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솔뫼문화상_수필 당선작 '글을 사랑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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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솔뫼문화상_수필 당선작 '글을 사랑하는 일'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3.12.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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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봄쯤이었나.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서 책을 읽고 짧은 글을 쓰는 일을 시작했었다. 그전까지는 책이랑은 담을 쌓고 살았지만, 사랑의 힘이 뭐라고 며칠을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을 찾아서 읽었더랬다. 조금이라도 그 사람과 공통점을 갖고 싶은 이유도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의 생각까지 읽고 싶었던 나의 진심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날에는 밤새 일기를 쓰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버스에서 소설을 읽다 제때 못 내린 적도 있었다. 그 사람과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잘 안 됐지만. 덕분에 그 시간 동안 책과 글을 쓰는 일을 본격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하는 힘이 주는 파급력에 대해서도 말이다.

손으로 직접 글을 쓰는 게 좋았다. 내 머릿속 깊은 곳에 있는 걸 종이 위에 끄집어내 맨눈으로 확인하고 있자면, 꼭 다른 세계의 언어를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한 자 한 자 적혀 있는 글자가 모여 하나의 글이 된다는 건 소중하고 경이롭다. 그런 글자의 집합은 늘 다른 세계로 나를 데려다주곤 했고, 그런 세계의 빠질 때면 그곳에서 매번 새로움을 당면했다. 그러한 새로움은 가끔 낯설게 느껴져 두려움까지 몰고 올 때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글을 통해 정리하며 가슴 속에 깊이 품어두기도 했었다. 그때부터 자기 전 10분은 꼭 하루 느꼈던 생각과 감정들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종의 반성문 같은 거였다.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를 들으며 새하얀 종이에 뚝뚝 떨어지는 까만 색 글자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사각거리는 소리 때문에 지금도 샤프 말고 연필을 고집하고 있다. 연필 깎는 게 귀찮고 불편해서 샤프가 나왔다지만, 오히려 나에겐 연필을 쓰는 이유 중 하나기도 했다. 연필을 예쁘게 다듬으며 내가 썼던 글들을, 그리고 앞으로 적힐 글자들을 기대한다. 그리고 다시금 그 순간들을 곱씹으며 내가 했던 생각들을 떠올린다. 거기다가 평소보다 연필 끝의 흑연 심이 앙칼지게 깎인 날이면 아껴놨다가 좋은 영감이 떠오를 때 그 연필로 글을 적곤 했다. 하지만 요즘엔 이처럼 연필을 쓰는 것도, 종이에 글을 쓰는 문화도 퇴색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이다. 예로부터 진부한 건 도태되는 것처럼 무한 경쟁사회와 물질 만능 사회에 찌든 신자유주의에서 우린 더 효율적이고 빠르고 자극적인 걸 세상에 내놓아야만 한다. 그 중의 가장 큰 가치는 단언컨대 시간이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환산할 수 없는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이제는 글을 쓰며 편지를 주고받을 때 생기는 기다림의 설렘을,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우개 똥으로 손장난을 하는 이상적인 낭만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의 화면을 두드리고 메시지나 SNS로 서로의 일상을 매 순간 공유한다. 과정보다는 빠른 결과에 집착하는 우린 더는 사고하지 않는다. 앙상히 남은 나무 기둥만 남아 있을 뿐 어디에서도 기다랗게 뻗은 가지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나 영상매체는 모든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세에 놓여 있다. 나 또한 그 안에서 짧고 자극적인 영상을 보며 하루를 보낼 땐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과 흥미를 느끼면서 생각이 멈추는 걸 방치했었다. 그것들은 그저 지나가는 허상으로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연기처럼 시간과 함께 휘발될 뿐이었다. 그런 안일함과 나태함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터라, 다시 연필을 잡았고, 매주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글들을 모아 꼭 나의 손으로 만든, 나의 이름과 글이 적힌 종이책을 출판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책을 만들려면 더 많은 양의 원고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했던 터라,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다양한 주제로 매주 한 편의 글을 썼다. 그리고 이를 같이 공유하며 서로의 글을 비평하며 더 나은 글을 완성하는 데 집중했다. 다만 누군가에게 보이는 글을 써야 하다 보니 가끔은 나 자신이 아닌 나를 표현하는 일이 잦아졌다. 모든 이에게 좋은 글이 되고 싶다는 욕심과 누군가에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두려움은 글이 아닌 허위의식에 가득 찬 글자로 된 낙서를 그리게 할 뿐이었다. 이 일을 시작했던 본질은 사라졌고 화려한 껍데기만 남아, 진정성 없어진 글은 아무 볼품없었다. 그럴 때면 다른 이들의 냉철한 비평의 더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글과 책들을 읽으며 정답 없는 글의 이치를 깨달았었다. 이 일을 통해 평가받는 일에 대한 두려움도, 보이는 글에 대한 부담감도, 그들을 통해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새삼 그대들에게 감사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소중한 원고는 자그마치 300편이 넘었고, 이번 여름에 무사히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 손으로 잡히는 그 한 줌의 감각들은 나의 글들이 숨 쉬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제야 내가 알고 있던 글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다. 이처럼 책과 담을 쌓고 살던 사람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자신의 힘으로 책을 출판할 수 있었던 건 재작년에 시작된 글의 힘과 종이책이 주는 낭만이었다. 

내가 아는 세상은 정확히 재작년 봄 전, 후로 나뉜다. 작고 어두운 곳인 줄만 알았던 이곳이 이젠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 속의 공간인 것만 같다. 그곳에서 자유롭게 헤엄도 칠 수 있다. 숨 막히는 각박한 세상 속에 나라는 모습을 가진 사람으로 불가능했던 것들을 글을 통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음을 깨달아 조금씩 숨통이 트인다. 그리고 이런 자유로운 모습이 가장 나답고 아름답다는 사실도 말이다. 스스로 글을 쓰면서 많은 성장을 느끼고 있어, 누군가에겐 아직 보여주기 부끄럽지만, 글을 계속해서 쓰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도 함께 말이다. 글을 쓰면서, 읽으면서 하는 사유의 시간과 그 생각의 더함은 나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우리는 생각하기에 지금을 살고, 살고 있기에 생각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해본다.


이상형(국어국문·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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