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自繩自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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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自繩自縛)
  • 조준희
  • 승인 2021.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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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한 말과 행동에 정치계 넘어 지지 민심에도 발 묶여
교육의 장 대학, 청년 표심 얻으려 정치판에 악용돼선 안 돼

한나라 때 원섭이라는 사람 아래서 일하는 노비가 시장에서 백정과 말다툼을 벌인다. 노비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백정을 죽이고 만다. 이를 본 무릉 태수는 “노비가 살인을 저지른 것은 그 주인이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므로 원섭이를 죽여 죄를 묻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협객들이 태수의 뜻에 반대했다. 그들은 “원섭의 노비가 법을 어긴 것은 그가 부덕한 탓이다”며 “하지만 노비를 죽이는 것보다 그에게 웃옷을 벗고 스스로 옭아매어 법정에 나가 사죄하도록 하는 것이 태수님의 위엄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고 간언한다. 자신이 만든 줄로 제 몸을 스스로 묶는다는 뜻을 가진 고사성어 ‘자승자박’의 유래다.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결국 자신이 구속돼 어려움을 겪는 것을 빗대어 말한 것이다.

지난달 13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우리대학에 방문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로 나선 윤 전 총장은 총학생회와 간담회라는 명목 아래 만났다. 간담회란 정답게 이야기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모임이나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온 모양이다. 한창 전공 공부와 취업 준비에 열중인 대학생 앞에서 “지금 기업이 기술로 먹고 살지 손발로 노동을 해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며 “그건 인도도 안 하고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의 뜻대로 해석하자면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술을 발전 시켜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경선 후보라기엔 손발로 일하는 다수의 국내 노동자를 넘어 인도, 아프리카 등 국제사회를 무시하는 경솔한 발언이다. 윤 전 총장의 “임금에 큰 차이가 없으면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큰 의미가 있겠냐”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 직장에 평생 근무할 생각이 없다”라는 발언도 논란이 됐다.

앞뒤 발언을 요약해보면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건 아니지만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고 임금 체계를 연공서열제에서 직무급제로 바꿔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상관없이 임금을 받게끔 하자는 말이다. 노동 시장 유연화는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기 쉽게 바꾸고 노동 시간과 임금도 제한 없이 조정하자는 것이지만 윤 전 총장은 “해고를 자유롭게 하는 건 아니지만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자”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한 셈이다. 배움의 터전인 대학에 와 왜곡된 노동관을 뱉어두고 갔다. 간담회를 마친 직후 언론은 윤 전 총장의 안동대 방문 기사를 수없이 쏟아냈다. 대학 측과 학생들은 단순 사진 찍기용으로 방문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모두가 가볍게 보고 있던 간담회의 기사 제목 대부분은 ‘막말’, ‘실언’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사실 대학 방문 전부터 입만 열면 문제라는 인식이 강한 인물이었다.

‘주 120시간 노동’에서 시작해 계속되는 실언, 가족 문제, 부정식품, 페미니즘 등은 그 자신을 논란의 중심에 서게 했다. 윤 전 총장 측은 “전체 발언을 살펴보면 그런 맥락이 아니다”며 논란마다 해석하기 급급하다. 말 한마디에 줄 하나씩 몸에 감더니 이젠 아예 꽁꽁 묶여 비호감도는 꾸준히 상승 곡선을 보인다. 윤 전 총장처럼 대학을 찾아 청년을 활용하고자 하는 정치인은 많다. 지난 2018년 3월 총학생회는 전년도 총학생회장의 권유 혹은 강요에 따라 권기창 전 안동시장 후보 지지 성명을 냈다. 권 전 후보는 우리대학 교수로 청년, 특히 대학생 표를 얻기 위해 총학생회라는 이름을 내세웠다. 또 당시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가 총학생회 초청으로 특강을 가졌다. 학내에서 당 기호를 나타내는 숫자를 손가락으로 표시하며 사진까지 찍어 논란이 됐다. 대학이 정치적 공간이 돼선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정치란 우리 삶에서 아주 가까이 함께하고 있으며 교육도 정치의 일부다. 하지만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할 대학이란 공간을 악용하고 남용하려는 일부 정치인과 정당의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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