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솔뫼문화상_소설 입선 '완벽한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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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솔뫼문화상_소설 입선 '완벽한 노을'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3.12.0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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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노을

임규빈(국어국문 23)

 

멋진 글을 쓰고 싶었다. 항상 꿉꿉한 글밖에 쓰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싱그러운 여름을 쓰고 싶었다. 키보드를 두드려 보았지만 화면에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의지를 잃은 난 의자에 몸을 기대며 앞을 바라보았다. 나의 여름은 전혀 싱그럽지 못하다. 내 여름은 내가 써온 글처럼 꿉꿉함의 연속이다. 에어컨을 틀지 못해 의자와 맞닿은 허벅지가 땀투성이다. 선풍기 소리가 거슬린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기분으론 싱그러운 글을 쓸 수 없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덮어버린다. 그러자 화면 뒤에 있던 화분이 눈에 띈다. 화분에 꽂힌 이름 모를 식물은 나를 원망하듯 축 처져있다. 사실 화분이 있었단 것도 잊고 있었다. 분명 몇 달 전 봄, 내가 사 온 것이었다.

그날은 모든 게 좋았다. 날씨도 적당했고 길가의 꽃도 예뻤다. 나는 장을 보러 외출했다. 연수의 취업 성공 날이었기에 맛있는 것을 해 주고 싶었다. 파스타 재료와 케이크를 산 후 마트 밖에서 화분들을 발견했다. 평소 식물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날따라 화분을 사고 싶었다. 가게 사장님께 식물 이름을 물어본 후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현재 이 식물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한 마음에 컵에 들어있던 물을 다 죽어가는 풀에게 양보했다.

미안해, 그런데 내가 진짜 바빴거든. 이 물로 다시 힘 좀 내주라.” 나는 턱을 괸 채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풀에게 내 사과는 닿지 않았다. 풀이 내게 그딴 핑계 대지 마! 네가 데려와 놓고! 책임감 없는 놈!’이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죄책감을 지우고 싶어 화분을 들고 방을 나왔다. 창가로 가 창틀에 화분을 올려놓았다. 창틀에 쌓인 먼지가 눈에 띄었지만 오늘은 흐린 눈을 해 보려 한다.

우리 집에 있는 유일한 창문이다.

창문 앞에서 상쾌한 공기를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의 여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뜨겁고 축축한 공기만 느껴질 뿐이다. 창문을 통해 열대어가 헤엄쳐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풀이 미쳤냐? 개 뜨겁잖아라며 나를 저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겐 어떤 욕을 들어도 뻔뻔함을 유지하는 능력이 있다. ‘아 이젠 모르겠다. 책상 위보다는 광합성 할 수 있는 창가가 더 좋잖아라는 생각으로 뒤를 돌았다.

싱크대에는 설거짓거리가 쌓여 있었다. 창틀 먼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흐린 눈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연수가 집에 돌아와 이 꼴을 본다면 싫어할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만화 주제곡을 튼 후 느릿하게 고무장갑을 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릇을 씻었다. 가사는 밝은 청춘을 노래하고 있었다. 이 가사를 쓴 사람은 이러한 경험을 해 봤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노래는 끝나고 나의 설거지도 끝났다.

 

- 삑삑삑삑 띠리링

 

녹아서 사라질 것 같아.”

연수가 바람 빠진 풍선 같은 소리를 내며 집으로 들어섰다. 아침보다 더 짙어진 다크서클과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하루의 고단함을 보여주었다.

수고했다.” 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발을 벗었다. 나였다면 아무렇게나 벗어 던질 신발을 연수는 가지런히 벗은 후 신발장으로 넣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네.”

원래 이 시간에 집에 오는 게 맞는 거라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연수가 말했다.

너 오늘도 늦을 줄 알고 저녁 안 해놨는데 그냥 뭐 시켜 먹을까?”

좋아, 치킨 먹자, 치킨

연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알겠어. 시켜놓을 테니까 씻고 나와

알겠습니다

연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야 그런데 나 일찍 안 왔으면 너 저녁 안 먹으려고 했지?”

연수는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니, 그냥 집에 있는 거 대충 먹으려고 했지.”

거짓말하지마.”

거짓말이 들킨 나는 멋쩍게 웃었다.

연수가 씻는 동안 탁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여름의 저녁 일곱 시는 밝다.

씻으니까 그래도 좀 살 것 같아.”

연수는 요란하게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뭐야 저 화분 아직 안 죽었네.”

, 근데 나 저 화분 내 책상에 있던 거 까먹고 있었다.”

와 생명력 질기네.”

연수는 화분을 흘깃 본 후 나를 바라보았다.

좋다고 사와 놓고 까먹었냐?”

나는 변명을 하려 입을 뻥긋거렸지만 연수에게 발언권을 빼앗겨 버렸다.

“‘정신이 없었는걸이라고 말할 거지?”

, 정답.”

네가 까먹을 줄 알고 처음에는 내가 물 좀 줬는데.”

진짜? 너는 안 까먹었네.”

당연하지, 네가 내 취업 축하해주는 날 사 온 거잖아. 근데 요즘은 맨날 늦게 들어와서 못 챙겼다.”

아직 안 죽었으니까 저기 두면 다시 파릇파릇해지지 않을까?”

쟤가 너한테 욕하겠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실없이 웃었다.

 

연수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학기 초부터 연수의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연수를 좋아했고 그 속에서 연수는 빛났다. 나는 연수와 정반대였기에 저 아이와 내가 얽힐 일은 없겠구나하고 생각했었다. 당시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이 힘들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다. 그런 내게 먼저 다가온 것이 연수였다. 내가 받아 주지 않아도 연수는 항상 내게 말을 걸어 왔다. 어느새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우리의 열아홉 살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함께 독서실에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연수는 내게 질문했다.

너는 나중에 하고 싶은 일 있어?”

. 있어.”

뭔데?”

나는 잠시 망설였다.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은 있었지만 무시당할까 두려워 누군가에게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그냥 글 쓰는 거 하고 싶어, 소설 같은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말을 뱉은 후 연수를 바라보았다. 연수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완전 멋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잠시 말을 잃었다.

몰라,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멋있다고 해 준 것이 좋았지만 쑥스러워진 나는 투덜거렸다.

그래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거 멋있잖아.”

연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그냥 칭찬 듣는 게 좋아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반장 같은 것도 다 했는데 어느 학과에 가야 할지 나중에 하고 싶은 게 뭔지 진짜 모르겠어.”

연수는 울적해 보였다. 연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고싶은 일이야 없을 수 있지, 솔직히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것도 별로 없고 해 본 거라곤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가, 독서실 가는 것밖에 없는데 갑자기, 이건 내 천직이다하고 생각되는 일이 생기는 게 신기한 거 아닐까?”

그러면 너는 뭔데?”

돌연변이

연수는 내 대답을 들은 후 소리내 웃었다.

그래 언젠가는 생기겠지.”

맞아, 그리고 넌 지금도 멋있어.”

나는 용기 내 조금의 칭찬을 보탰다.

진짜? 어디가?”

몰라

그냥 한 말이지?”

아니야.”

 

음식을 문 앞에 두고 간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치킨을 가져왔다. 연수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고 있었다. 봉지를 연 후 치킨 상자를 꺼냈다. 먹기 위한 준비를 끝낸 후 우리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한여름의 7시는 노을의 등장 시간이다. 뻥 뚫린 곳에서 바라보는 노을은 집 안 전체를 붉게 물들이겠지만 우리 집을 방문하는 노을빛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집의 창문 밖에는 높은 고급 아파트들이 위치하고 있다. 그 아파트들은 우뚝 솟아 자신의 잘남을 드러낸다. 높은 두 아파트 위로 해가 서서히 안착해 그 틈 사이로 파고든다. 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온전한 노을을 볼 것이다. 우리는 아파트 사이로 파고드는 반 정도 가려진 노을을 볼 수밖에 없다.

저 화분 노을이랑 진짜 안 어울린다. 더 볼품없어 보여

연수는 화분을 놀리듯 말했다. 확실히 붉은 빛을 흡수한 푸른빛은 죽음의 색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연수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 무슨 일 있냐?”

해는 지면서 우리보다 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먼저 보겠지

뭐 아마도, 우린 뒤에 있으니까

나는 맥주 캔을 따며 대답했다. 탄산이 캔을 탈출하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 요란하다.

그러면 나도 저 화분처럼 볼품없어 보이겠지

요즘 들어 연수가 풀이죽는 날들이 많다.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지만 그 대신 자신의 생활이 사라졌다. 항상 늦게 들어오기 일쑤였고 주말엔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내가 연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많지가 않다. 그저 조금 꾸며진 말을 던지는 것뿐이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그런 것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야

, 내가 말한 거지만 너무 오글거린다. 그냥 못 들은 척해줘

연수는 자신이 실없는 소리를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못 들은 척해 달라고 했지만 네가 울적한 말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자.”

뭐를?”

해는 지금 퇴근 중인 거야. 아침에 떴다가 이제 지는 거잖아. 왠지 직장인 같지 않아?”

와 근무 시간이 너무 긴데.”

연수는 내 말이 황당하다고 했다. 하지만 네가 했던 말도 내겐 황당한 말이었다. 내 눈에 넌 조금도 볼품없지 않다.

그러니까 지금 퇴근하는 중인데 다른 게 눈에 들오겠니? 빨리 쉴 생각밖에 안 하겠지.”

야 그렇네.”

우리는 서로의 캔을 부딪치며 웃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던 반쪽짜리 붉은빛이 사라졌다.

해가 완전히 퇴근한 것이다.

퇴근 축하해.”

우리는 닭 다리를 하나씩 붙잡고 부딪쳤다.

우리 나중에는 창문도 방마다 있고 경치도 좋은 데로 이사 가자.”

연수는 조금 취한 말투로 말했다.

베란다도 있고.”

나는 연수의 바람에 내 바람을 더했다.

베란다에서 맨날 저녁 먹는 거야.”

좋겠다. 노을 보면서

그때는 반쪽짜리 노을이 아니라 완벽한 노을이겠다.”

그래, 완벽한 노을.”

남들이 본다면 유치한 대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런 유치한 대화가 좋다. 매일 진지한 대화만 한다면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내 여름도 싱그럽지 않을까. 집 안의 공기는 여전히 습하고 허벅지도 여전히 땀투성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 밝은 미래를 상상해 주는 아이가 있다. 내일은 밝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연수도 힘을 낼 수 있을 거다.

 

창가의 화분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풀이 조금은 살아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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