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들의 사회 -불신시대의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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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들의 사회 -불신시대의 대학-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3.09.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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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시대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수들은 현실에서 결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내용으로 ‘전문가 의견’을 써도 어쨌든 ‘의견’이기 때문에 이것을 이유로 제재 받는 일은 많지 않다. 단지 ‘의견’이기 때문에 거짓말이라도 비판의 위험이 없다고 생각해서, 값을 치러주는 사람만 있으면 내용이 무엇이든 글을 써 주는 자도 있다.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검증을 주로 다루는 과학 분야의 연구자는 그 연구성과가 거짓말로 드러난 경우, 연구자로서 치명적인 법적·사회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신뢰가 순진한 것임을 알려주는 뉴스가 자주 등장하지만 말이다. 일부 판사들은 ‘학자들의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한다. 대학교수들은 이러한 판사들의 무시를 비판하지만, 어쩌면 그 원인의 가장 큰 이유는 ‘의견서’에 대한 윤리 의식이 없는 대학교수 자신일지도 모른다. 정부 기관에서 요청하는 ‘의견서’가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의 알리바이를 위한 것이거나, 형식적인 절차를 위한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와 불신으로 일관해도 좋은 것일까.

반지성주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에 대한 최근 논의는 앞의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순서상 ‘반지성주의’의 의미부터 먼저 확인해야 하겠지만, 정교하게 학술적으로 정리된 개념이라기보다 정치적 현상에 대한 수사로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으므로 여기서도 딱 그 정도만 살펴본다.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장면에서는 반지식인주의·반과학주의와 등치시키기도 하고, 지식인과 엘리트에 대한 비판으로써 사용될 때도 있으며, 예술·인문학 등 지성 분야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비실용적이라고 비판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혹은 언론이 지성과 과학을 거부하는 행위에 대하여 방조하고 있는 상황, 즉 가짜뉴스로 선동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면서 언급되기도 한다. 예컨대, 광우병에 대한 공포심으로 이루어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 코로나백신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한 백신접종 거부, 일본의 방사능오염수 방류에 대한 반대운동 등을 ‘괴담’에 의해 선동된 것으로 여기고 반지성주의라 부르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앞의 세 가지 사례를 동렬에 두는 것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서 정치적 태도에 대한 찬반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괴담’과 ‘합리적 이의제기’를 구분하지 않고 기사를 내는 언론 -이것도 반지성주의- 에 대한 비판이 목적도 아니다. 지성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하여 절대적인 맹신을 촉구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대학의 존재 의의와 신뢰의 회복

자신이 속한 시대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공공선이 무엇인지는 동시대의 사람들과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을 해야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전제에는 각자의 철학적 사유(思惟)와 비판적 사고가 있어야 한다.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자신이 직접 판단한 결과에 근거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대학이다. 그 이전 단계에서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합의된 기억을 습득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이것을 전제로 대학에서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경험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모든 시대의 대학들은 기본적으로 인문학적 지식, 과학적 사고, 예술적 감성을 교양이라 부르고 이것을 가르쳤다.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헌법 제31조 제4항에서 대학에 대해서만 별도로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공권력 등 외부 세력의 모든 간섭을 배제하도록 명시한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며, 대학에서 특히 저학년에 교양수업 비중을 많이 두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는 취업률과 전문성 제고라는 학교 정책상 대부분의 교양수업 자리가 ‘영어’ 관련 과목으로 채워져 있고, 부전공·복수전공을 권장하여 교양수업을 폭넓게 듣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말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시민으로서의 덕성을 갖출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의 목적과 역할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늘날 학력보다 출신이 더 중요하다고 하거나, 학업능력을 갖추어도 출세할 수 없다거나 하는 사고방식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갈 시민으로서의 지식인층을 얇게 만들고 소통의 질을 떨어뜨리며, 결국에는 지역사회와 나라 전체를 위태롭게 한다. 근거 없는 신념이나 집단에 맹목적으로 따를 것이 아니라, 적어도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는 누구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지성에 대한 거부는 거짓말쟁이들을 가려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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