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애(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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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애(愛)게
  • 권회창
  • 승인 2024.03.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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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느끼는 가족의 소중함
죄송하고 감사하고 사랑해요 아버지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가수 김진호가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 ‘가족사진’의 마지막 소절 가사다. ‘좋은 노래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내 무미건조한 소감이다. 얄팍한 감상에 젖어 그 노래를 자주 들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지금의 나는 이 노래를 자주 듣지 않는다. 가족의 의미를 알게 됐기 때문일까, 좀처럼 뭉클해지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다.

한창 신문사에서 일하던 중 아버지로부터 할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이 왔다. 워낙에 나이가 많으셔서 임종이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날 하루 내 기분은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죄책감 때문이었으리라. 지난 학기 동안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작년 여름 방학 때 한 번쯤은 찾아뵐 수 있었을 것이다.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찾아뵌 건 병원 중환자실에서였다. 할머니께서는 의식이 없는 채로 연명을 위해 코에 산소 호흡기를 달고 팔에는 주삿바늘이 꽂고 계셨다.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할머니의 팔은 시퍼런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사실 만큼 오래 사셨지....’ 하고 복잡한 심정을 스스로 위로하려던 중 할머니의 컥컥거리는 소리에 눈물을 왈칵 쏟았다. 결국 할머니는 보름 동안의 연명치료를 끝내고 별세하셨다.

학생 때부터 친구들 조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조문을 갔던 적이 몇 번 있다. 그런 내게 장례식장은 어색한 공간이 아니었다. 다만 상주로는 처음이었다. 준비됐던 이별이라 그랬는지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그다지 우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끼리 반갑게 인사들을 나누더라. 나 또한 발인까지 묵묵히 마칠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 눈에 밟힌 사람이 있었다. 곧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 내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가벼운 눈물 몇 번 흘리고 말 뿐 오히려 날 위로해 주셨던 내 아버지. 아버지는 가끔 내게 아버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친구 자식들은 이미 결혼해서 애 낳고 부모한테 용돈도 준다더라. 너스레 떨며 했던 얘기지만 일말의 부러움도 있었을 것이다. 남들은 다 자식한테 용돈 받으면서 편히 살고 있지만 당신의 아들은 아직 대학교도 졸업을 못 했으니.

어렸을 적 철없던 나로서는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이 좀처럼 공감이 되지 않았다. 서로 비밀을 나누고 함께 미래를 고민하는 내 친구들이 정말 소중했다. 반대로 잔소리만 늘어놓고 나는 존중하지 않는 것 같은 아버지가 때로는 미웠다. 그런 나도 나이 조금 먹고 군대 조금 갔다 오니 철이 들었나 보다. 부모님을 향한 존경심이 부쩍 늘어났다. 바쁜 일상생활에 치이고 용돈 없이 혼자 돈 관리도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 하나 앞가림하기도 이렇게 힘든데 아버지는 어떻게 나랑 내 동생을 홀로 10년 넘게 키워오셨을까.’ 정말 감사하다. 잘나지는 않았어도 특별히 모난 점도 없이 자란 내가 있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 당신이. 다 내던지고 싶었던 순간도 정말 많았을 터인데 칠순을 앞둔 나이까지 묵묵히 출근하는 당신이. 닮고 싶은 아버지가 되기까지 부단히 노력했을 당신이 말이다.

구구절절한 고해성사를 늘어놓는 나는 여전히 낯간지러운 건 딱 질색하는 무뚝뚝한 아들이다. 갑작스럽게 쓰게 된 칼럼이지만 그 주제로 바로 생각난 건 내 아버지와 소중한 가족들이었다. 어쩌면 이 기회에 아버지 그리고 내 가족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칼럼의 마지막은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착한 내 동생, 다정하지 못한 오빠 밑에서 눈치 보느라 그동안 고생 많았다. 할머니,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이제는 편한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기도할게요. 그리고 아버지, 어버이날 편지는커녕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 하는 자식이 이렇게라도 진심을 전하고 싶었나 봐요. 저한테 항상 못 해준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하시지만 최선을 다하신 걸 알고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못난 자식은 아니라면, 그래서 아버지가 허락해 주신다면 다음 생에도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날게요, 많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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