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의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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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의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0.03.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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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4관왕을 차지하는 쾌거를 보면서 내심 놀랍고도 기뻤다. 외신들의 연이은 주목과 이웃 국가의 질투어린 시선까지... 한편으로는 마치 내가 상을 받은 양, 이 잔잔한 흥분은 며칠 간 계속되었다. 사실 한국 영화뿐이 아니라, 케이팝(K-POP), 한국 드라마, 한국 게임, 한국 애니메이션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호응을 얻은 지 오래되었고, ‘한국이라는 브랜드가치는 작년에 9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세계적인 인정에 어깨가 으쓱한 내 자신의 국뽕이 유치하게도 느껴진다.

20년 전 이맘때쯤, 나는 몇 달 간 미국에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체력으로 현지 학생들과 수업을 듣고, 여러 국적의 친구들과 어울리고, 유스호스텔과 같은 비교적 저렴한 숙소를 찾아다니며 동부와 서부를 횡단하면서 젊은 시절 좋은 추억도 많이 쌓았다.

그런데 그 때 한국인으로서 나는 종종 미묘한 기분을 느끼기 일쑤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일본인인지 아니면 중국인인지 물었다. ‘한국인이라고 답한 순간, 대개는 남한인지 북한인지 묻는 반응이 돌아왔지만, 그것도 그저 지도 위에 써진 피상적인 이름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심지어 어느 도시에서 우연히 동행한 영화배우지망생은 서로 어색함이 깨어질 시점, 자신은 솔직히 한국이 어딘지 모른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을 모르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이쯤에서 갑자기 궁금해진다. 한국의 문화산업이 이토록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저력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물론, 한국의 경제성장이나 정치제도의 발전 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도 있고, 이러한 설명은 설득력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이라고 해서 모두 BTS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 한국인이 머리가 뛰어나고,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했기 때문인가?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결국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모호한 것이기에, 다시 구체적으로 무엇이 우수한지 밝혀야 할 과제를 남긴다. 그리고 이웃의 중국과 일본 또한 우리 못지않은 풍부한 문화적 자원을 갖추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호기심에 과감히 질문을 던졌지만, 내 마음속에서 정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니, 누군가 정답을 알고 있다면 알려주면 고맙겠다. 아마도 정답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시너지 작용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개인적으로, 한국문화의 저력 가운데 하나는 문화적 다양성다양한 것들의 화쟁·회통에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생각보다 매우 다양한 문화와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그것이 때로는 갈등과 대립을 야기하지만, 이 대립을 계기로 만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역동적인 힘이 생긴다.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 문헌으로 백제 혜균(慧均)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가 있다. 이 삼국 시대의 문헌에서부터 대립적으로 나타난 자아와 타자가 변증법적으로 융합해야지만 비로소 궁극적 해탈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 타자와의 만남 없이 자신의 한계만 극복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보편성을 획득할 수 없다. 나와 부대끼는 타자와의 소통이야말로 사실 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혜균의 변증법적 사유는 다시 신라 원효의 화쟁·회통으로 이어진다. 원효는 화엄경소서문에서 무애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촉박하지도 않고 여유롭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고요하지도 않고, 하나도 아니고 다수도 아니라고 한다. 이처럼 다양성 속에서 어느 하나에 안주하지 않고, 갈등과 대립 속에서 거침없이 소통하고 통합을 이루어내는 역동성이야말로 한국문화의 저력이자 발전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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