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록 교수 퇴임전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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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교수 퇴임전을 다녀와서
  • 서별 (대학원 민속학과)
  • 승인 2023.03.01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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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종이나 화면을 보며 압박감에 한숨을 쉬는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재능과 노력에 따른 차이야 있겠지만 글짓기라는 작업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어떤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아야하며, 정확한 단어로 명료한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문장력이 좋다고 해서 자신의 의견을 항상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조언 없이 자신의 글에서 오류를 발견하는 노련함은 전문가들도 쉽게 갖추기 어려우며, 글이 유기적인 짜임새를 가질 수 있도록 탄탄한 논리를 구축하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관문을 모두 통과하더라도 취향이라는 벽에 부딪히는게 현실이다. 잘 쓴 글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니고, 심경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글이 반드시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산 넘어 산인 이 어려운 일을 직업으로 삼는 독특한 사람들이 있는데, 평론가도 여기에 속한다.

타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내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하는 일보다 배는 어려운 지적 노동이다. 인간의 사고는 사회적 배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며,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싸움을 벌이는데, 19세기의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반 고흐와 20세기의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평론가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반 고흐가 테오나 지인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로 그의 생각을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는 있겠지만 죽은 사람의 진심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 글처럼 명료한 전달 수단도 이렇게 해석하기 어려운데 그림을 읽는 작업은 얼마나 까다로울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이 글보다 표현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데, 걸작이 제공하는 황홀한 시각적 경험에서 오는 경이로움은 다른 매체로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감상자로부터 ‘이 작품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그런지 설명은 못하겠다’는 공통된 진술이 나온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평론가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는 작품이 주는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대중들을 돕는 것이다. 새로운 배경지식은 기존과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며, 설득력 있는 글에 공감하며 깊어지는 사고는 인간의 내면을 풍족하게 채워준다. 그런 의미에서 평론가의 작업은 사람들이 사고의 지평을 넘어설 수 있도록 포석을 까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대중이 일방적으로 계도당하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라는 뜻이 아닌데, 타인의 사고방식을 수용할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독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론은 글을 통해 이루어지는 필자와 독자의 대화이며, 두 주체는 상보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맥락을 창조해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석을 제공하는 작업은 평론가의 일 가운데 일부일 뿐,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 평론을 단순한 참고자료로만 생각한다면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공백을 메워주는 정보가 제공하는 맥락을 놓치게 된다. 걸작이 뛰어난 이유는 색채와 드로잉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데, 평론가들은 왜 굳이 작가의 생애와 사상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에 대한 서성록 교수의 고찰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반 고흐가 캔버스에 옮기고자 했던 대상은 정확한 형태와 색채가 아닌 실존하는 인간의 삶이며, 그가 사용한 알려지지 않은 재료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서성록 교수가 수집한 자료 또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만을 갖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여기에는 창작이라는 노동의 고통 속에서 예술이라는 꽃을 피워낸 다른 시대의 인간을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포함되어 있다. 인본주의에 입각한 치열한 고민을 통해 평론은 건조한 설명문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여백에서 드러나는 숨길 수 없는 인류애는 그의 고도로 정제된 예리한 문장만큼이나 많은 말을 한다.

서성록 교수의 수많은 저작물을 몇 마디 문장으로 정리할 수는 없으며, 글이 그의 모든 생각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없다. 퇴임전을 준비한 제자들도 그의 예술관을 온전히 이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지적 노동을 통해 완성된 작품은 책의 형태로, 혹은 타일이나 조각보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전시관을 채우고 있으며 이 선별 작업은 제자들의 선택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감사와 애정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서성록 교수로부터 배운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 제자들에게 이어져 그러한 태도가 시각적으로 구체화된 것이 이번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서성록 교수의 평론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듯 제자들의 노고도 서성록이라는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인 것이다. 완성된 한권의 책이 작업의 끝이 아니듯, 이번 전시가 서성록 교수와 제자들의 새로운 출발이 되기를 바란다. 감명 깊게 읽었던 그의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현대미술이 황폐해진 것은 대상을 애정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대상은 나에게 낯선 존재로, 나의 삶에 완전히 포섭될 수 없는 자로 남아있다. 여기에는 관계에서 오는 ‘친밀감’이 들어설 틈이 없다. 예술의 진실성이란 학습하고 외워야할 공식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임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예술 생태계의 복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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