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하는 전통한지, 안동한지 / 한지의 대중성을 살려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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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는 전통한지, 안동한지 / 한지의 대중성을 살려야 해
  • 강주혜 수습기자, 김은주 수습기자
  • 승인 2023.06.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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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재를 수리하는 한지
수요 부족으로 공예도 몸살

한지는 우리나라 전통방식으로 제조한 종이로 닥나무로 만들어 ‘닥종이’라 불리기도 한다. 중국의 선지와 일본의 화지와는 달리 닥나무 껍질을 주원료로 사용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제조방식의 한지를 ‘수록한지’라 말하며 종이의 어원 역시 닥나무 껍질인 저피에 뿌리를 두고 저피-조비-조해-종이로 변화한 말이다.

안동에 이런 수록한지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 2017년부터 경북도청, 안동시청에서 지급하는 훈ㆍ포장 증서에 사용되는 한지를 납품하는 국내 최대 수록한지 생산업체라는 안동 한지 공장(안동한지)이다. 국내에서는 수요가 없다시피 해 판로 개척이 어렵다는 한지. 그런데도 대를 이어 한지를 만들고 있는 곳이다.

수록한지 최대 생산 안동한지

안동한지는 ‘경북 안동시 풍산읍 나바우길 13’에 위치한다. 흔히 생각하는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도색된 철 기계가 가득한 공장의 모습은 아니지만 국내 최대 수록한지 생산업체라는 명성에 걸맞게 여타 공방과 달리 큰 규모를 자랑한다. 실제 한지를 제조하는 한지 제작공장뿐만 아니라 한지 전시판매장·제조체험장·상설전시관 등이 있다.

1988년 설립된 안동한지는 올해로 36년째 운영하고 있다. 1999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과 정부 관계자들이 안동한지를 방문한 것이 세계적 홍보 효과를 거두었고 그 이후 문화재청에 국보 196호 신라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종이를, 2005년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 영인본 한지를, 2014년에는 초조대장경 복원간행 사업에 한지를 납품했다. 2008년에는 안동시 지정 특산품으로 선정됐다.

안동한지의 자랑은 순지를 주로 생산하는 것과 수록한지 최대 생산업체라는 것이다. 30년 이상의 경력자가 근무하며 닥나무와 닥풀은 주변에서 직접 생산한다. 한지 품질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창호지, 화선지, 배접지, 순지, 장판지, 색한지, 나염지, 요철지 등 9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한지를 생산한다.

이영걸 안동한지 대표가 도침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영걸 안동한지 대표가 도침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한지의 제조 과정

그렇다면 한지는 어떻게 만드는가. 안동한지에서 진행하는 공장 견학, 한지 뜨기 체험은 한지 만들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안동한지는 한지를 만들기 위해 경북 예천·풍산·의성 등지에서 1년생 닥나무를 겨울에 채취한다. 닥나무를 가마솥에 넣고 물을 부어 10시간 이상 삶으면 껍질을 벗겨낼 수 있는데 이때 벗겨낸 껍질을 건조하면 한지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건조한 껍질을 다시 물에 불려 칼로 표피(흑피)를 제거해 흰 속껍질만 남기는데 이를 ‘백닥’이라 부른다.

만들어진 백닥은 안동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깨나 메밀 때를 태워 만든 천연 잿물에 넣어 7시간 정도 장작불을 지펴 다시 삶는다. 잿물에 삶은 백닥을 꺼내 맑은 물로 3~4일간 헹구고 햇볕에 말려 표백시킨다. 표백한 백닥을 다시 물에 넣고 불순물이나 먼지를 제거하는 ‘티 고르기’ 작업을 이어간다. 이는 기계로 할 수 없어 사람이 하나하나 골라내야 한다. 티 고르기가 끝나면 옛날 아낙들이 돌에 빨래를 올리고 방망이로 두들겼던 것처럼 만들어진 백닥을 닥돌에 올려놓고 닥방망이로 40~60분 정도 두들긴 후 나온 닥 섬유를 찧는다. 백닥을 찢고 으깨 섬유질로 ‘닥죽’을 만든다.

만들어진 닥죽을 지통에 담아 깨끗하고 좋은 물과 함께 넣고 세게 저은 후 ‘황촉규 점액(닥풀)’을 자루에 담아 걸러 닥죽이 서로 잘 섞이도록 다시 저어준다. 황촉규 점액은 일종의 풀 역할로 시간이 지나면 접착성이 사라져 끈적이지 않는 종이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준비한 종이 죽을 발로 떠내면 비로소 우리가 아는 한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발로 뜬 종이는 ‘바탕’이라 하는데 여러 장을 뜰 때는 가는 실 한 가닥을 걸쳐놓고 그 위에 다음 바탕을 올린다. 쌓아 올린 바탕 위에 널빤지를 얹고 무거운 돌을 올려 밤새도록 천천히 물이 빠지게 만든다. 물을 완전히 뺀 바탕은 한 장씩 분리해 ‘열판’에 붙여 완전히 건조한 후 그 종이를 다시 모아 ‘도침 과정’을 거친다. 도침이란 종이 표면이 고르고 평평해지도록 다듬이질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드디어 한지가 완성된다.

다양한 한지의 종류

이렇게 만들어진 한지는 국내 고문헌에 기록된 명칭만 284종이 등장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용도에 따라 문에 바르는 ‘창호지’, 연하장이나 청첩장 등에 쓰이는 솜털, 이끼가 박혀있는 ‘태지’, 배접용으로 쓰이는 배접지나 책 매는 용도의 ‘책지’도 있다. 전통 한지 중 명확한 제조법이 전수되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이 중에서 ‘태지’는 2020년 국립산림과학원이 핵심 원료가 해캄임을 밝혀내고 전통기법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공정에 따라서는 한 장의 종이를 ‘순지’, 2~5겹을 합쳐 만드는 ‘2~5합지’, 염색해 만드는 ‘나염지’, 옻칠을 해 만드는 ‘옻지’, 외발뜨기 기법으로 제작한 ‘외발지’, 포수처리를 하는 ‘포수지’, 표백 처리한 ‘표백지’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지를 부르는 말도 다양한데 대표적으로 천년을 간다고 해 붙여진 ‘천년지’, 하얗기가 명주와 같고 질기기가 비단 같다 해 ‘잠견지’, 미인의 손길처럼 부드럽다 해 ‘백면지’, 깨끗하고 품질이 좋은 ‘별백지’ 등이다.

사라질 위기에 처하다

이렇게 정성스러운 공정을 거쳐 만드는 한지가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011년만 해도 전국 28곳이 있던 한지 공방은 2023년 기준 현재 19곳에 불과하다. 한지문화산업센터에서 정리한 한지 공방은 ▲경기도 가평군 장지방 ▲강원도 원주시 원주한지 원주전통한지 ▲전라북도 완주군 대승한지마을 ▲충청북도 괴산군 신풍한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전통한지 ▲경상북도 안동시 안동한지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전통한지 ▲전라북도 전주시 고궁한지 대성한지 성일한지 용인한지 전주전통한지원 천향피앤비 천일한지 ▲전라북도 임실군 천웅전통한지 덕치전통한지 ▲경상남도 의령군 신현세전통한지 ▲경상남도 함양군 이상옥전통한지 총 19곳이다. 각 도 단위로 많으면 두 개, 보통 한 곳 정도 있다.  한지 공방은 서구화된 생활 방식과 쉽고 싸게 대량 생산하는 목재 펄프를 이용한 양지가 들어오며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꾸준히 줄어드는 한지 공방의 수는 한지가 사용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한편 한지 업계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지난 2020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에 한지문화산업센터를 개관하는 등 한지 홍보에 힘쓴다. 한지문화산업센터는 전국 400여 종의 전국 전통 한지를 한눈에 보고 비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동시에 지역 공방과 협력해 전통 한지를 전시ㆍ홍보하고 판로 개척을 지원한다.

지난 2016년부터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훈ㆍ포장 증서에 전통 한지를 사용한다. 이는 우리 한지의 우수성을 체감하고 실제로 사용하며 꾸준한 수요를 창출하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공공 수요 창출’인 것이다. 이영걸 안동한지 회장은 “한지의 문화성을 대중적으로 이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통을 잇는 것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런 식의 사용처”라며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을 보수·복원할 때만이라도 전통 한지를 사용해 옛것 그대로의 모습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관리의 번거로움과 비용 문제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편리성을 위해 포기하기엔 우리 문화재란 자부심과 자존심은 너무나 크다”고 전했다.

 

침체된 한지공예, 그 현황은?

앞서 말했듯 한지 업계는 여전히 축소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한지의 우수성을 체감하고 사용해야 우리 한지를 지킬 수 있다. 대중이 가장 쉽게 한지에 접근할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지공예다. 안동시는 2012년 제1회 안동 한지 축제를 시작으로 매년 한지 축제를 진행했으며 올해 2월, 한지 공장 시설개선까지 완료하며 한지를 지원했다. 그런데도 한지공예의 경우 직접적인 금전 지원은 적을뿐더러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한지공예 시장의 전망은 좋지 않다. 전국 안동한지 대전 초대작가를 시작으로 전국한지공예대전 특별상 등을 수상한 김은주 한지공예가는 “한지공예 지원의 경우 주로 청년지원사업이거나 아예 노후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 중심이라 중장년층의 현직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수업이 취소돼 경제적으로 어렵다. 김 한지공예가는 “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지공예를 침체기로 본다”며 “저 또한 전통성, 퓨전과 같은 방향성에 대해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한지공예가 사라질까 걱정입니다.

개인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전통공예협회 천연염색 이사 및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상한 송인영 한지공예가는 “요즘 계승하려는 사람들이 없어 한지공예의 계승에 어려움이 있다”며 “전문가가 전수하고 젊은이들이 다양한 매체로 한국적인 작품을 만들면 국내외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 독일 구매자가 한국적인 요소가 잘 드러나 있어 한지공예품을 구매했다”며 “한국의 특징을 살린 제품이 나온다면 앞서 말했듯 경쟁력이 생겨 한지공예뿐만 아니라 한지도 더 많은 전수가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안동시는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한 한지공예방문교실과 한지가공시설 유지보수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한지공예가가 점점 줄어들고 있을뿐더러 기존 한지공예가의 경우 이미 고령화로 인해 다른 공예 분야보다 활성화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김 한지공예가는 “연령, 지역, 환경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한지의 존재 자체가 어딘가에 쓰이기 위함이기에 한지를 많이 쓰는 한지공예 업계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한지공예가와 대중을 이어주는 전국 안동한지 축제

오는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풍산읍 안동한지전시체험관에서 안동한지축제가 열린다. 한지 축제는 전시, 공연, 체험 행사를 통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안동한지를 직접 체험하고 대내외 전통 한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등 지역 한지 업체, 한지공예인 등과 연계해 전통 한지를 활성화하고자 마련된 축제다. 김 한지공예가는 “제1회 초대작가로 시작해 매년 참가자로 활동하다 몇 년 전부터 안동한지문화진회 이사를 맡아 전반적인 축제 운영을 관리한다”며 “올해도 참가자 및 운영자로 참가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참여자로서는 좁은 전시 공간과 낮은 접근성이 아쉽다”며 “하지만 축제가 배움과 소통의 장이 돼 많은 사람이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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