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 때려치우려다가도 평생 기억에 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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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번 때려치우려다가도 평생 기억에 남을
  • 이지윤
  • 승인 2023.03.0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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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동시에 입학한 후 3년이 지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최고 학년에 신문사 편집국장이라는 멋들어지면서도 무거운 간판을 가지게 됐다. 1학년은 전염병으로 원룸 장사를 망친 주인아주머니 사정이 딱해 등 떠밀려 계약한 빛 하나 안 드는 싸구려 원룸 방에서 모니터 너머로 수업을 듣기가 유일한 일과였다. 2학년에도 별다른 점은 없었지만 취미로 산책을 하게 되면서 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니 재미가 있었다. 어느 날 붙은 학생회관 1층 게시판에 붙은 ‘수습기자 모집’ 포스터를 보고 겁 없이 지원한 수습기자에 덜컥 합격하고 나서야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붙임성도 없고 쑥쑥한 것이 책에서 본 이미지와 비슷해 신기했다. 며칠 어색한 걸 참고 음료수 몇 개나 과일을 챙겨 찾아갔더니 안면을 튼 걸까. 그중 붙임성이 좋은 선배 한 명이  번개 모임이라도 생겼다 하면 나를 불러댔다. 없는 지갑 사정에 후배를 배불려 주겠다며 이리저리 시킨 안주와 술에 모두가 알딸딸해질 때쯤 우르르 술집에서 나와 집에 나를 바래다주는 날이 잦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해가 지는지 뜨는지도 모르던 내가 떠올라 멀어지는 익숙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앉아 엉엉 울던 때도 있었다. 여러 사정으로 떠난 사람과 여전히 옆에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때는 다들 우리 모두에게 진심이었으리라. 지나가보니 좋은 게 좋은 거더라 하는 걸 수도 있지만 그렇게 소중한 추억이 방울방울 쌓였기 때문일까. 편집국장만큼은 죽어도 하기가 싫었다.

누구는 하고 싶어서 안달복달 못했다는 걸 잘 알기에 참 실례되는 말인 건 잘 안다. 하지만 내가 특출나게 글을 잘 쓰는 것도 훌륭한 리더십을 갖춘 것도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알기에 두려움이 크다. 도망치려고도 해봤더니 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뒤를 자꾸 돌아보다가 또 얼떨결에 책상에 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동대신문’은 이어져야 한다. 누군가는 사명감으로 누군가는 스펙으로서 편집국장을 맡을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이곳을 그리워하며 찾아올 사람들을 위해 나는 여덟 호의 신문을 완성해 나가려고 한다.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학보사의 인력난은 점점 심해지고 자연스레 지면과 예산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학교 구성원 조차 신문을 많이 읽지도 않고 심지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소중한 장소가 사라지게 될까봐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한 해 한해를 넘긴다. 새카맣게 잉크가 묻어나는 신문지와 오래된 카메라를 어루만지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고민하다 보면 가슴이 아리고 먹먹해지면서도 새파랗게 어린 수습기자들이 그때 우리와 같이 또다시 마음껏 캠퍼스 라이프를 누리지 못하면서도 숨 쉴틈 없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며 밤낮없는 생활, 또래 친구들은 모르는 스트레스를 받을 걸 생각하면 못 할 짓이다 싶다. 하루에도 수백 번 속으로 때려치워야지 외치면서도 한없이 따뜻해지고 이내 편안해진다. 총 16번의 신문을 썼는데도 올해 첫 신문은 태어나서 처음 써본 양 더 어려웠다. 지나간 편집국장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가슴 깊은 곳부터 존경심과 애틋함, 안타까움. 여러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허접한 글 실력을 혼내킬 얼굴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올 한해 잘 이끌어 나가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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