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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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돌을 던지겠습니까
  • 이철승
  • 승인 2023.12.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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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후무’ 이철승이 갑니다
할 말은 다 하고 떠납니다
이철승 전 편집국장은 3년간 총 26호의 신문을 발행하며 85건의 기사를 홈페이지에 업로드했다.

 

마침내, 이철승이 지긋지긋한 자리를 떠납니다. 개인적으로 3인칭 화법을 피하는 편이지만 이런 순간에는 쓰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이철승은 안동대신문 역사상 다시 없을 불세출의 기자이자 두 번 다시 나와서는 안 될 기자기 때문입니다.

행여나 우리신문을 챙겨 보던 독자라면 “아니 네가 왜 아직 그러고 있어?” 혹은 “이제 편집장 내려놓는 건가요?” 같은 말을 건넬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제대로 속사정도 모르는 사람한테 왜 아직까지 그러고 있냐는 애먼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에 신경 쓰는 게 바보 같은 일인 건 잘 알지만 그래도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당신이 제 사정을 압니까? 아니면 대학언론을 압니까?

본격적으로 글을 열기에 앞서 4년 차 기자에게 이렇게 한 면이나 내어준 이지윤 편집국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더 솔직한 사정은 이런 푸념 글 하나 밀어낼 만한 기사가 없다는 게 안동대신문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사실은 미련이 남아 이런 기회를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년 퇴임 호 칼럼은 멋지게 감사 인사로 끝내고 싶었으나 총학생회와 유쾌하지 못한 일이 터지는 바람에 급하게 주제를 바꿔 썼습니다. 생각해보면 퇴임 순간까지 개인의 소회보다는 공적인 일을 우선시했습니다. 독자들에게는 이 글이 참 거만하게 느껴질 수 있겠습니만, 그래도 스스로 이 정도 자부심은 가질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기자가 안동대신문 45년 역사를 통틀어 4년을. 심지어 대학원생 신분으로까지 활동하고. 스물 여섯 번의 마감 기간 내내 신문 수령과 배포까지 도맡았을까요.

신문사 내부에서마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왜 아직도 신문사에 붙어있냐는 시선을 보낼 때, 혹은 여전히 편집국의 일원인 양 나에게 과도한 책임과 직무를 요구할 때마다 욕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습니다. 직책은 객원기자지만 책임과 권한을 마음대로 뗐다 붙였다 하면서 발행 일정조차 제대로 공유받을 수 없는 순간에 울화가 치미는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꾹 참고 자리를 지킨 이유는 이철승이 안동대신문의 ‘GOAT’이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안동대신문에 제 이름으로 실리는 마지막 글이라고 하니 참 많은 말이 스칩니다. 우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첫 번째는 누가 뭐래도 이지윤 현 편집국장입니다. 개인적인 친분을 차치하더라도 후임 국장을 맡아 무사히 1년을 마무리 해줘서 고맙습니다. 나름 도와준다고 했는데 본인이 어떻게 느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현 국장 손에 억지로 독이 든 성배를 쥐여준 건 맞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정도는 한번 듣고 싶습니다. 너무 욕심이겠죠. 그래도 후임자 인선에 후회는 없습니다. 싸이의 ‘아버지’ 가사처럼 이지윤 국장이 이제야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의 무게와 스트레스는 해보지 않았으면 아무도 모를 겁니다.

편집국장으로서의 면모 외에도 제 부사수 기자로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제가 3년 동안 후배 기자들 퇴고 볼 때마다 정말 방망이 깎는 노인의 심정으로 제 수면시간과 체력을 담아 글을 갈아왔습니다. 개중에 좋은 방망이와 나쁜 방망이의 차이를 이해한 사람은 오직 현 국장뿐이었습니다. 글이라는 게 육하원칙과 서론, 본론, 결론만 맞추면 되는 것 같지만 단어 하나, 문단 배열 하나만 바꿔도 완전히 맛이 다른 글이 됩니다. 이 국장과 달리 다른 기자들이 이렇게 정성들인 퇴고본을 보고 ‘내 글이랑 달라진 것도 없는데 괜히 흠 잡는다’는 식으로 나올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다음은 역시 저를 뽑아준 김규리 국장에게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막상 입사 첫해에는 몇 마디 섞어보지도 못했지만 퇴임 이후에 늘 제 신문사 생활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제 국장 임기 때는 퇴임 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제 부탁에 직접 기사까지 써주셨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다시 생각해도 고맙고 죄송합니다. 

세 번째는 제 훌륭한 인터뷰이들입니다. 특히 열 분의 동문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이번 해까지 제가 신문사에 붙어있게 한 이유는 절반 이상이 동문 덕입니다. 각 분야에서 무언가 이뤄낸 어른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고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들 꼭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간 맡아주셨던 이광순 교수님, 여러 번 고견 전해주셨던 서태원 교수님, 신호림 교수님, 그밖에 도움주신 여러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살지 맙시다

돌아보면 참 화가 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다 말하려면 몇 날 밤이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업무적인 부분으로, 또 업무 외적으로도 말입니다. 회비까지 들고 신문은 나 몰라라 잠적한 전임국장, 통학생이라서, 학과 생활 바쁘다는 핑계로 업무량은 내 절반에도 못 미치면서 사내 정치를 시도하던 동기 기자, 기자가 예의가 없다며 항의 전화 들어오게 만든 후배 기자까지 집안 문제로 바람 잘 날 없는 신문사였습니다.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총학생회가 참 별로였습니다. 학생자치기구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실제로는 행사기획단, 정치인 역할놀이, 치어댄스팀 정도에 불과하다고 느껴집니다. 학생 수 감소 대책을 묻자 이미 최저등급이 사실상 폐지된 상황에서 ‘최저를 없애면 신입생이 급증할 것’이라는 말이나, 아직 착공도 안한 건물을 두고 약국과 의대 운운하던 대책 없는 공약 등 진심으로 총학생회보다 신문사 기자들이 훨씬 더 많이 학교를 공부하고, 더 많이 조사했다고 확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가 허무맹랑한 과대 공약에, 서로를 그저 깎아내리는 네거티브 여론전에, 언론사 인터뷰 개입까지 참 추한 행태 많이 봤습니다.  

교직원은 친절한 분이 많았지만 비상식적인 일이 딱 한 번 있었습니다. 기사 발행 이후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제게 던졌던 “네 애비한테도 그렇게 말하나?”라는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J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교수는 딱 두 명 생각납니다. 융합전공 취재 중 본인이 해당 전공 담당 교수였음에도 잘 모른다고 회피하기에 “그럼 교수님은 바지사장입니까?”고 여쭈자 다짜고짜 화를 내던 T 교수. 그래서 아직도 궁금합니다. 진짜 이름만 있는 바지사장이셨나요, 아니면 맡으신 자리가 너무 많아 그만 깜빡하신 건가요. 

나머지 한 명은 정정 보도 건으로 친히 신문사 사무실에 방문한 모 신생학부의 J 교수입니다. 삿대질과 윽박을 쏟아내며 ‘고소하겠다’, ‘신문을 전량 회수 폐기하라’, ‘그딴 식으로 일하지 말라’는 등의 말을 남기셨습니다. 더불어 수업 중이던 담당기자를 ‘내 앞에 데려다 놓으라’며 학과에 전화해 시간표를 캐물어보는 치졸의 극치를 보여주며 화룡점정을 찍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그렇게 학교와 학부에 열렬한 애정을 보여주시더니 이듬해에 타 대학으로 이직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안동대 교수 자리가 참 우습나 봅니다. 사족이지만 이렇게 지역과 대학에 대한 애정 없이 ‘국립대 교수직’을 돈벌이쯤으로 생각하시는 교수님들을 볼 때마다 참 가슴이 아픕니다.  

그럼에도 얻어가는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언컨대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습니다. 첫 번째, 인터뷰 능력 상승입니다. 제가 마침 라포 형성과 인터뷰 스킬이 굉장히 중요한 전공이라서 득을 크게 봤습니다. 인터뷰 스킬 필요하신 분들은 신문사가 즉효약입니다. 두 번째, 시야 확장입니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아마 대학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을 텐데 기삿감을 찾아야 하다 보니까 반강제적으로 사회문제, 지역 현안, 국가정책까지 찾아보게 되더랍니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문화도시도, 기후 정의도, 고등교육 정책도 전부 남  일이었겠죠. 이런 면에서 후배 기자들도 좀 넓은 시야를 갖길 바랍니다. 세 번째는 신문사의 알파요 오메가인 글쓰기 능력입니다. 앞에도 잠깐 이야기했지만 퇴고의 과정은 방망이 깎는 노인의 그것과 같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성장했습니다.

남은 공간은 그래도 뭔가 후배 기자들을 위한 조언들로 채우고자 합니다. 

 

글솜씨는 중요하지 않다

글을 못 쓴다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문장력이 떨어져도 본인이 무엇이 궁금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분명히 생각했다면 그건 분명히 글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걸 잡아주고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편집국의 일이다. 반면에 아무리 문장이 깔끔해도 내용이 알맹이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

내가 읽는 글이 내가 쓰는 글이 된다

후배 기자들 글을 보면 평소 보고 듣는 게 어휘력, 문장력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최근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위키트리 같은 인터넷 찌라시성 카드뉴스에 길들여진 문체다. 표제 부제에 정보 전달할 생각은 없고 ‘충격’, ‘어떻게 됐을까?’ 같은 식으로 시작하고 마무리는 흐지부지 ‘한 학생에 따르면’, ‘대중의 반응에 따르면’ 식의 밑도 끝도 없는 출처 불명 의견제시로 끝맺는다. 꼭 메이저 언론 기사만 볼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글다운 형식을 갖춘 글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제발 따라해라

표절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어차피 글의 포맷은 한정적이다. 독후감이든 논설문이든 르포든 글의 구조 자체는 한정적인데 왜 자기 마음대로 글을 창작할까. 기사를 쓰기 막막하면 신문사 홈페이지라도 들어가서 어떻게 썼는지 한번 구조를 보고 따라 해라. 내가 취재한 순서대로, 내가 기억하는 대로 적는 건 기사가 아니다.

항상 ‘생각’해라

꼭 뉴스나 신문을 보라는 얘기가 아니다. 하다못해 유튜브를 볼 때도 단순하게 ‘재밌네’ 정도로 끝내지 말고 사회적인 흐름이 어떤지 생각해라.

중립은 없다. 그래서 네 생각이 뭔데?

중립적인 글은 오로지 정보만 전달한다. 그러나 단순 정보 전달은 단신 보도에 불과할 뿐 기획 기사의 역할이 아니다. ‘이거 좀 재밌겠다’ 수준으로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기자 본인의 의견이 먼저 확실해야 한다.

죽이고 싶거나, 사랑하거나

특정 사안에 입장을 정했으면 비판 기사에서는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물어뜯고 그 반대라면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의 말을 빛나게 해줄지 진심으로 고민해라. 중립적인 양쪽 입장 반영? 같은 기계적 중립은 필요 없다. 모든 사람을 화가 나게 할 뿐이다.

잃을 것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 것

제일 이해 안 가는 부분. 본인이 거짓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학생회나 교직원과 인터뷰 할 때 지레 겁먹고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마라. 네 글 하나가 온 학교에 엄청난 이슈를 끌고 누가 협박이라도 들어올 것 같나? 무슨 대단한 자리에라도 있는 것처럼 겁먹지 마라. 

근거를 갖고 책임감 있게 쓸 것 

위 문제랑 연결되는 부분이다. 스스로 충분히 조사하고 공부하고 준비한다면 누가 아무리 뭐라고 한들 흔들릴 이유가 없다. 

멍청하게 자료만 받아 적지 말 것

자료만 받아 적을 거면 취재를 뭐 하려 하나. 동아리 공연 하나를 해도 변수가 몇 가지는 된다. 시작시각이 바뀌거나, 순서가 바뀌거나, 예고에 없던 무대가 생기거나, 음향사고가 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장을 안 지키고 자료만 받아서 기사를 쓰는 건 오보이자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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