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솔뫼문화상_수필 가작 '운명(運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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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솔뫼문화상_수필 가작 '운명(運命)'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3.12.0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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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運命)

 김현석(교육공학19)

세상에는 한때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현재 나의 꿈은 교사이다.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꿈이 교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교사로 꿈이 바뀌게 되었는가? 그건 특별한 사연이 있다.

나는 19살 때 수능 60여 일 남기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빠와 사별하였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을 몸소 지키지 못함으로 인한 알 수 없는 패배감과 공허함, 나의 인생의 고민을 진솔하게 상담해 줄 가족 일부가 사라져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두려움을 가졌다. 무엇보다도 교사의 자제이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불편한 사회적 시선 때문에 어릴 적에는 아빠의 기대에 부응해 가까운 사이였지만 자라면서 아빠의 기대에 못 미쳐 멀어지게 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더욱더 후회와 죄송함이 남았다. 한편으로는 나의 고정관념이 혁파된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교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교사는 필연적으로 삶에 태도 및 가치관이 다른 다양한 사람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장례식 상주를 맡으면서 1,000여 명의 조문객을 맞이했는데 대부분 아빠의 제자였다. 짧게는 1년 전, 길게는 10년 전 제자까지 찾아와 조문하였다. 그것을 보고 교사에 대한 동경심이 마음속에 심어졌다. 그렇게 수능을 치고 원하던 대학에 갔지만, 삶의 무기력감을 이기지 못해 대학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하고 1학기를 마치고 18개월 동안 칩거하였다. 칩거하던 중 병역의무를 해결하고자 병역검사를 받게 되었으며 어릴 때 겪은 큰 교통사고 탓에 신체 등급 4급으로 판정받게 되었다. 입영통지서를 받기 전까지 근무지를 모르는 전형으로 사회복무를 지원하였고, 나는 지역아동센터로 발령받았다.

근무지가복지시설이라는 사실에 갈등이 있었다. 복지시설이 다른 근무 분야보다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아동들을 돌본 적은 중학교 때 입시를 위해 억지로 유치원 봉사활동 빼고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보통 대다수 20대 남성들은 현역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그것만이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하며, 여성들 역시 국방의 의무에 대해 생각한다면 대부분 현역만 떠올리곤 합니다. 그들은공익이라는 단어 대신사회복무로 명칭이 바꿨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사회복무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사회적 인식에 투영된 듯 사회복무요원은 주변으로부터아무리 힘든 곳에 사회복무를 해도 현역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너는 현역과 다르게 낮에 땡볕 밑에서 일 안 하고 밤에는 샛별을 안 봐서 부럽다.”라는 시기 어린 질투를 받기도 하고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에서는 질투를 넘어 조롱까지 당한다. 물론 지금도 밤낮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를 지키는 현역장병께 감사함을 느끼지만 그런 시기 어린 질투와 조롱이틀린 방법이 아닌다른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많은 사회복무요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불편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그런 사회적 시선을 의식해어차피 사회복무를 현역 못지않게 힘들게 복무해도 사회에 무시당하는데 굳이 힘들게 복무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더 근무지가 근무환경이 좋고 근무 강도가 약한 행정 분야이기를 소망했고 입영 신청을 취소할 수 있기에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일단 지역아동센터를 처음 들어본 나는 어떤 곳인지 알아보았다. 알아보니 아동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무요원이 아이들에게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는다는 점에서 내 안에 심어진 교사에 대한 동경심이 설렘과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또 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 대부분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하고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못 받는 학생들이 많이 입소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순간 선친께서 자라온 환경이 떠올랐다. 선친께서는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의 여성 편력으로 불우한 가족 관계 속에서 방황을 많이 했음에도 여러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지도해서 아이들이 선친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도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최근 국내에 많이 발생한 혐오범죄와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처럼 어릴 때 어른들의 올바른 지도를 받지 못해 발생한잠재된 내부의 적이 나의 노력으로 유능한사회의 일꾼이 된다면 현역장병께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킨 듯이 나 역시 다른 방법으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손해 볼 수 있는 도박을 하였고 한 달 동안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2017.02.20. 첫 출근을 했다.

나는 미디어에 비친 어려운 학생들을 생각하며 센터 내 아이들이 대부분 무거운 분위기가 많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아이들은 생각과 다르게 웃음도 많고 장난도 많았다. 그 때문에 학습 지도나 생활지도를 할 때 많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다. 때로는 그런 실망감이 밖으로 표출되어, 모진 말로 아이들과 사이가 서로 껄끄러운 적도 있었다. 나 또한 근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자 시설장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고 근무지 재지정까지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3주간 직무 교육을 통해분노 대신 관용’,‘무관심보다는 관심’,‘질책보다는 칭찬과 격려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지도해보자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아이들의 문제 행동이 점차 사라지고 긍정적인 행동으로 변화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무엇보다 나의 행동으로 남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동안 아이들에게 화냈던미안함’,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나 밝은 에너지로 어두운 나의 마음을 치유해준고마움’, 그때 아이들에게 좀 더 잘해줄 것이라는아쉬움’, 순수한 동심으로 가득 찬 아이들과 같이 놀던즐거움으로 아이들을 치켜세우는 등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선생님이라는 사명감이 가슴 한구석에 박혔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운명이라 생각하고 사범대로 진학을 준비하였다.

그렇게 2년 동안의 아이들과 추억이 묻힌 앨범과 편지를 받은 2019.01.11에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안동대학교 사범대학 19학번에 입학하였다. 시간이 흐른 현재 나는 다가오는 2024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근무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대학 진학 후 내 꿈을 이룰 때 꼭 다시 찾아온다라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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