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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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않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 임혜린
  • 승인 2023.12.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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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글쓰기 배우려 지원한 신문사
어색했던 기자 직함에 적응하기까지

한동안 글쓰기가 어려웠다. 부족함을 자각하고 평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후부터였다. 물론 글이란 어떤 내용이든 독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테다. 항상 제자리인 어휘력과 문장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필자로서 인정받으려면 문장 하나라도 깔끔하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결핍과 고통을 마주해서라도 배우고 싶었다.

정제된 글을 쓰기 위해 신문사에 몸담은 건 지난 4월이다. ‘같이 써요, 글’ 모집공고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신문 기사만큼 깔끔한 글은 없다고 생각했다. 지원 시 ‘과거 본인이 쓴 글’을 함께 첨부해야 했는데, 무난히 선보일 글도 없어 이전 교내활동 때 꾸역꾸역 썼던 수기를 제출했다. 좋은 평가를 위해 제대로 다시 써볼까 고민했지만 도저히 자신 없었다. 면접 때도 “기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글을 잘 써보고 싶어 지원했다며 솔직하게 답했다.

문장이 봐줄 만했는지, 의욕이 전해졌는지, 인력난 때문이었는지 상관없었다. 가르침 받을 든든한 선배가 생겨 좋았다. 그동안 스스로 검열하느라 망설이고 주저했던 글쓰기를,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혹은 용기 있게 해내고 있는 모습에 존경했다. 조금만 배우면 선배처럼 문장을 잘 쓰게 될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곳은 글쓰기 교육보다 발행을 위한 취재가 훨씬 중요한 곳이었다. 신문사에서 개인적 배움과 성장 욕구를 충족하려 했던 게 잘못된 생각이었나.

글쓰기를 향한 개인적인 갈망이 충족되지 않아 아쉬워할 무렵이었다. 처음으로 학생이 아닌 기자로서 속상한 감정을 마주했다. “혜린아, 이거 뭐야?” 밖에서 카메라 들고 있는 모습에 여러 지인이 신기해한 것이다. 취재에 나서야만 신문사 존재가 알려진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성격상 주변 모두에게 평소에 하는 일을 굳이 말하지 않기도 했고 또래 친구들이 신문을 즐겨 읽지 않는 현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것이 소비되지 않고 있음을 증명한다.

허탈함을 떨쳐내려 사회부 기자로서 최대한 또래가 흥미를 느낄 만한 아이템을 생각했다. 매일 뉴스를 들여다봤다. 나만의 글을 잘 쓰고 싶던 욕심은 이미 뒷전이 됐다. 자아실현이 문제가 아니었다. 수정된 기사를 보며 어떤 부분이 왜 고쳐졌을까 공부했다. 어느덧 신문 기사를 잘 쓰고 싶은 기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신문 기자 직함에 자부심이 생겼다. 감히 말하건대 ‘대학신문’에 가짜뉴스가 존재하기는 어렵다. 온라인 기사는 정확성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다. 반면 인쇄돼 나오는 글은 그 자체로 완결이다. 고칠 기회가 없다. 속도보다 정확성이다.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다. 묵직하고 정교한 기사를 위해서다. 

만약 신문사를 지나치고 다른 활동을 했더라면 더 즐거웠을까?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알 수 없지만 아쉽지 않다. 학내에 이보다 더 질문하고 듣고 배우는 활동은 없으리라 자부한다. 매일 뉴스를 들여다보게 된 것,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 직간접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낯설었던 지역에 정이 생긴 것, 무엇보다 소중한 동료가 곁에 있는 것 전부 신문사 덕분이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불편해도 결국 익숙해진다. 기자라는 직함과 기사의 틀이 낯설 수 있지만 분명한 건, 처음부터 기사 쓰는 기자가 신문사에 들어오는 게 아니다. 들어온 사람이 기자가 된다. 기자로서 취재하고 글을 쓰면, 기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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