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솔뫼문화상_수필 입선 '종이와 태블릿PC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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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솔뫼문화상_수필 입선 '종이와 태블릿PC의 상관관계'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3.12.0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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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태블릿PC의 상관관계

백다미(기계교육 19)

 

디지털화 되면 될수록 아날로그는 점점 제 역할을 또렷히 하고 있다. 나는 순간의 충동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며칠 전 갑자기 만년필로 무언가 끄적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어 바로 만년필을 구입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으로 사는 필기구였다.

대학을 입학하면서 가장 먼저 산 것은 태블릿 PC였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무시무시한 두께의 전공책을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사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교과서를 들고다니길 매우 싫어했다. 어쩌면 짐을 최소화해서 들고 다니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수 있다. 때문에 내 가방에는 혹시 모를 예비용 필기구나 종이를 구겨지지 않게 담을 엘자파일 말고는 거의 들어있는 것이 없었다. 두꺼워도 2센치를 겨우 넘는 교과서도 들고 다니기 버거운 내게 소문으로만 듣던 어마어마한 전공책은 생각만 해도 질리게 만들었다. 한 권도 아니고 여러권은 더더군다나 싫었다. 두 번째로 즉흥적인 성격이 한몫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무언가 끌리면 그 즉시 해내야 하는데 아무것도 들지 않고 나가기에는 아무리 나라도 양심에 찔렸다. 그래서 무언가 하나로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가령 공강시에 잠깐 어디 간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수업을 위해 바리바리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필기를 도울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볼펜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지우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깔끔하고 한 눈에 보기 쉬운 필기나 밑줄 치는 것을 선호했는데 볼펜은 그런 점에서 완전 꽝이었다. 교과서에 밑줄을 그을 때면 접히는 부분에서는 어딘가 삐뚤어지기 십상이었다. 또 실수로 잘못 된 글자를 적었을 때 수정테이프로 글자를 지우면 그렇게 못나보일 수 없었다. 제일 곤란했던 것은 바로 칠판 필기를 옮겨 적을 때 였다. 보통 선생님들께서 필기를 작성하실 때 일일이 필기 노트를 배려해서 작성하시지는 않았다. 때문에 갑자기 추가되는 내용에 대해서 그 중요도와 상관없이 글씨체를 작게 작성하여 어거지로 욱여넣는 것은 기본이고, 특히 실수로 뒷 내용을 먼저 작성하시어 먼저 필기한 내용을 지우고 앞 내용을 다시 작성하신 뒤 다시 필기를 이어가실 때에는 내 필기가 그렇게 못나보일 수 없었다. 물론 이런 점이 모두 핑계처럼 보일만하지만 내게는 이런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대입을 앞둔 내게 엄마께서는 개인용 인터넷을 살 것을 제안하셨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나는 바로 태블릿PC를 구매하였다. 태블릿PC는 정말 많은 부분에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수학이면 수학책, 국어면 국어책을 따로 챙겨야 했고, 정말 어쩌다 집에 가져갔다가 안가져온 날이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태블릿PC 하나면 그런 일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전공A 과목과 전공B과목을 동시에 켜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딜 가든 이것 하나만 들고 다니면 되니 실수로 놓고 오는 걱정 또한 없어졌다. 가방 제한도 없어졌다. 이것저것 챙기지 않아도 되니 가방의 부피 또한 줄어들었고 당시에는 태블릿PC 또한 하나의 소품이라고 생각하며 드는 등의 정신승리가 가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필기하기가 정말 좋았다. 접히는 부분이 없는데다가 자동으로 직선을 만들어주는 기능 덕분에 가지런한 밑줄 긋기가 가능했다. 그리고 썼다 지워도 자국 하나 안남으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마구마구 지웠다 다시 쓰곤 했다. 그리고 색깔이나 크기·위치 변경이 자유로운게 좋았다. 중요한 내용은 크기를 키워 강조했으며 필기 위치가 잘못된 것은 드래그 기능을 이용하여 옮기면 그만이었다. 시각적으로 가장 달라진 것은 노트가 알록달록해졌다는 것이었다. 지우는 것에 대한 겁이 없어졌으니 마음대로 색을 바꿔가며 필기하는 것도 가능해졌고 필요한 부분에만 색을 바꾸거나 참고할만한 사진이나 그림이 있으면 손쉽게 추가가 가능했다. 태블릿PC를 사용하며 좀 더 편리하고 단순하며 시각적으로 더 보기 좋은 필기가 가능해졌다.

그렇지만 때로는 종이를 자연스레 찾기도 한다. 태블릿PC는 아무래도 전자기기이기 때문에 장기간 사용이 눈에 굉장히 피로하다. 가뜩이나 풀리지 않는 문제에 괴로워하며 눈싸움하기 바쁜데 블루라이트까지 합세하여 괴롭히고 있으니 정말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다른 유혹에 빠지기 쉽다. 사실 필기용이 아니라 동영상 재생용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동영상을 보고 있는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 전에는 노트북을 켜는 시간이 귀찮아서라도 잘 안보게 되었는데 화면만 터치하면 켜지니 자연스레 동영상을 보게 된다. 또 공부하는 중간중간에도 휴식을 취한다는 명목하에 다른 것을 하고 있거나, 전공을 보고 있는 옆 창에 채팅창을 켜놓는 등 집중과는 전혀 먼 이야기가 나오는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가장 아쉬운건 종이 쓰는 맛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필기구의 감촉을 잃은 것이 아쉽다. 내가 사용하는 브랜드가 유독 그런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 태블릿PC에 필기를 할 때만 하더라도 필압도 감지 가능하고 여러 펜의 역할을 해내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그것도 잠시 점점 유리에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펜촉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이거나 고무 펜촉도 끼워보고 종이필름을 붙여 보기도 하였지만 여전히 헛도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아무래도 유리에 글을 쓰다 보니 글씨체도 나의 것도 남의 것도 아닌 제 3의 형체로 나온다. 이에 연장선으로 필기할 때 탁탁하는 유리를 손톱으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도 때로는 거슬린다. 아무래도 여태껏 사각사각하는 소리만 들어와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한껏 집중하며 공부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소리가 들릴 때면 그래, 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지라는 생각에 종종 뿌듯해지곤 했는데 요새는 종종 이질감이 들 때가 있다. 같은 필기구를 사용하더라도 종이마다 달라지는 필기감이나 서체의 변화를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아쉽다. 물론 일정하게 결과물을 낸다는 것이 큰 장점이지만, 평범한 A4용지에 연필로 글을 작성할 때와 그림용 종이에 색연필로 글을 작성할 때는 그 느낌과 분위기가 한껏 달라지는데 아직까지 그정도는 태블릿PC로 구현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사랑은 연필로 써야한다는 옛 노래 가사처럼 글은 종이에 필기구로 쓸 때의 감성을 무시할 수 없다. 마음에 드는 종이에 연필로 작성하고 쓰다가 지우면 된다. 사각사각하는 소리도 즐기고 내가 쓰면 쓰는 대로 구현도 할 수 있다. 지워져도 그 자국을 남겨 감성을 더하고 지워지지 않으면 지워지지 않는 대로 찍찍 긋고 다시 작성하면 된다. 전에는 무조건적으로 좋은게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기존에 있던 것들이 그 자리를 계속해서 지켜나간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를 대체하기 위해 디지털이 생겨났지만 때로는 디지털을 대신하기 위해 아날로그가 필요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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