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과 상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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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과 상식 사이
  • 이철승
  • 승인 2021.03.1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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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학부를 둘러싼 상식 밖 행동
학생 권리보다 준법이 먼저인가

새로운 존재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논란을 부른다. 기존의 법과 규정으로는 완벽하게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상식이다. 상식은 규칙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밝혀주곤 한다. 이를테면 전동킥보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인도 주행은 가능한지, 면허는 필요 없는지 같은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아무리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도 전동킥보드를 타고 인도에서 과속하거나 자동차도로를 달리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법이 규정하지 않아도 지켜지는 통상적인 상식이다. 규칙이 확립되지 않아도 사람들은 관행에 따라 상식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하루빨리 규칙을 정비해야 한다.     
새로 등장한 창의융합학부 DREAM 측 을 둘러싸고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선거 시행규칙’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창의융합학부 학생회 출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선거 시행규칙 미준수다. 학생회장단 선거는 큰 틀에서는 학생회칙을 따라간다. 하지만 학부(과)별로 자체 선거 시행규칙을 제정하고 그에 맞춰 선거를 시행할 수 있다. 제37대 W 총학생회는 학생회칙에 따라 DREAM 측의 출범을 불허했고 DREAM 측은 자체 선거 시행규칙을 주장했다. 양쪽 다 각자의 입장에 맞는 규칙을 내세웠다.          
그런데 취재 과정에서 재밌는 부분을 발견했다. 창의융합학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창의융합학부 학생회칙과 선거 시행규칙을 확인할 수 있다. 작성일자가 지난 해 3월로 DREAM 측의 출범을 준비하며 제정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DREAM 측이 지키지 않은 학생회칙 내용과 마찬가지로 ‘재학생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본인들이 지켰다고 주장한 자체적인 선거시행규칙에도 어긋나는 셈이다. 또 관행은 지키지도 않으면서 ‘회칙에 기재되지 아니한 사항은 관례에 따른다’는 조항은 왜 넣었는지 의문이다. 이 회칙 안에 DREAM 측 당선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명분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럴 바에는 창의융합학부만의 특수성을 주장하며 관행에서 벗어난 선거세칙을 내세우는 편이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학생회칙 운운한 총학생회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회칙 준수가 신생 학부의 자립보다 먼저인가? 신생 학부는 총학생회가 인솔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어 창의융합학부를 그렇게 방치한 모양이다. 학생회 없는 학부를 만들었으면 총학생회에서 전담관리 하겠다는 대책이라도 냈어야 했다. 규칙만 따지다가 철로 위에 넘어진 사람을 봐도 철로 진입은 불법이라며 방관할 기세다. 
규칙을 떠나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학생회 출범이 시급한 신생 학부를 위해 관행적 규칙 한번 눈감아주는 게 그렇게 힘든가? 준법을 논하기 전에 규칙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야한다. 학생회칙은 누구를 위함인가. 학생회칙의 목적은 학생 권리 보장으로 귀결돼야 한다. 설령 재투표를 거친다 한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이 직속 선배들의 학생회 출범 노력을 무시하고 우르르 반대표를 던지기라도 했을까? 과연 타 학생회의 반발이 정말 학생회칙의 공정한 적용과 창의융합학부 신입생의 선거권 보장 때문인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이 부분에서 DREAM 측의 대처 역시 이해할 수 없다. 타 학생회에서 트집을 잡아 재선거를 요구한들 눈 딱 감고 재선거에 응해 논란의 여지를 끊어냈으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재선거를 시행하지 않은 것은 본인들의 최초 선거결과를 인정받고 싶다는 무의미한 자존심으로만 비친다.
이 모든 사태에서 가장 상식과 규칙에 어긋난 것은 학교다. 신호등과 차선이 엉망인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그건 운전자의 잘못을 따지기 전에 도로관리의 잘못이다. 학교는 과연 창의융합학부가 진입하기에 적당한 도로환경을 만들어줬는가? 학칙 60조에 따라 학교는 학생자치활동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 인재양성 운운하며 새 학부를 설립하기 전에 학생회에 대한 고민은 단 한 번이라도 했을지 의문이다. 아니라면 200명 넘는 규모의 학생을 무소속으로 방치할 생각이었을까. 학생회 출범을 학생의 일로만 떠넘기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처사다. 학생회 보호 육성이라는 규칙에도, 학생회 없는 학부라는 상식에도 어긋난 상황이 벌어졌지만 학교는 한결같이 수수방관이다. 학생처도 학생지원과도 학부장도 손 놓고 방관하면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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