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솔뫼문화상_시 가작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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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솔뫼문화상_시 가작 '블랙홀'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3.12.0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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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이다교(원예생약융합 21)

내가 가진 그물망은 온전히 내가 엮어서 유지되는 끈들로만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놓으면 다 흩어질 끈들이란 걸 깨닫는다

 

가끔은 생각들이 얽히고 얽혀 나를 갉아먹곤 한다

그렇게 하나둘 다시 채울 수 없는 상처가 생겨버리는데

이 상처에 연고 하나 발라줄 숨이 없다

 

나는 혼자 상처를 쳐다만 보며 아물길 바란다

소독조차 하지 않은 상처는 흉으로 남아버리고

그렇게 지고 또 지고 온통 흉으로 뒤덮인 나체가 내 앞에 놓인 거울에 비칠 땐

썩어서 부패되어버린 미래의 내가 보인다

 

썩어버린 내 흔적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삼켜 버리고 싶다 나마저 보지 못하게.

소화조차 되지 않을 내 흔적을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 목구멍으로 처넣는다

몇 번의 구역질을 하며 다 삼켜내고 나면 가득 차고도 텅 비어버린 나를 느낀다

 

다시 거울을 보면 처절하게 흐느끼는 내가 있다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한다

, 역겹구나.

 

아무도 보지 못하게 꼭꼭 숨어버리자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게 땅속에 묻혀버리자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버리자

그냥, 그냥. 사라져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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