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의 편집국장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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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학년도의 편집국장을 아십니까
  • 이지윤
  • 승인 2023.12.0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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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의 신문사 생활을 마무리하며
국장병 재활과 완치를 위해 노력할 것

신문사는 무슨 졸업식이 까마득해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법한 선배들이 ‘신문사 탈출은 지능 순’이라며 껄껄 웃는다. 내가 멍청해서 여기 있는가 싶어 맘 편히 웃지 못하고 ‘짠’하고 잔을 부딪친다. 막바지가 돼서야 생각하는 거지만 지능이 높은 순인지 낮은 순인지는 말해주지 않아 내 느낌대로 생각하련다. 학과가 학과인지라 두 번의 실습, 잦은 팀플과 발표, 그리고 리포트를 쳐내야 한다.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전화와 문자, 이메일로 수많은 질문을 한 후 평균 15매가 넘어가는 기사를 써 내린다. 새벽까지 다른 기사를 퇴고하랴. 신문 받으랴 또 나르랴. 자취방 사글세가 아까우리만큼 신문사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는 때가 많다. 이거 참 못할 일이다 싶어 이마가 지끈거린다. 졸업을 앞둔 동기들은 자격증 시험이니 취업 준비니 약간 상기된 모습으로 제각각 열심인 모습이지만 이와 동시에 나는 마지막 신문까지 마무리하려니 자꾸만 숨이 차고 버겁다. 세수만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침대에 누워 ‘내가 만약 신문사를 안 했다면’라는 운을 띄운 후 상상을 시작하지만 뭘 더 열심히 살았을까 싶어 에라 모르겠다. 이불을 둘러쓰고 기절하듯 잠이 든다. 

치료 약은 없다, 그저 버틸 뿐

매달 20일 전후가 오면 일명 ‘국장병’이라 불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사무실과의 거리가 멀어지는 데 비례해 심장이 답답해지고 속은 울렁거리며 급격한 감정 변화와 카톡과 전화벨 소리에 예민해지는 질환이다. 나만 이런 건가 싶어 선배 국장들에게 물어보자 그거는 ‘국장병’이라며 퇴임과 동시에 싹 낫는다는 대답을 들었다. 어이가 없어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일종의 공황장애를 닮은 국장병은 1년 내내 수많은 편집국장을 괴롭힌다는 뜻이다. 그깟 역사와 전통, 손때 묻은 신문이 뭐라고 이토록 무거워야 하는지. 고개를 저으며 사무실에 도착하자 답답함은 사라지고 나름의 평안이 찾아온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신문 배포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저 ‘쏘 해피’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며 ‘다음 신문은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또 국장병이 발병하겠지만 눈치 챘을 때는 이미 새로운 신문을 써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국장들은 왜 다들 화가 나있나

2021년, 처음 입사했을 때 문화부나 사회부 선배들은 수습기자들에게 장난도 붙이고 시시한 농담 따먹기를 하며 신문사에 정을 붙이게 도와줬던 기억이 있지만 대학부 기자나 국장은 왠지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에 얼굴은 죽상, 말을 붙였다 하면 ‘하하, 뭐, 네 그렇네요….’같은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대답만 돌아왔다. ‘나름 할만한 데’라고 생각했던 수습 기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대학부 기사를 쓰기 시작했을 때 첫 기사에 칭찬도 받고 자신감이 붙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부서 기자들은 가안도 척척 가져오는 데에 비해 가안은 무슨 나도 대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고 빨간 줄이 절반인 내 기사를 보며 왈칵 눈물을 쏟았다. 결코 다른 부서가 쉽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대학부는 유독 퇴고가 엄격하고 책임감을 요하는 부서다. 대학에서 대학 얘기를 쓰니 당연하게도 잘못된 정보는 쉽게 탄로 나고 전파하는 속도도 빨라 파장도 크다. 글을 쓰는 내내 온 신경을 써야 하니 예민하고 짜증이 많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 이제야 깨달아요. 어찌 그렇게 사셨나요’하는 멜로디에 내 이해를 담아보고 싶다.

그래도 우리는 신문을 만든다

‘조중동’이니 ‘한경오’니하는 신문도 기름 닦을 때 쓰는 종이 취급인 마당에 대학신문들은 축제 돗자리, 비가 오면 우산, 버스 기사들 앞유리 닦개로 쓰이는 현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이 이렇다. 몇 십년 전부터 종이 신문은 이제 아무도 읽지 않는다고. 또 누군가 이제는 영상 미디어의 시대라고 말한다. 심지어 기자학교에서도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대학신문도 온라인 발행이 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신문을 만든다. 좁디 좁은 종이 안에 어떻게 하면 좀 더 예쁘게,또 읽기 좋은 글이 될까 편집지를 짠다. 이슬이 맺힐 시간에 갓 인쇄된 신문 뭉치를 받는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캠퍼스 곳곳에 신문을 채워놓는다. 1년 8번. 발행마다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단순히 낭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벅찬 순간들이 많다. 후배들에게 이 일을 다시 반복시키는 것 또한 마음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다.

단순히 감성에 젖어 쓰는 글은 아니다. 종이 신문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건 당사자가 더 잘 알고 있다. 우리도 대형 언론사처럼 인터넷으로 속보도 찍어내고, 쇼츠로 재미난 기사도 올리고 싶다. 이렇게만 해도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이렇지 않다. 읽는 사람이 만드는 사람이랑 비슷하다는 말은 이제 농담으로도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고질적인 인력난은 기본이고 학과 생활도 해야 하지, 취업 준비도 해야 하지, 돈도 벌어야 하지. 이런 상황에 온 신경을 신문사에 쏟을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설령 아무리 내가 다 뿌듯할 정도로 완벽하게 취재를 마무리했다고 한들 기사를 작성하고 이 사람은 날 싫어하나 싶을 정도로 아픈 퇴고를 마친 후 데스크의 철저한 검증을 거쳐 주간 보고까지 통과하고 나면 이미 에브리타임이고 대학이고 새로운 이슈에 우르르 몰려가 내 기사는 철 지난 이야기가 돼버린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글은 스크롤 한 번에 사라지는 가벼운 가십거리가 아니다. 익명을 빌려 원색적인 의견만을 내뱉고, 검증하기 어려운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내 이름과 모교의 이름을 걸고 쓰는 글의 가치는 어느 글과 비교할 수 없다. 다소 느리고 좁게 전파될지언정 우리가 지키는 것은 대학의 역사와 발맞춰 가는 오늘의 기록이다. 부디 앞으로 우리 신문사를 지켜 갈 후배들이 절대로 어디 가서 기죽지 말고 당당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키보드를 부술 듯 두드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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