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있는 날에 수맥으로 이사하실래요?
상태바
손 있는 날에 수맥으로 이사하실래요?
  • 이철승
  • 승인 2022.04.11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정 종교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
필요 이상으로 곡해당하는 무속신앙

대선부터 이어진 무속 논란이 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이후까지 지겹도록 따라붙고 있다. 이제는 당선인이 무속을 맹신해서 풍수지리설 때문에 청와대를 떠난다고 한다. 당연히 일국의 대통령이 종교적 이유에 따라 국정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다. 전직 대통령의 사례까지 생각하면 무속이나 특정 종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정계의 모습은 무속을 무기삼아 상대 세력을 음해하려는 시도일 뿐 비난의 화살은 그 방향을 크게 엇나가고 있다.

일부 세력에서는 ‘당선인이 무당말에 홀려 풍수지리를 믿고 집무실을 이전한다’는 프레임을 반복해 씌우고 있다. 이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당위성을 논하기 이전에 매우 저급한 프로파간다이다. 기본적으로 무속인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신자를 쥐고 흔드는 사이비로 매도하는 시선이 내재된 발언이다. 경제성, 안보 위험 등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반대이유가 수두룩함에도 구태여 무속을 아주 미개한 종교인 냥 묘사하고 이를 당선인과 연관 짓는다. 구체적인 숫자와 논리를 따지기 보단 그저 악질 프레임만 씌워서 여론을 호도하려는 모습이다. 이런 수준의 주장이라면 과거 민주항쟁과 노동운동에 붙여졌던 밑도 끝도 없는 ‘빨갱이’ 프레임과 다를 게 없다.

게다가 설령 당선인뿐만 아니라 특정 정치인이 무속을 믿는다 한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사이비 종교를 문제 삼는 이유는 금전을 갈취한다거나 사회질서를 해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개인의 종교는 간섭할 바가 아니다. 예컨대 굿을 예시로 들자면 그 대상이 대통령이건 국회의원이건 ‘공직자’가 굿을 한 것을 문제 삼을지언정 공직자가 ‘굿’을 한건 문제가 아니다. 또한 굿을 위해 공직자의 업무시간, 세금을 사용 한다던가 공직기강을 저해하는 사실만 없었다면 개인적으로 무당굿을 하든, 연등을 달든, 삼천 배를 하든, 철야기도를 하든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의 묘사 속 굿과 무속은 그 자체로 매우 기괴하고 비윤리적인 의식인 양 비춰짐과 동시에 조롱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무속의 이미지가 추락하게 된 것은 이번 사태처럼 정계와 미디어가 만만한 무속을 정치적 공격의 무기로 삼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탄핵정국에도 마찬가지다. 국정농단의 본질에서 벗어나 ‘무당’이라는 키워드만 부각되어 엉뚱하게 비난공세를 받았다. 또한 ‘무당이나 믿는 이상한 아줌마’라는 여성혐오 프레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

무속은 어쩌다 악의적인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여겨지게 됐으며 나아가 정말 우리 삶과 무관한 미신으로만 치부하는 것이 옳은가. 멀리 굿판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다. 한국 땅에 살면서 소원 담은 돌탑 한번 안 쌓아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당장 본인 이름부터 의미 없이 지은 사람이 있을까. 작명이 미신이고 사기라면 매년 법원에 쏟아지는 개명신청은 전부 사기에 넘어간 결과물인가. 가장 논란이 된 풍수지리도 그렇다. 무슨 괴이한 미신처럼 말하지만 풍수지리가 한국인의 삶과 동떨어져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당신의 집이 사람이 죽어나갈 흉지라고 들었을 때, 혹은 재상이 나올 명당이라고 들었을 때 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손 없는 날 이사비용이 더 비싼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밥솥이나 소금 같은 이사풍습이며 봄마다 붙는 입춘첩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고사는 우리 삶 속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무속과 풍수지리는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삶에 내재된 풍습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무속을 포함한 그 어느 종교도 현실의 일을 크게 좌우할 정도로 신봉하는 것은 문제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 없이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감정을 이용해 반대 진영을 비하하는 용도로 이용하는 작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