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잘 죽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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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잘 죽는 게 목표입니다
  • 이지윤
  • 승인 2023.05.0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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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이별 파티에 오세요
누구나 꿈꾸는 웰다잉

최근 들어 숨을 색색거리고 입원이 잦아진 할머니, 까맣고 노란 털이 하얗게 세는 강아지 까미는 우리 집 최고 걱정사다. 밥을 너무 먹지 않아서 너무 먹어서, 잠을 너무 자서 자지 않아서, 너무 움직여서 움직이지 않아서 집 안이 온종일 우울했다 떠들썩해지기를 반복한다.

그들이 떠나간 후를 떠올리면 그들과 가장 가까운 이들이 떠오른다. 빈자리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굽은 등과 몇 년을 동고동락한 언니를 잃어버린 강아지 두부를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그들의 슬픈 모습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그렇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삶의 마무리다.

죽어감은 삶의 일부다

내 또래들이 누구보다 찬란한 청춘을 보내야 하는 시기에 떠나갔다. 세월호 참사 때 봄 소풍을 기대하던 중1이었고 이태원 압사 사고 때는 한참 편집 마감을 위해 늦은 밤까지 선후배와 학교에 남아있었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지인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을 때도, 태풍 힌남노가 고향을 휩쓸었을 때도 죽음이 항상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을 경험해야 할까.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갑자기 다가온 죽음 앞에 인간은 항상 원망의 목소리를 낸다.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기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음은 어떤 의미에서 삶의 완성이다. 찬란한 완성을 위해 우리는 열심히 살아간다. 누군가의 완성을 보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숭고한 일이다.

나의 장례식은 당신의 파티 같길

누군가의 죽음 뒤에는 남겨진 이들이 안고 가야 할 게 너무 많다. 슬픔과 분노, 그리움. 떠나간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것들 말이다. 그 흔한 조부모님의 장례식도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이런 계획을 세운다는 걸 알면 다들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장례식은 단 한 명도 울지 않았으면 한다. 원체 위로를 못 하는 성격인 데다 물리학적으로 당장 눈물을 닦아줄 수도 없고 ‘나는 괜찮다’라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하니 말이다.

각자 화장을 하든 머리를 하든 최대한 꾸민 모습으로 내 관 앞에 다들 앉아주길 바란다. 흔한 육개장이나 수육, 문어숙회는 없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줬으면 좋겠다. 흰 국화는 너무 고리타분하고 예쁘지도 않으니 노란 꽃으로 주위를 꾸며라. 노란색이 얼굴에 잘 받지 않아서 살아생전에 즐기진 않았지만 죽어서는 조금 즐겨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자. 목소리가 작거나 조금이라도 울먹이는 사람은 꿈에 찾아가서 잔소리할 테다. 그리고 그 중에서 핸드폰이 가장 최신형인 사람은 그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겨줬으면 한다. 남겨진 이들이 언제든지 나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늘까지 그 모습이 닿도록 말이다. 그리고 영상편지를 하나 남겨두겠다. 평소처럼 시덥지 않은 소리를 하며 몇 명이나 왔는지 혹시 돈이 너무 많이 들지는 않았는지 물어보기도 할 거고 내가 펑펑 울면서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고맙다,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겠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는 뭘 해도 좋다.

남겨진 이들에게

날 너무 그리워하지 않기는 바란다. 그리고 기일에는 다 같이 모여 나를 기억하고 고기라도 구워먹으러 가길 바란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 찾아와도 ‘이것도 인연인데 밥 한 끼 어떠냐’고 먼저 물어봐주고 내 부끄러운 이야기나 좋았던 추억을 나누며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면 한다.

고통 속에서 갑작스럽게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 이후는 그저 신만이 아는 미지의 세계이지만 죽음을 두려워해 피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죽음에 당할 수밖에 없다. 그저 열심히 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를 더하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 여행길을 되돌아볼 때 자신에게 말하자. 이만큼 살아내느라 정말 애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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