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 의미 퇴색, 민주주의 열쇠 잃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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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 의미 퇴색, 민주주의 열쇠 잃어가다
  • 조준희
  • 승인 202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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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민주주의 가치 실현 위해 곧바로 선 공론장 역할 필요
다양해진 논의의 장에 소통 가능성 보이지만 한계도 극명해
침묵의 대학사회, 공론장 부재인가 구성원 관심·참여 부족인가
사회 문제가 개인 문제로 직결… 공론장 향해 함께 소리쳐야

대학에 학생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학생 의견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 1991년 5월엔 온 학생이 한데 모여 공안통치 분쇄를 외쳤다. 그들은 공론의 장을 스스로 요구하며 민주주의에 한발 더 나아갔다. 이처럼 공론장은 민주주의 실현의 열쇠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 개념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그는 공론장을 ‘민주주의의 원리’로 해석했다. 사회구성원 간 합리적 토론을 통해 보편적 이익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담론적 공간이 바로 공론장이기 때문이다. 공론장이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공공성에 뿌리를 둔다. 단순히 이야기나 논의가 오가는 장이 아닌 공공성을 지녀야 한다.

이 원리는 또 하나의 사회인 대학에서도 그대로 적용한다. 학내 민주주의를 완벽히 실현하기 위해 공론장 형성은 필수다. 이번 학기 동안 코로나19와 비대면수업, 학사구조 개편, 대학 통폐합 등 의미 있는 공공 사안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그러나 공론장보다는 ‘공론화‘라는 단어로 익숙해졌다. 공론화는 대개 화젯거리, 의제화, 심지어 폭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대부분 이것이 이뤄지는 공간을 공론장으로 생각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달로 손가락만 움직여도 수많은 토론의 장에 들어설 수 있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도 활성화돼 셀 수 없을 만큼 새 글이 올라오고 화제나 폭로도 넘쳐난다.

물론 공론이라는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오해의 소지도 있다. 앞서 말했듯 공론은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해 깊은 토론을 거친 논의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높은 접근성과 참여도에도 뚜렷한 한계가 있다. 익명 기반 체계에 더불어 대학에서 인정하지 않는 애플리케이션이라 공적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공 사안에 대한 토론이 깊게 진행되지 못하는 점도 있다. 우리대학에 현재 운용 중인 공론장은 다양하고 많은 토론을 담아내기에 지극히 적은 수다. 대학 홈페이지 e-총장실엔 3월부터 지금까지 건의 및 문의 80여 개가 등록돼 있고 총장과 담당자가 일일이 답변하고 있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에 하루에도 수십여 개 글이 올라오는 걸 봤을 때 비교조차 되지 않는 양이다.

대학 언론 또한 중요한 공론장 중 하나다. 보통 학보나 교지, 방송국 등을 포함하는 대학 언론은 각각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공통으로 공공 사안에 대한 전달 및 여론 형성을 통해 공론장 기능을 수행한다. 대학 내 주요 사안 및 사회 현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정보 전달, 여론 형성, 감시 등의 역할을 한다.     대학 언론이 공론장으로 원활히 기능하는가에는 의문도 따른다. 대학 언론이 공론장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이유로 구독률과 열독률의 저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공론장은 구성원의 직간접적인 만남으로 형성해야 하지만 대학 언론을 보는 학생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공론장을 형성해야 할 구성원 자체가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설문조사를 시행하면 수백 명에서 천 명이 넘을 정도로 관심을 두지만 결과에 대한 기사는 신경 쓰지도 않는다. 학내 논의의 장이 공론장으로 기능하는 데 한계에 부딪힘에 따라 사회적 분위기도 전환돼야 한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대다수다. 자신의 문제가 공동체 전체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사고해야 공론장이 활성화된다.

우리 사회는 사회 문제가 왜 개인 문제까지 이어지는지 이해할 수 있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지향할 가치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들어가는 학생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담론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학생회의 장기적인 노력이 바탕에 있어야 하며 학생사회에 관심을 두고 주체를 발굴해야 한다, 학생회가 자신을 스스로 서비스 제공자로서만 인식하거나 학생 요구를 잘 담아내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공론장은 물론 학생자치도 무너질 것이다.

우리대학은 공론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구성원의 논의를 거쳐야 하지만 작은 목소리는 묻힌 공공 사안도 많다. 공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꺼내진 사안을 민주적인 절차로 처리할 수 없음을 뜻한다. 서로가 공론장을 향해 움직이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잃고 있는 민주주의의 열쇠를 다시 거머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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