그런데 왜 강행했나? 실패를 내다보지 못했다면 그건 무능이다. 박살난 신뢰, 이해하기 힘든 단대 개편 창융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다. 진짜 문제는 대학 학사개편의 속사정이다. 인문대와 예체대는 간판이 갈려나갔고, 체육학은 자연과학이 됐고, 생활과학대는 공중분해됐다. 이 모든 문제와 반대를 무릅쓰고 본부는 기어이 개편을 단행했고 그 결과가 충원율 70%대 미달 대학이다. 결과가 좋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더 큰 문제는 학과와 본부 간의 박살난 신뢰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지난해 기사로도 다뤘던 생활과학관 활용 문제다. 본부는 개편 전 약속과 달리 해당 건물에 입주한 세 학과의 건물활용에 제약을 두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단순히 공간 활용을 떠나 학과와 본부간의 신뢰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학교의 방향이라는 게 있긴 한지 그간 우리대학은 키 없는 배였다. 교육부에 따라 방향성 없이 그저 표류했다.  

발전계획은 진짜 폼으로 짜온 것 같다. 여러 의견수렴과 조사를 통해 이제 새 발전계획을 내세웠다지만, 그럼 그동안은 뭘 했나 싶다. 학생위주? 새로운 교육법? 그런 거 모르는 사람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나. 나한테 일주일만 줘도 그 정도 틀은 잡을 수 있겠다. 인성도 좋고 외국어도 잘하고 창의력도 좋고 융합하고 소통하는 대학생이 돼야한다는 말은 고등학생에게 “교과서 위주로 국영수 열심히 공부하면 공부 잘할 수 있어요” 따위의 조언과 진배없다. 8개 핵심역량이 5개로 줄어든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특성화, 이게 최선입니까? 진통 끝에 나온 특성화안도 탐탁지 못하다. 생명과학건강복지대학. 이름 한 번 찬란하다. 그리고 거대하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냥 취업 좀 되고 학생 몰릴 것 같은 학과라면 죄다 끌어 모은 것처럼 생겼다. 체육학과가 자연과학과 한 배를 타는 것만큼이나 기괴하다. 백신, 의류, 복지, 세 학문이 한 카테고리에 묶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여기에 무슨 비전이 있나.  

애초에 이 계획의 기반이 된 학과평가도 이해하기 힘들다. 컨설팅 단계부터 거듭 지적돼 온 것처럼, 취업률과 충원율 수치는 절대적인 학과평가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수치가 없으면 뭘로 판단하느냐고? 취업률 충원율만 따질 거면 그냥 인기 많은 네일아트학과, 애견미용학과를 세우는 건 어떤가? 취업률이 높아 A등급을 받고 증원한다? 취업의 질은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한 번에 읽기도 힘든 여덟 글자짜리 단과대가 얼마나 우리대학을 빛내줄 브랜드가 될지 참 기대가 크다.

 

매너리즘에 빠진 교수들

본부의 헛발질과는 별개로 교수들은 무얼 했나? 지난해 본부 취재를 돌면서 들은 말 중에 하나가 “본부 대책을 비난하기 전에 각 학과에서는 어떤 자구책을 마련했는지 되묻고 싶다”였다. 사실 아닌가. 지난해 미충원 대란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움직임이 일었으나 대부분이 정원 조정과 학과명 변경 외에 큰 변화가 없었다. 그마저도 하지 않은 학과도 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 데에는 본부에 대한 불신 탓을 넘어 각 학과 교수의 무관심과 매너리즘이 크다고 생각한다. 교육자이기 이전에 학교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자각했으면좋겠다. 나아가 강의 면에서도 ‘교육자’인지 ‘연구자’인지 정체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교수도 더러 보인다. 수업 방식을 연구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고자하는 노력은 없이 그저 본인의 지식을 뱉어내기 바쁘다. 이런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학생들을 무기력한 태엽인형으로 만드는데 8할은 교수의 공이다. 비상대책위원회 소모임 멤버는 100명 그래서 이 모든 문제가 교수와 본부 탓인가? 아니다. 지난해 정신없이 진행된 비상대책위원회는 LMS 소모임을 통해 모든 회의록을 공개했다. 회의에 직접 참여하는 인원이 아니라면 당연히 회의록을 통해 진행 경과를 살피고 학교의 향방을 가늠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모임의 가입 인원수가 고작 100명이다. 수천 명의 학생은 고사하고, 우리대학 교수 수만 200명이 넘는다.   학생회? 솔직하게 말하자. 격렬했던 지난 1년 동안 학생회가 공개적으로 입 한마디 뻥끗 한 적이 있나? 각종 위원회니 공청회니 찾아봐도 교수의견만 쏟아질 뿐이다. 활기찬 분위기와 학생 복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명목 하에 그저 이벤트 계획단체로 전락한 게 학생회의 현 주소다.      

 

저는 공부하러 갑니다

그간 내 나름대로 학교를 위해 관심을 갖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총장과 보직자는 임기가 끝나면 그만이고, 교수는 정년만 무사히 채우면 그만이듯이 나도 졸업하고 떠나면 그만 아니겠나. 이런 글 쓴다고 볼 사람도 사실 몇 이나 될까 싶다. 행동하는 양심? 언론의 역할? 그런 게 학점과 일자리보다 중요하겠나.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은 모교가 망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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