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아닌 글로 표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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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아닌 글로 표현하다
  • 김혜미 기자
  • 승인 2019.06.13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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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했던 기자의 삶
미지의 세계에서 추구한 미래

 

자랑스러운 솔뫼인을 찾아 <55> 방송작가, 정지선(행정·08) 동문

대학생활 4년 중 3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오로지 신문사에 열정을 쏟은 사람이 있다. 학과보다, 학점보다, 심지어 스펙보다 신문사에 더 집중한 정지선(행정·08) 동문이 그 주인공이다. 정 동문은 어떤 힘든 일이든 그 속에서 재미를 찾는다.

잘할 수 있는 기자 생활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에 호기심을 느껴 방송작가가 된 정 동문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일에 만족하며 하나의 방송을 구성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젠 대화보다 글이 더 편하다는 정 동문은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채 지난 언론계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풀었다.

학보사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 백일장에 자주 나갔어요. 그때마다 큰 상이든 작은 상이든 하나씩 받아서 글을 창작하는 것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행정학과에 입학했고 글재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미련이 남았어요. 그때 당시 기숙사 룸메이트인 신문사 대학부장 최수빈 선배가 너 신문사 기자 해보지 않을래?’라고 제안했고 그 의견을 받아들여 신문사 생활이 시작됐어요. 어떤 의지나 목표를 가지고 지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코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학보사 활동을 돌아보면서

처음 신문사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는 나는 상도 받았는데 글 좀 쓰지하는 자만심이 있었는데 시작하자마자 한 번에 무너졌어요.

기자는 단순히 글솜씨가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닌 취재력과 기획력이 필요한 일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위계질서도 명확하고 호칭을 직급으로 불러야 했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하지만 수습생활을 하면서 기사 쓰고 취재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게 됐어요.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먼저 알게 되고, 그것이 나를 통해서 전달돼 처음 쓴 기사가 찍혀 나왔을 때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끝까지 해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됐어요.

정기자가 되고 대학부장이 되면서 호별로 쓰는 기사도 많이 늘어났어요. 그럴수록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서였는지 기자라는 자부심까지 느꼈어요. 물론 학점관리 하랴, 스펙 쌓으랴 시간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학과 활동보다 신문사가 더 중요해졌고 마감 때문에 며칠씩 잠도 못 잤지만 오히려 잠을 많이 자고 여유로워질 때가 더 어색했어요. 게으름 피우며 축 늘어져 있을 때보다 정지선 대학부 기자일 때 더 활기가 돌았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사건이 있어요.

공학 3호관을 지을 때 일어난 일인데 지금도 생생해요. 당시 건물 실사 과정에서 사고가 있었는데 인부 한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어요. 당시는 방학 중 활동 기간이라 취재 의무가 없었는데도 조용한 학교 안에 울려 퍼지는 앰뷸런스 소리를 듣고 뭔가 있다는 걸 직감하고 달려갔어요. 현장을 맞닥뜨렸을 때는 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높이가 약 4m 정도 되는 곳이었고 그 아래에 물이 고여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거기에 시신이 떠 있더라고요. 그 시신을 동행했던 후배 기자 두 명과 현장 인부들, 그리고 출동한 구급대원들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끌어 올렸어요. 사망한 인부의 신상을 알게 됐을 때는 더 안타까웠어요. 고인의 나이가 39세밖에 되지 않았더라고요.

신문사로 돌아와 바로 기사를 썼어요. 신문발행을 하지 않는 방학 중 기간이라 그 기사를 자유게시판에 올렸죠. 신문에 싣지 못한 기사인데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

신문사 후배들과 함께했던 추억들이 많이 생각나요. 마감 때 편집실 바닥에 신문지와 이불을 켜켜이 깔아서 쪽잠을 자던 모습, 집에 갔다 올 시간이 없어서 한겨울에 화장실에서 찬물로 씻었던 일도 기억나요.

교내 화재 실태를 조사하러 다닐 때였는데 오래된 소화기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그게 뿜어져 나가 가루를 죄다 뒤집어썼던 일, 수련회 때 수박 먹고 얼굴에 씨 뱉기 게임을 하다가 사진이 찍혀서 영원한 흑역사로 남았던 것들까지. 하나 하나 다 떠올리면 웃음부터 나는 추억들이에요.

방송작가를 한 이유는?

거의 3년 가까이 안동대신문사 기자로만 활동하다가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까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고요. 취준생들이 다 그렇듯 모집공고부터 뒤져봤어요.

그때 같은 과 동기가 안동 MBC 작가 모집 공고가 떴다며 알아봐 주겠다고 했어요. 기자를 할까 작가를 할까 기로에 놓였는데 기자를 한다면 잘할 자신이 있었지만 방송작가라는 미지의 직업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경북은 제가 태어난 곳이고 가장 잘 아는 익숙한 곳이기 때문에 조금 더 경북에 있고 싶었고요.

중앙 방송국과는 다른 지역 방송국만의 장점이 있나요?

방송작가는 90% 이상이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그렇다 보면 서울과 지역의 경계가 모호해져요. 지역 외주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공중파로 송출할 수도 있고 지역에서 기획한 것을 서울에서 종합 편집해 송출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딱 정의하기가 어렵죠.

그렇지만 방송작가로서 굳이 지역 방송국의 장점을 따진다면 중앙보다는 지역의 장점이 많다고 느껴요. 막내작가, 취재작가라는 이름으로 경우에 따라서 10년 동안 자기 글을 못 쓰는 작가도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역에서는 바로 자기 글을 쓸 수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종합구성물부터 매거진, 대담, 시사, 다큐멘터리 할 것 없이 다양하게 해봤어요. 이렇게 경험을 빨리 쌓아두면 프리랜서라는 특성상 어디에서든 일할 기회가 많아져요.

무엇보다 메인으로 하는 전국시대라는 프로그램은 지역에서 만들어서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으로 송출을 하는 매거진이라 이점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죠.

방송작가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보람이죠. 방송작가는 처음과 끝을 만드는 사람이에요. 영상에 대한 편집권은 온전히 PD에게 있지만 그 내용을 구성하고 채우는 건 작가의 몫이 크거든요. 본인이 얼마만큼 쏟아붓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불타오르는 기분을 느껴요.

기자는 취재부터 기사 작성까지 오롯이 혼자만의 싸움을 하지만 방송은 협업이라 좀 달라요. 그만큼 제가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지금까지 방송작가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죠. 작가의 구성안이 담고 있는 핵심을 잘 살려주는 카메라 감독, 그것을 표현해 주는 진행자와 리포터, 프로듀싱을 통해 프로그램으로 완성시키는 PD, 센스 있는 C.G작업과 음악 믹싱까지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탈이 생겨요. 그러고 보면 제가 인복 하나는 타고 난 게 아닌가 싶네요.

기획하고 싶은 방송 콘텐츠은?

농촌 감성 예능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어린 시절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그 농촌 감성, 촌 아이 감성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지방소멸 시대에 4차 산업혁명 없이도 지역에서 재밌게 살 수 있는 대안을 찾고 알려주는 감성 예능이면 좋겠어요. 거기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출연한다면 금상첨화고요.

지금처럼 아이 하나 키우는 것에도 교육과 계획을 필수로 하는 시대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께 마냥 귀염받았던 그 시절이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방송작가로서 최종 목표

깨어 있는 한 글을 쓰고 싶다’, ‘항상 깨어있는 방송장이가 되고 싶다이게 제 목표예요. 사실 꿈이나 목표 같은 것 없이 살았고 인생의 모토 역시 오늘 주어진 일을 잘하자였거든요.

그래서인지 아직 다른 일에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가끔 현실적으로 힘든 순간들도 있지만 저는 제 일이 무척이나 좋거든요.

언론계 진출을 생각하는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말

방송 언론인이 되는 일에 공부를 잘해야 하고 스펙을 잘 쌓아야 한다고 말을 해주고 싶진 않아요. 주변 언론인들 대부분 학벌 좋고 스펙도 물론 좋죠.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인데 꼭 엘리트 코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Q. 학보사 기자 시절, 전공이 도움 됐나요?

전공이 행정학, 사회복지학인데 사실 기사 쓰는 일과는 별개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지나고 나면 도움 되지 않았던 일이 없었어요. 대학부 기자였기 때문에 본부 직원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행정직원 중 학과 선배들이 많았거든요.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취재가 훨씬 수월했던 것 같아요.

Q. 기자 생활한 것이 방송작가가 될 때 도움이 됐나요?

물론 도움이 많이 됐어요. 방송작가는 영어 실력, 학점 이런 것보다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공중파 방송사에서는 아카데미를 개설해 수료한 사람을 우선순위로 뽑을 때가 많아요. 안동대 신문사 기자를 하면서 교육의 기회를 많이 얻었고 그 덕분에 방송작가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학점관리나 스펙 관리에 그렇게 소홀하진 않았다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해요.

Q. 방송작가는 무엇을 하는 직업인가요?

작가니까 글만 쓰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엄연히 따지면 방송작가는 구성하는 사람이에요. 예를 들어서 방송 콘셉트가 정해지면 출연자를 섭외하고 어떤 질문을 할지 어떤 대답들이 오갈지 미리 파악하고 이것을 대본으로 꾸미는 일까지 해요.

방송작가가 영향을 미치는 곳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 이면에는 출연자에 대한 사전 파악과 취재도 포함되죠.

Q. 방송작가를 위해 특별히 한 공부가 있나요?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출판 관련 공부를 했고 방송 아카데미도 다녔어요. 특별히 공부한 게 있다면 그 두 가지에요.

Q. 첫 녹화 때의 심정

첫 녹화 때는 마냥 신기했어요. 제가 쓴 대본을 저렇게 읽고 그것이 생방송으로 나가는 것과 마지막에 제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앞으로 더 잘 해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눈을 크게 뜬다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그 말을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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