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이 머무른 곳에 존재하는 용, 한국의 단청과 안동 봉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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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이 머무른 곳에 존재하는 용, 한국의 단청과 안동 봉정사
  • 강주혜
  • 승인 2023.12.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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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청 문양의 상징과 의미, 보존해야 할 크나큰 가치
국내 최고 목조건물 봉정사 극락전 최고 단청도 남아있어

 

산신당에서 봉정사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가장 유명한 한옥이라 하면 역시 경복궁이 먼저 떠오른다. 단청을 설명하기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예시는 없다. 경복궁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시야 한쪽에 녹색 지붕부가 들어찬다. 시간을 들여 관찰하지 않으면 그려진 문양이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소위 ‘민트’색으로 보이는 지붕부는 천정이라 불러야 하는지도 모호하다. 그럼에도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한국의 미, ‘단청’. 한국전통건축의 모든 채색 예술을 이르는 용어인 단청을 최고(最古) 단청이 있는 안동 봉정사와 함께 소개한다.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볼 수 있는 지붕부 단청이다.
아래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볼 수 있는 지붕부 단청이다.

단청이 대체 뭔가요?

붉을 단(丹)에 푸를 청(靑)자를 쓰는 ‘단청’이란 용어는 글자 그대로 붉은색과 푸른색의 조화를 상징하는 말이다. 또한 한국전통건축의 모든 채색 예술이 농축된 용어로 넓게는 서(書)·회(繪)·화(畵)의 개념을 망라한다. 좁게는 목조 건축물의 부재에 각종 문양을 채색하는 행위를 말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단청은 대부분 좁은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도 단청이 존재하나 현재 단청이라는 고유 용어는 우리나라만 사용한다. 중국은 ‘건축채화’라고 하며 일본은 ‘건축채색’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단청을 의미 없이 장식 요소로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단청은 ▲목재의 보호와 보존 ▲목 부재의 조악성 은폐 ▲건축물의 권위와 위계 상징 ▲종교적 장엄 ▲기념비적 장식으로 전시와 기록 등을 위해 쓰였다. 특히 목재 보호와 보존을 위한 단청은 목조건축 문화권에서 필수조건이었다. 건습과 풍해에 갈라지거나 쉽게 썩고 병충해 피해에 취약한 목재 단점은 고대인에게 커다란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인 천연재료를 부재 표면에 칠하는 작업은 단순히 내후성 강화에 그치지 않았다. 인간 본성의 미의식이 발휘돼 다양한 색채와 문양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는 시대 변천과 발달에 따라 권위적·종교적·기복적·내세적 의미에서 파생해 오늘날 한국 전통 미술 문화가 됐다.

한국 단청이 가진 특징은 상록하단으로 위쪽은 푸르고 아래는 붉게 우리나라 자연적 특성과 정서를 반영했다. 나무가 울창한 산세와 소나무가 많은 지역적 특성에서 푸른색과 붉은색을 가져왔다는 설이 있다. 경관을 해치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정서는 소나무처럼 위쪽을 푸르게 아래를 붉게 칠하는 독특한 양식을 형성한 이유로 보인다. 이순민 문화재수리기술자 겸 미술학과 겸임교수는 “단청은 한국의 전통예술 분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색의 예술 장르다”며 “한국만의 정서와 민족성을 불어넣은 종합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전한다.

한국 단청의 역사와 비밀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위해 행해졌던 만큼 역사도 길다. 단청이란 이름 역시 그 역사만큼 다양하게 존재한다. 단벽, 단확, 단록, 진채, 당채, 오채 등으로 불리기도 했고 단청을 행하는 기술자의 명칭도 다양하다. 화사, 화원, 화공, 가칠공, 도채장 등으로 불렸으며 금어, 화승, 화원 등 단청 일에 종사하는 승려를 부르는 명칭도 따로 있었다. 특히 ‘오채’라는 명칭은 단청의 기본 5색을 동양 음양오행설을 적용해 나온 이름이다. 음양오행설의 청색-청룡, 적색-주작, 황색-황룡, 백색-백호, 흑색-현무로 이어지는 상징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단청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사기>에서 솔거라는 화가 이야기가 ‘단청’이라는 용어와 함께 등장한다. 신라시대 화가인 솔거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도로 벽에 그려놓은 소나무에 새들이 앉으려다 부딪혀 떨어졌다는 설이다. 또한 신라시대 단청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채전’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다. 고려시대에는 도화원과 화국이라는 기관이 존재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도화서가 그림과 단청을 관장했다.

현재는 조선시대에 행해진 상록하단과 색 띠 형태 문양인 ‘휘’의 발달이 한국 단청 전부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전 경주에서 신라시대 단청을 복원하고자 한 시도가 있었으나 일본이나 중국 단청과 비슷하여 ‘왜색이 짙다’, ‘한국의 단청 같지 않다’는 여론에 의해 무산됐다. 보존이 쉽지 않은 특성상 사료와 기록이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지만 한국의 전통 예술 양식인 단청 보존과 발전, 연구를 위해 보다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봉황이 머무른 보물창고

방문객 정보를 작성하고 도로를 오르면 봉정사의 입구인 만세루가 나타난다. 긴 계단을 올라 만세루에 진입하면 중심 건물인 대웅전이 또 다른 계단 위로 어렴풋이 보인다. 사찰의 위엄과 종교적 분위기 고양을 위한 건축적 설계다. 시간을 잘 맞추었는지 문이 닫힌 대웅전에서 스님 불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교와 관계없이 관람객 모두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사찰을 구경한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 제자인 능인 스님이 창건했다. 바위굴에서 수련하던 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 날리니 봉정사의 위치에 와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곳에 산문을 개산하고 봉황이 머물렀다 하여 봉정사라 명명했다. 이름에 걸맞게도 봉정사는 온갖 보물이 가득한 사찰이 됐다. ▲국보 제15호 극락전 ▲국보 제311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 목조 관세음보살 좌상 ▲보물 제448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 고금당 등이 있다.

정영숙(62세·창원) 씨는 “초등학교 동창들과 여행을 왔다”며 “봉정사가 이렇게 오래되고 괜찮은 절인지 모르고 왔는데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가족과 함께 봉정사를 찾은 관람객도 있다. 김서윤(13세·용인) 씨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오래전에 지었는데 멋있고 우리 문화유산이 등재된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일환(65세·서울) 씨는 “일부러 보러 여기까지 왔는데 안동의 자랑이라 생각한다”고 감탄했다. 108배 순례 여행 중인 김보미(51세·울산) 씨도 마찬가지로 “절에 오면 항상 마음이 편하고 탁 트인 광경이 참 보기 좋다”는 소감을 전했다.

극락적 정면 창방에 두루마리와 함께 청룡이 보인다.

극락전에 그려진 염원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시대 목조건축물로 현존 최고다. 고려 전기 단청 양식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로는 유일하다. 봉정사 극락전을 실측하며 햇볕이 들지 않는 내부 깊숙한 부재에 창건 당시 단청 문양을 발견했다. 단청은 시대마다 독특한 미감을 가진 전형 형식이 매우 두드러진 특성을 보여주므로 동시대 양식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극락전 정면에서 단청을 바라보면 두 창문과 입구 위 긴 부재에 그려진 세 마리 용이 눈에 띈다. 장부익 문화유산해설사는 “세 마리 용 양쪽에 두루마리 그림이 있다”며 “고려 공민왕이 이곳에 머물렀다 공양하고 가 두루마리에 주상전하 성수만세라는 글자가 있다”고 은밀히 말을 건넸다. 말해주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비밀이라며 웃은 그는 “이런 거 하나라도 알려주기 위해 내가 있는 거지”라고 전했다.

1972년과 2001년부터 2003년간 이어진 큰 수리 두 번이 있었던 극락전은 1972년 수리 당시 완전히 박락된 상태인 외부 단청을 전혀 무관한 양식으로 개칠했다. 내부 단청은 개칠하지 않고 보존됐다. 2002년 수리에는 각 부재 단청 문양을 똑같이 그리는 모사작업을 했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 발달로 적외선을 통해 현재 보이는 단청 밑으로 기존에 있던 문양을 확인할 수 있었고 덩굴무늬같이 새로운 고문양을 많이 발견했다”며 “당시 북송 시대 간행한 <영조법식>에 기록된 단청을 채택하여 문양 모사를 했다고 추정한다”고 전했다. 이어 “어린 기각 문양은 물고기 비늘을 중첩한 모양 같은 도안으로 오늘날 단청 문양의 금문과 유사하지만 지금까지 사례가 발견된 바 없는 희귀한 문양이다”며 극락전에 방문한다면 꼭 찾아보길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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