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써 내려간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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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써 내려간 한글
  • 박민재 기자
  • 승인 2019.10.0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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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영국 패션 브랜드 프린은 런던 패션쇼에서 한글로 긴장하라는 단어를 새긴 주황색 클러치 가방으로 관중의 이목을 끌었다. 벨기에 유명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는 아디다스와 함께 궁서체로 자연이 빚은 상주 곶감이 쓰인 운동화를 제작했다. 이처럼 한글은 외국에서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반면 한글의 본고장에서는 로고, 패션 할 것 없이 알파벳을 즐겨 사용한다. 지나가는 사람을 확인하면 ‘Thisisneverthat’, ‘Covernat’과 같이 알파벳으로 꾸며진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세계화 시대에 당연한 모습일지 모르지만 다른 글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한글만의 매력은 없을까? 지난달 9일 해답을 찾기 위해 한글박물관으로 향했다.

이촌역에서 10분쯤 걸으면 한글박물관이 나온다. 이곳은 한글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 연구하고 한글의 문화적·예술적 가치를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박물관이다. 또한 한글 관련 전시와 연구, 한글문화 연관 산업의 활성화와 한글디자인의 진흥을 위해 국내외 글꼴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다.

한글박물관은 제3회 한글실험프로젝트 - 문자가 전하는 예술적 영감 <한글디자인 : 형태의 전환> 전시회를 올해 99일부터 202022일까지 개최한다. 지난 2016년부터 한글박물관이 추진하는 한글실험프로젝트는 한글디자인의 가능성을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하는 작업이다. 한글의 원리와 조형성에 대한 기초 연구를 바탕으로 디자인 주제와 대상을 새롭게 발굴해 한글디자인 문화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다. 3회 한글실험프로젝트는 패션 분야와 협업을 통해 디자인 분야의 외연을 확장하고 실용디자인으로서 한글을 실험하는 데 주목했다.

한글박물관에 전시된 '덕온공주 결혼식'

한글박물관에 도착하자 형형색색의 글씨가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기획실 입구에는 한글 조형물들이 위치했다. 가장 앞에 전시된 ‘· ㅡ ㅣ은 한글의 기본 모음 글자 천, , 인을 각각 불, , 사람으로 그 의미를 도자기로 표현했다. ‘·, ,이 가지는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무늬로 새겼다. 그 너머에는 한글 모아쓰기 구조를 서로 다른 모양과 색상으로 시각화한 모아쓰기’, 훈민정음 28자의 형태를 가구의 기본적인 구조로 사용한 자음과 모음의 거실등이 전시돼 있었다. 이번 기획의 주제가 한글의 형태인 만큼 디자이너는 한글의 모아쓰기 방식과 유연성을 작품에 담았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글의 아름다움을 접목한 옷들이 있었다. 맞은편의 덕온공주 결혼식작품은 한글 자체의 특징보다 덕온 공주의 글씨체를 패션에 접목한 작품이다. 화려하고 섬세한 공주 의상 위에 공주의 글이 적힌 한지가 두루마기처럼 표현돼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는 작품이 됐다. ‘자음과 모음의 거실‘1+1+1=1’은 자음과 모음이 분리되고 결합하는 한글의 유연성을 표현하기 위해 남성복 상의와 코트, 그리고 슈트케이스를 원래 하나인 것처럼 유연하게 결합한 작품이다. 앞에 소개한 작품은 일상복과 거리가 있는 반면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는 매우 트랜디한 작품이다. 그라피티에서 영감을 얻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스트릿 패션에도 한글이 매력적으로 녹아들 수 있음을 증명했다. 김낙중 한글박물관장은 한글실험프로젝트는 국가 브랜드를 알리는 데 최적의 소재인 한글을 디자인에 접목해 국내외에 한글문화의 이해를 높여 가는 방향의 연장선에 있다이 전시가 한글 조형의 미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오후 5시 기획전시실 앞 복도에서 패션쇼 패션에 써내린 한글이 시작됐다. 패션쇼는 이상봉과 장광효 등 저명한 디자이너들이 작품을 출품했다. 패션쇼는 한글이 주제인 만큼 종이와 먹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은색이 많이 사용됐다. 또한 자음의 기하학적 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글이 가진 역동성은 화려함으로 표현됐다. 처음엔 관객과 런웨이가 매우 가까워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으나, 관객들이 질서정연한 태도로 패션쇼를 즐겨 무사히 끝났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아이와 한글의 아름다움을 찾아온 외국인이 패션쇼를 보고 감탄하는 모습은 절로 웃음을 자아냈다. 모든 모델의 워킹이 끝난 후 전체 모델들이 함께 작품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관객들의 박수갈채에 디자이너와 모델이 인사로 화답하며 패션쇼는 마무리됐다.

패션쇼가 끝난 후 모델들이 패션쇼 의상을 입고 기획실에서 포토타임을 가졌다. 15분 동안 진행된 포토타임은 전시물에 생동감을 더했고 관객들에겐 추억을 선물했다. 패션쇼를 찾은 최만수(43·서울시)씨는 한글의 매력을 더 알고 싶어 딸과 함께 패션쇼를 보러왔다한글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유익했다고 말했다.

이번 패션쇼는 한글이 문화와 만나면 얼마나 매력적인지 보여줬다. 특히 모아쓰기는 알파벳으론 표현할 수 없는 한글만의 매력이다. 한글박물관의 이번 전시와 패션쇼는 대중에게 한글의 매력에 빠질 기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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