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책 내용이 빨리 해결되는 날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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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책 내용이 빨리 해결되는 날이 오길”
  • 이철승
  • 승인 2023.11.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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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솔뫼인을 찾아 (79) 박경화(한문·91) 동문

환경잡지 기자에서 손꼽히는 환경작가로
쉽게 환경문제 전달해 대중의 반응 이끌어
출간 17년 넘어도 여전히 환경문제는 진행중

올해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영화 ‘아바타: 물의 길’ 속 인간은 부족한 자원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행성에까지 폭력과 파괴를 일삼는다. 관객들은 이 모습을 보며 먼 훗날 지구에 닥칠 재앙을 상상해 보곤 한다. 그러나 자원 채굴을 두고 총성이 터지고, 환경을 파괴하고, 원주민이 고통받는 상황은 상상 속 지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혹은 수십 년 전부터 아프리카에 매장된 고가의 자원을 두고 폭력과 착취는 끊이질 않는다. 전 세계 최대의 콜탄 매장지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콜탄 채굴을 위해 노동 착취와 산림 파괴가 빈번하다. 심지어 콜탄을 판 돈은 내전 중인 콩고의 전쟁 자금으로 쓰여 더 많은 죽음을 부르며, 멸종위기종 고릴라는 서식지를 잃고 밀렵꾼의 총에 쓰러진다.

이 문제가 우리나라에 알려지는 데에는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라는 강렬한 제목의 책 한 권이 큰 역할을 했다. 2006년 출간해 그해 환경부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되고,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기도 하며 전국 초·중·고교 도서관의 필독서로 떠올랐다. 이 책의 작가가 바로 우리대학을 졸업한 박경화 동문이다. 박 동문은 1998년 녹색연합이 발행하는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기자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어 현재는 손꼽히는 환경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고향 예천으로 내려와 녹색의 삶을 실천하며 강사로서도 전국을 누비고 있다. 지난달 경북도청 근처 한 카페에서 박 동문을 만나 환경운동가이자 작가로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달 9일 경북도청 근처에서 박 동문을 만나 이야기 나눴다.
지난달 9일 경북도청 근처에서 박 동문을 만나 이야기 나눴다.

 

어떤 대학 시절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시절 예천 시골 마을에서 딸로 태어나 대학을 가기 쉬운 여건은 아니었지만 합격증 정도는 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입시 공부를 했다. 큰 의미 없이 넣은 한문학과에 합격했는데 막상 합격하니까 부모님이 그대로 대학에 보내주셨다. 사실 한문 공부에는 큰 흥미가 없었다. 입학한 해 5월에 김영균 선배(민속·90)의 분신이 있었는데, 우연히 그 장면을 본 이후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정치에 문제가 많고 사회가 이렇게 격동적으로 돌아가는데 한문 공부는 너무 고루하게 느껴졌다. 교양으로 사회학 수업을 들었는데 오히려 이 시간이 진짜 살아있는 수업이라고 느껴졌다. 동아리도 꽤 열심히 했다. 매년 가을에 통일마당에서 공연을 펼쳤는데 우리 동아리 팬클럽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환경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하신 건 언제인가요?

졸업 후 칠곡에 있는 유기농 농산물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집에 가는 길에 선배 차를 같이 타게 됐는데 좌석에 웬 책 한 권이 포장도 뜯지 않고 놓여 있었다. 물어보니 생태환경 잡지라더라. 호기심에 읽어봤는데 뭔가 욕심 없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내용이 참 좋았다.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이하 작아)를 만나서 정기 구독까지 했다. 잡지에서 소개하는 환경 책도 하나둘 사서 읽다 보니까 자연스레 환경 문제에 관심이 커졌다.

결국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직접 입사하시게 됐는데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요?

직장생활로 많이 지쳐있었다. 돈, 돈, 돈 하는 삶이 지긋지긋했다. 그럴 때 <작아>를 읽으며 ‘나도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에 좋은 일이란 뭘까? 회사에 앉아 협박과 아부를 넘나드는 거래처 전화만 받는 일은 의미 없게 느껴졌다. 반면에 <작아>에 나오는 환경운동가들은 정말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 그 부류에 속하고 싶었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에서 발생하는 <작아>에 입사한 것은 운이 좋았다. 잡지를 읽다가 기자모집 공고를 보고 그냥 지원해봤다. 유명 대학 출신도 아니고 기자 경험도 없는 상태라 큰 기대도 없었는데 덜컥 합격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일부러 명문대 출신보다는 나처럼 좀 어리숙하고 우직한 친구를 뽑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도 내가 꽤 오래 일했다. 기자로 활동하면서 시위, 캠페인, 국회, 기업, 포럼, 국제회의 등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고 환경운동의 폭이 상당히 넓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매년 녹색순례를 떠나는 등 다양한 현장을 경험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순간들이 기억에 남나요?

환경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현장을 찾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과 만나서 캠페인이나 시위에 동참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한다. 특히 녹색순례는 녹색연합의 중요한 전통이자 연례행사다. 평화, 생태 등 주제를 정하고 자연으로, 개발과 오염에 노출된 지역으로 열흘간 순례를 떠난다. 국토대장정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파주부터 고성까지 이어지는 DMZ 순례가 굉장히 좋았다. 군인과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고루 들어보며 통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온종일 순례길을 걷고 나면 밤에 원고를 써서 새벽에 인터넷 기사로 발행한다. 그 사이사이 밥도 지어 먹고, 지역 주민도 섭외하고, 공부하고 다 했다. 녹색순례를 다녀온 다음 다들 눈빛이 달라진다. 나도 느꼈지만 현장을 보고 오면 그 문제에 대한 자신감과 목적의식이 뚜렷해진다.    

갑작스레 기자 일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기사 작성에 어떤 애로사항이 있었는지, 또 어려움을 극복해 낸 특별한 노하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처음 기자가 됐을 때는 글이 매끄럽지 못했다. 일단 무작정 원고를 써서 편집장에게 보내면 글이 한바탕 난리가 난다. 잔뜩 수정하고 보완돼서 돌아오면 다행이고, 그마저도 없이 그냥 지면에서 잘리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내 부족함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글, 좋은 글을 흉내 내려고 애를 많이 썼다. 매달 원고 마감마다 교정·교열을 보면서 다른 기자나 유명 필자의 글을 단어 하나하나 뚫어지도록 읽었다. ‘이걸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이 현장에서 이런 부분도 포착할 수 있구나’ 연구했다. 달마다 잡지를 내려면 중요한 기사부터 자잘한 광고까지 원고량이 어마어마하다. 원고 마감에 쫓기며 밤을 새워 수많은 글을 써내다 보니 글쓰기 실력이 부쩍 늘 수밖에 없던 것 같다. 그 밖에도 취재 나가서 길을 헤매고, 기사 내용 항의도 받고, 힘든 일이 많았다. 그래도 <작아> 기자 활동이 참 좋았다. 나중에 녹색연합 본부로 자리를 옮겼는데 영 재미가 없어서…. (웃음) 오래 못하고 그만뒀다. '

첫 책을 내시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굉장히 우연한 기회였다. 한 모임에서 환경 책을 내려고 출판사와 논의하고 있었는데, 우리 잡지사에 도움을 구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그 전화를 내가 받았고 가볍게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출판 회의에 참여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회의도 영 지지부진하고 책에 넣을 원고도 준비되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보조 역할이던 내가 원고 작성을 제안받는 상황까지 왔는데, 결국에는 모임이 흐지부지되고 출판사가 나한테 단독으로 단행본 출간을 제안했다. 애초에 내가 쓰기로 한 책도 아니고 당시 입사하고 몇 년 되지 않아서 스스로 ‘내가 정말 책을 써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기자 일을 병행하면서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첫 책(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법)이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마침 여성잡지에서 한창 웰빙, 친환경, 이런 소재를 다루던 시기라 내 책을 소개하고 싶다고 녹색연합으로 찾아왔다. 입사 10년도 넘은 쟁쟁한 선배들이 즐비한 사무실에서 갓 신입 티를 벗은 내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으니 굉장히 쑥스러웠다. 그렇게 요란하게 홍보가 되니 출판사에서도 두 번째 책 제안이 이어졌다. 그 무렵에 녹색연합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쓴 책이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다.

저도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작가님의 글을 인상 깊게 읽은 기억이 납니다.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한 잡지에서 콩고민주공화국의 콜탄과 핸드폰, 고릴라 문제를 쓴 글을 읽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핸드폰이 환경 문제와 이어진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나도 사람들에게 환경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과 세탁기처럼 우리가 매일 쓰는 물건, 작은 행동 하나와도 연결돼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게 딱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하고 싶은 얘기였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학생들이 읽을만한 ‘쉬운 환경 책’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고릴라 이야기를 수업이나 환경 프로그램에 잘 활용했다는 연락도 많이 받았고 그 덕에 학생의 필독서로 자리 잡을 수 있던 것 같다. 지금도 강의 나가면 학교 덕분에 내가 살아남았다고 이야기한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콩고 소식을 찾아봤더니 여전히 똑같은 문제가 이어지고 있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맞다. 콜탄 광산도 콩고 내전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이 주목받으며 코발트라는 광물이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콩고는 코발트 광산까지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콜탄과 마찬가지로 이윤은 다국적 기업이 챙기고, 인권침해, 아동·여성 노동 착취, 환경파괴 문제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처음 책을 쓸 때만 해도 몇 년 후에는 문제가 다 해결되고 책 내용이 현실과 동떨어져 더는 팔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 책이 회자되는 게 작가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많이 안타깝다.

이후에도 쉽고 대중적인 환경책을 계속 써내셨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책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성인을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쉽게 쓰다 보니 학생이 주요 독자층이 된 것 같다. 논문처럼 전문적인 연구도 중요하지만 서점에서 대중들과 접하는 단행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그 분야의 인지도를 높이고 쉽게 문제를 전달해야 한다. 쉬운 글을 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않나.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 멀리 해외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어떻게 써야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느낄지 고민한다. 그래야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책이 유명해지면 강의 제안도 많이 받는다. 특히 환경 주제로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아서 더욱 그랬다. 멀리 돌아다니며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쉽고 단순하게 환경을 알려준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에게 환경 문제와 현실을 연결해 주고, 독자들의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을 떠나 예천의 삶은 어떠신가요?

언젠가는 다시 내려오고 싶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고, 인터넷으로 많은 일을 해결하며 그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 책 쓰는 일은 장소가 중요하지 않고, 강연을 다녀도 어차피 전국을 도는데 굳이 서울에 머물 필요가 없었다. 모르는 동네보다 기왕이면 고향 근처로 오고 싶어서 여기 도청 신도시로 왔다. 사람들이 예천에 갔다고 하면 무슨 비장한 각오로 전원생활을 꿈꾸며 귀농이라도 한 줄 아는데 그건 너무 고정관념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버스 타고 KTX도 탈 수 있는 도시라고 입 아프게 설명하고 있다. 차를 살 생각 없느냐는 말도 지겹게 듣는다. 물론 불편할 때도 있지만 대중교통만 타고 다닐 때 나름의 재미가 있다. 기차와 버스 시간을 계산해서 목적지를 찍고 돌아오는 데 성공하면 마치 정교한 퍼즐 맞추기에 성공한 기분이다. 그리고 주차, 차량 관리, 교통 체증을 생각하면 자가용의 단점도 수두룩하지 않나.

앞으로 특별한 인생 목표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지금처럼 강의를 다니면서 좋은 점도 많고 나를 불러준다는 게 참 감사하지만 장거리 출장이라던가 여러모로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일은 접어두고 책 쓰는 일에만 좀 더 집중해보고 싶다. 현장 취재를 다니고 글에 집중하면서 훨씬 다양하고 새로운 주제에 접근하면 좋을 것 같다. 나중에 더 여유가 좀 생기면 마당 있는 집에서 식물을 가꾸며 만들기 같은 취미생활을 즐겨보고 싶다.

후배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사람의 인생이 계획대로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기회가 있다. 그럴 때 그 기회를 꽉 잡아야 한다. 나도 예상치 못하게 출판 제안을 받았을 때 내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후 출판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자기 직업에 전문성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꼭 어려서부터 확고한 목표를 갖고자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환경단체 활동가에서 작가로, 작가에서 환경 강사로 새로운 기회가 조금씩 열리더라. 한 직업을 갖는다고 거기가 종착점은 아니다. 나와 함께 일했던 환경운동가 선후배들도 지금은 교수, UN 환경 전문가, 국회의원, 공무원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특히나 환경 분야는 폭넓게 우리 삶에 연관되기 때문에 해결할 문제도, 활동할 곳도 많다. 그러니까 진로를 고민할 때 너무 취직에만 연연하지 말고 길게 자기만의 방향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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