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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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존재
  • 이철승
  • 승인 2022.05.1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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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타도 노태우’를 기억하며

문화유산에 대한 우리 모두의 실책

붉은 벽돌건물 위로 새겨진 타도 노태우’. 인문대 학생이라면, 통일마당에 발을 디뎌봤다면 모를 수가 없는 글귀다. 90학번도, 00학번도, 10학번도, 20학번도 이것을 기억하고 향유했다. 더러는 민주화의 상징, 인문대의 자부심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915월 투쟁이 쓸쓸히 잊혀져가고 이제는 캠퍼스에는 그 당시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비바람 속에서도 30년 간 그 자리를 지켜온 우리대학 학생운동의 상징이 사라졌다.

 

역사는 승리자의 작품이니까

내가 이 일을 기록하며 가장 무력감을 느끼고 화가 났던 부분은 일부 인문대 구성원을 제외하고는 이 글귀와 915월 투쟁의 존재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그나마 역사를 공부했다는 학우들도 민주항쟁? 아 호헌철폐랑 직선제 말하는 거죠?”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안동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87년이 민주항쟁의 마지막 장으로 알고 있었고 우리세대 모두가 그렇게 배워왔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작품이라는 말의 의미를 뼈저리게 느낀다. 그럼에도 이건 너무했다. 왜곡하고 곡해하는 정도를 넘어서 그냥 역사 속에서 존재가 지워져 버렸다. 학생운동이 부끄러운가? 부끄러워 할 것은 학생운동이 아니라 유서 대필과 배후 조작이다.

 

'지정문화재'만 문화재인가

또 다른 문제는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우리 모두의 몰지각이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인문대 교수 및 학생들은 타도 노태우의 의미를 알고 있으며 이를 암묵적으로 문화재화 했다. 가히 인문대의 자부심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럼에도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관리하거나 보존해야한다는 생각은 갖지 못했다.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로서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타도 노태우는 왜 사라져야했나?  그럼 울주 암각화야말로 돌덩이에 끄적인 한낱 낙서고, 한양도성은 옛날에 돌 몇 개 갖다쌓은 담벼락 아닌가? 도대체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화재란 뭘까? 민속학도로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재란 오래된 붓과 서책, 멋들어진 한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들고 있는 수저, 볼펜 한 자루, 입고 있는 티셔츠까지 전부 오늘날을 상징하는 민속이자 내일의 문화유산이다. 하물며 치열했던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은 그 모든 순간을 역사라고 부를 만하다.

 

우리는 종종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과 무지로 문화재가 파괴되는 사례를 접하곤 한다. 특히 근현대 문화유산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충분히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물건들이 한낱 고물로 여겨져 버려지고 사라진다.

서울 미래유산은 이 분야의 모범사례로 부를 만하다. 미래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친 전태일 열사의 분신장소도 있다. ‘타도 노태우를 외친 김영균 열사를 생각하면 더욱 씁쓸해지는 부분이다.

타도 노태우가 사라진 이유가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새 시대로 나아가기 위함이라던가. 가치판단을 떠나 모든 과거는, 하물며 삼전도비도, 조선총독부도 전부 우리가 기억해야할 역사다. 역사 앞에서 청산해야할 어두운 과거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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