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솔뫼문화상_소설 당선작 '소설가 태평 씨의 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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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솔뫼문화상_소설 당선작 '소설가 태평 씨의 일일'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3.12.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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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신작을 낸 태평 씨를 인터뷰하러 그의 작업실로 가야 했다. 2년 만에 내는 태평 씨의 장편 소설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사실, 현재 사람들의 관심거리는 태평 씨의 신작보다 ‘소설가 고태평 표절 논란’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있었다. 재호 편집장은 그 진실을 내가 파헤치길 바라는 낌새였다. 출판 계약이 진행 중인 태평 씨와 관련된 논란으로 재호 편집장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희끄무레한 안경알을 닦지도 않고, 뻗친 머리를 정리하지 않은 모습을 보니 여러모로 재호 편집장의 기운이 빠져 있다는 걸 알 만했다. 나는 질문 목록을 적어놓은 핸드폰 메모를 읽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이번 작품의 영감을 받은 곳,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작품을 쓰고나서 느낀 점......진부했다. 아마 태평 씨는 많은 출판사, 잡지사, 신문사에서 똑같은 질문을 복사 붙여넣기 하듯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매번 똑같은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다들 앞부분엔 저런 질문으로 신작 얘기를 하는 듯하면서 마지막엔 표절 논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겠지. 하지만 태평 씨는 표절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함구했다. 독자들의 신뢰를 얻을 만한 확신의 자기변호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표절을 인정한 것도 아닌 상황이었다. 재호 편집장은 어떻게 해서든 꼭 그 답을 얻어오라고 말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태평 씨를 변호해달라는 뜻이었을 테다. 태평 씨의 작업실로 가기 전에도, 재호 편집장은 나에게 미지근한 피로회복제를 한 병 주며 ‘태평이는 잘못 없어, 그 여자가 하는 말 믿어선 안 돼’를 연신 중얼거렸다. 잠을 못 잔 퀭한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태평 씨의 최측근은 모두 태평 씨를 지지할까. 정말 표절 시비는 그를 내리깔아버리고자 하는 자들의 사냥 놀이일까. 재호 편집장은 따지고 보면 태평 씨의 최측근은 아니다. 저렇게 확신에 가득 차선 ‘태평이는 잘못 없어’라고 하기엔 이 표절 논란은 개운하지 않은 구석이 많다는 게 문제였다. 버스에 앉은 나는 가방에서 태평 씨의 신작 책을 꺼냈다. 책의 상단에는 <거미는 낙하를 배우지 않는다>라는 제목이 쓰여있었다. 발레리나의 그림자 실루엣이 표지의 일부를 덮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거뭇거뭇한 책 표지 색감에 기시감이 일었다. 오늘이 오기 전까지 몇 번이고 돌려본 단편 영화 <붉으딩딩 왈츠>를 단번에 떠올리게 만드는 책 표지였다. 발레리나, 거미, 낙하. 겹치기 쉽지 않은 소재가 한꺼번에 나온다는 것도 태평 씨의 신작 소설과 영화 <붉으딩딩 왈츠>의 공통점이었다. 얼굴은 물론, 작품과 실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독립 영화 감독과 베스트셀러 소설가. 오늘은 소설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붉으딩딩 왈츠>의 유청 감독은 태평 씨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하였다. 2년 전 세상에 공개한 본인의 순수 창작물 소재를 유명 소설가가 그대로 따라 썼다는 것이었다. 발레리나가 나온다는 점, ‘거미가 낙하를 한다’는 상징적인 문장도 똑같이 등장한다는 점을 유청 감독이 문제 삼았다. <붉으딩딩 왈츠>는 태평 씨의 신작과 전체적인 내용이 달랐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차이가 분명했다. 특히 <붉으딩딩 왈츠>는 살인사건에 휘말린 발레리나의 이야기가 중심이라면, 태평 씨의 소설은 굳이 따지자면 판타지, 아포칼립스에 가까웠다. 유청 감독과 태평 씨가 똑같은 곳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아니면, 둘 다 동의도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썼다는 게 더 말이 됐다. 대중들은 후자의 스토리를 더 좋아하는 듯했다. 태평 씨와 유청 감독의 관계를 두고 말이 많이 나왔다. 유청 감독의 얼굴도, 성별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태평 씨와 연인 관계였을 것이라 사람들은 추측했다. 그 스토리가 더 재밌었기 때문이다. 태평 씨의 난해한 예술 세계와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표절 논란을 제기한 감독도 제정신은 아닐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감독의 폭로가 단순하게 태평 씨의 신작이 망하길 바라는 기도였다면, 아마 태평 씨에게 큰 타격을 가하지 못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는 태평 씨는 이 상황에서조차 태평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걸 유청 감독이 몰랐을 리도 없다. 돈을 뜯어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을 테다. 태평 씨에게 하고 싶었던 말, 혹은 듣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익숙한 하얀 건물이 보였다. 나는 책을 가방에 넣고 버스 정지 벨을 눌렀다. 태평 씨의 작업실에 도착했다.
  
  태평 씨의 작업실 문은 회색이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태평 씨가 회색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하자, 이내 태평 씨도 날 따라 고개를 숙인다. 태평 씨는 흰 반 팔 티와 군청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별말 없이 그는 문을 활짝 열어둔 채 다시 본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활짝 열어진 문 사이로 몸을 들이밀었다. 문을 조심스럽게 닫은 나는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모아 왼쪽 모서리에 두었다. 현관에 나와 있는 신발은 태평 씨가 자주 신어 밑창이 다 헤진 컨버스가 전부였다. 직사각형 신발장 위에는 직사각형 화분이 두 개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물을 준 것처럼 화분의 흙이 축축했다. 화분에서 구두약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다시 방에서 나온 태평 씨는 에이포 용지 몇 장을 손에 쥔 채 부엌으로 갔다. 부엌으로 따라 들어가니 태평 씨가 커피머신을 작동시키고 있었다. 
  “이 기자님, 커피 드시는 거 맞죠?”
  “예, 그럼요.”
  태평 씨는 작은 머그컵에 커피를 따랐다. 나는 그의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새로 장만한 커피머신인데, 좋아요, 아주.”
  태평 씨는 자기가 내린 커피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에게 건네받은 커피잔에 손을 갖다 대며 커피의 뜨거운 온기를 느꼈다. 태평 씨는 거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구 배치 바꿨어요. 지난번과 다른 거 보여요?”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른쪽 벽에 붙어 있던 작은 소파가 창가가 있는 쪽으로 옮겨졌다는 것 말고는 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태평 씨가 말하는 ‘지난번’이 언제인지 가늠하지 못했다. 태평 씨가 단편집을 자주 내는 만큼 그를 볼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소파 위치가 바뀐 거죠?”
  “광합성과 환기의 중요성을 깨달아서요.”
  “광합성과 환기보다 눕는 게 더 중요했나 봐요. 소파 위치가 어정쩡한데요.”
  “어정쩡하다는 말이 참 마음에 들어요. 그렇게 사는 게 재밌잖아요.”
  “작가님은 어정쩡하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요. 오히려 완벽주의자에 가깝죠.”
  태평 씨는 아무 대답 없이 커피를 나에게 건넸다. 어제 실린 기사 사진보다 머리숱을 많이 친 모습이었다. 그 이유 때문인지 태평 씨 이마의 점이 유독 잘 보였다. 태평 씨 코에 안경이 눌린 자국을 찬찬히 살피다 이내 커피잔을 든 그의 손으로 시선이 내려가졌다. 왼손 약지에 하얀 테두리가 새겨져 있었다. 반지를 뺀 자국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은 그가 나를 쳐다봤다.
  “신작 인터뷰하러 왔다면서요. 하세요.”
  “요즘 많이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니까요. 인터뷰마다 질문이랑 대답이 복사한 것처럼 똑같은데 한 번만 해도 되지 않나요? 이 기자님 힘들게 왔다 갔다 이게 뭐야.”
  “저는 그냥 제 일을 하는 겁니다.”
  나는 여러 가지 색깔 인덱스 포스트잇을 잔뜩 붙인 태평 씨의 신작 <거미는 낙하를 배우지 않는다>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볼펜과 수첩을 꺼내며 핸드폰 녹음 어플을 켰다. 태평 씨의 눈썹이 한껏 치켜 올려진다.
  “단편집은 자주 냈지만, <예언가의 밤> 이후 2년 만의 장편 소설이 나오는 거예요. 장편소설 <거미는 낙하를 배우지 않는다>를 출간하신 고태평 작가님과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제 책을 포스트잇 붙여가면서 분석하신 기자님께 감사합니다. 마음에 드셨을지 모르겠어요.”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감동과 행복을 줄지 기대가 됩니다. 작가님께 책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거미는 낙하를 배우지 않는다>는 시각 장애인 발레리나가 세계의 멸망을 소원하는 내용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떠한 이유로 지구를 떠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존재가 그 발레리나의 소원을 들어주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이미 여러 번 책을 읽어본 터라 적을 필요도 없는 앞부분 줄거리였다. 나는 수첩에 괜히 ‘멸망’이라는 글자만 반복해서 끄적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말하는 멸망이 추상적이지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관념적이거나 상투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태평 씨의 글을 좋아했다. 자주 읽었고 그의 책은 많이 팔렸다. 멸망 같은 이야기에도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나 보다.
  “증오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길게 써 내려간 작품 같았어요. 또, 소수자나 약자, 타자와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죠. 작가님 작품에서 나타나는 휴머니즘이라고나 할까요?”
  태평 씨는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가 커피를 다시 홀짝 마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망한 세상을 그렸는데, 기자님은 휴머니즘을 발견했네요. 어째서죠?”
  “주인공 나미는 살고 싶어 했잖아요. 춤도 계속 추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늘 옥탑방에 올라간 거예요. 나미가 빈 것은 멸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던 거죠. 저는 그 희망을 발견했어요. 분명하게.”
  “뭐, 해석은 자유니까요.”
  “마치 절 비꼬는 것처럼 들려요. 아니죠?”
  “내가 기자님을 뭣 하러 비꼬겠어요.”
  “좋아요.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볼게요. 작가님이 이 작품에서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소재는 ‘거미’와 ‘낙하’예요. 아마 많은 독자분들이 궁금해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거미와 낙하는 무슨 의미인가요?”
  “길을 지나가다가 거미가 보였어요. 등이 새까만 거미요. 걔네는 새까만 등에서 숨겨놓은 하얀 줄을 꺼내는 애들이잖아요. 어느 순간 그 줄로 허공에 본인들 집을 짓고요. 칭칭 감긴 거미줄을 보면 참 정교한 모양새예요. 하늘에 집을 짓고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어요. 하늘이 터가 좋은가? 그런데 걔네는 너무 많은 이들에게 자기 집이 노출되죠. 기자님이 기껏 정성스럽게 지은 집이 남들 눈에 훤히 보인다고 생각해봐요.”
  “음, 너무 별로네요. 하늘에는 집을 안 지을 거 같아요.”
  태평 씨는 내 말에 살짝 웃음을 보였다. 이마의 점 부분을 살짝씩 손가락으로 긁으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근데 거미들은 너도나도 그곳에 올라가려고 해요. 하늘에 집을 지으려고요. 며칠 뒤엔 또 다른 녀석이 기존 애를 쫓아내고 대신 올라타고 있어요. 불행을 예고하는 거 같지 않나요? 거미는 낙하를 배우지 않았어요. 올라가는 법은 알아도 잘 내려갈 수는 없어요. 낙하를 배우지 않으니 다칠 수밖에 없죠.”
  “나미가 낙하를 배우지 않은 거미라는 말인가요?”
  “나미의 낙하는 아플 수밖에 없어요.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니까요. 나미의 욕망이 멸망을 부르죠. 나미는 멸망을 바라는 춤에서 끝나면 안 됐어요. 허공에 거미줄만 친다고 끝이 아니잖아요. 결국 다쳐요.”
  “이번 작품도 흥미롭지만 난해하네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독자들의 폭넓은 재미를 위해 아껴둬야겠어요.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무슨 얘기요? 표절 건? 사실 이 이야기가 제일 하고 싶었던 거죠?”
  태평 씨의 목소리에서 퉁명스러움을 찾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이 얘기 언제 꺼내는지 기다렸다’는 기색이었다. 그의 눈에서 생기가 느껴졌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잘하면 재호 편집장이 맡긴 임무를 빨리 끝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커피로 입을 잠시 축이고 그에게 물었다.
  “듣다 보니 궁금해서요. 표절 논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기자, 내 팬 맞아요?”
  갑자기 묻는 태평 씨였다. 내가 그의 팬이라면 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다가 팬이 도대체 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태평 씨의 팬이라고 할 수 있을까. 포스트잇을 붙이고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는 게 팬이라는 증거면, 나는 고3 때 인강 강사만큼 사랑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팬이라고 해서 작가님의 편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줄 수는 없어요.”
  “오케이. 그럼 물어봐요. 특별히 다 얘기해줄게요. 팬이니까 중립적으로 써야 해요.”
  태평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에서 상자를 꺼냈다. 상자에서 나온 건 작은 초코 케이크였다. 
  “중립적으로 쓰라면서 뇌물을 주시는 거예요?”
  “이 누추한 곳에 오신 귀한 분인데 대접 제대로 해야죠. 그리고 이거.”
  태평 씨는 자리에 앉아 옆으로 치워두었던 에이포 용지를 나에게 넘겼다. 종이 앞장에는 ‘초고’라고 적혀 있었다.
  “이건 뭐죠?”
  “본가에서 찾았어요. 넘겨 봐요.”
  태평 씨가 나에게 건넨 건 어느 연극의 대본이었다. 눈으로 대충 훑으며 종이를 넘겼다. 
  “이걸 왜 저한테 보여주세요.”
  “그 친구 연극 대본 잘 썼어요. 영화 연출도 참 잘했죠.”
  “그런데요.”
  “그 친구 얘기를 해볼까요?”
  “유청 감독이요? 장르가 뭔데요. 로맨스면 안 들을래요. 저는 개인적으로 스릴러, 미스터리가 좋습니다만.”
  “기자가 제보 장르를 다 가리네요.”
  “기자한테 너무 큰 먹잇감을 주는 거 같다는 생각을 안 해요? 내가 뭘 쓸 줄 알고요.”
  태평 씨는 어느새 가져온 포크를 내 앞에 올려놓았다. 나는 포크로 코팅된 초코 부분을 긁어내렸다. 태평 씨는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스릴러, 미스터리가 가득한 여자의 이야기로 초점을 맞춰볼게요. 기자님이 쓰는 거 즐거울 수 있도록.”
  잠시 태평 씨와 눈이 마주쳤다. 유청 감독의 성별은 여자였나보다. 얼굴은 물론, 작품도 알려지지 않은 독립 영화 감독. 태평 씨의 신작이 출간되고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그 감독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설가 고태평 표절’을 제목으로 한 글을 올렸다. 그러나 상대적인 인지도 때문인지 태평 씨를 믿는다는 여론이 주가 되었다. 태평 씨가 쌓아온 커리어가 태평 씨를 변호해주는 것이었다. 유청 감독은 그 글을 올리고 잠수 타는 것을 선택했다. 누구와도 인터뷰하지 않았고 공개적으로 표절의 뒷이야기에 대해서도 말해주지 않았다.
  “대학생 때 우연히 연극을 보러 갔어요. 무언극이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무대였거든요. 그때 그 친구 연기하는 거 보고 궁금했어요. 이 연극 무지하게 재미없는데 연기하는 본인은 재미있을까? 사실 대사를 까먹은 거 아닐까? 내가 무언극으로 착각한 걸까?” 
  “그건 그 사람의 연기를 모독하는 거 아니었을까요.”
  “그 친구, 꼭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못하니까 힘들어 보였거든요. 그래서 공연 끝나고 기다렸어요. 대체 무슨 말을 아끼고 있었는지 물어보려고요.”

*

  영생은 무대에서 내려와 땀 때문에 쩍 갈라진 앞머리를 손으로 매만졌다. 무대의 조명이 오늘따라 뜨거운 탓에 얼굴이 붉었다. 입고 있던 갈색 후드티를 벗어서 팔에 걸친 채 영생이 대기실로 향했다. 물티슈를 한 장 꺼내 눈화장을 문질러 지웠다. 영생은 몇 없는 관객석에서 자꾸 눈이 마주쳤던 상대를 떠올렸다. 그가 지은 표정이 비웃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니, 영생은 화가 났다. 그래서 공연장 로비에 우두커니 서 있던 그를 보고 퉁명스럽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연극 별점 매기려고 기다렸나요?”
  영생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들어 영생과 눈을 맞췄다. 그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한번 보고는 말했다.
  “그쪽이 연극 하는 1시간 동안 못한 말, 지금이라도 들어주고 싶어져서요.”
  “아까 저 보면서 비웃은 거죠? 어두워도 다 보여요.”
  그는 진지하게 웃음기를 없애고 영생을 바라봤다.
  “무대 조명이 뜨거워서 그런가, 얼굴이 붉으딩딩하더라고요.”
  “붉으딩딩?”
  영생은 인상을 찌푸렸다. 붉으딩딩. 이상한 단어였다. 그 단어를 되새기다 보니 묘한 수치심이 일었다. 그는 피식 터져 나온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듯했다. 영생은 자신의 볼에 손을 갖다 대며 열을 식혔다. 
  “그 말하려고 기다린 거예요?”
  “아뇨. 얘기 들어주려고 기다렸어요. 대사가 없었는데도 당신의 몸짓이 굉장히 수다스러웠거든요.”
  영생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그는 제법 진지하고 생기있어 보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건 그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건 영생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푸르스름한 저녁에서 새벽으로 넘어갈 때까지 영생은 그와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계속 이야기를 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누가 물으면 아마 지금도 대답 못 할 것이다. 그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와 나눈 대화에 특별한 건 없었다. 영화 이야기, 어떤 배우의 턱수염 이야기(담배에 라이터 불을 붙이다가 수염 끄트머리를 태웠다고 한다), 어떤 감독의 이스터에그(숫자 11에 과도한 집착을 보였는데, 영생은 그 감독이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듣고 놀랐다), 최근에 영생이 쓴 연극 대본 이야기 등등. 사실, 영생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그의 이름이었다. ‘태평’. 그는 확실히 태평했다. 그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영생은 자꾸 말할 때마다 ‘태평 씨, 태평 씨-’ 하고 덧붙이곤 했다. 그렇게 부르는 것이 좋았다. 그럼 그는 ‘네, 영생 씨.’하고 대답했다. 몇 번이고 그랬다.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에 대해 알게 된 것들도 많았다. 그는 소설가였다. 말이 많은 소설가였다. 말이 많은 만큼 써 내려간 원고지의 개수도 많았다. 그는 본인의 흘러넘치는 말들이 또 얼마나 많은 후회를 낳을지 걱정된다고 말을 하였다. 그의 말은 후회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더 많이 더 자주 후회를 해야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영생은 그가 유독 웃기다 해주는 수다스러운 몸짓을 보여주었다. 그가 후회하는 모습보다 웃는 모습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 몸짓이 부끄러워질 때쯤 영생도 그와 함께 후회를 하였다. 그런 영생의 ‘붉으딩딩’한 얼굴을 그가 좋아해 줬다. 그렇게 되면 서로의 후회가 씻겨져 내려갔다. 

  영생은 그와 함께 보는 영화가 좋았다. 오늘 본 영화는 주인공이 어쩌다 삼켜서는 안 된다는 알약을 삼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그 알약을 삼키면 얼굴이 털로 뒤덮일 것이고, 그 털에는 정체 모를 병균이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된다는 괴소문이 돌아 모두가 주인공을 피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는 주인공이 안도의 한숨을 쉬며, 사람들 시선 때문에 먹지 못했던 어묵탕을 먹으러 가기 위해 길을 나서는 걸로 끝이 난다. 그 영화를 보고 감명받은 영생과 그는 그날 저녁으로 어묵탕을 먹었다.
  “내가 그 알약을 삼키면 태평 씨도 날 피할 건가요?”
  “내가 피하면 영생 씨는 누구랑 재밌는 이야기를 하죠?”
  “털로 뒤덮인 내가 비호감일 거 같아요. 보여주지 않을래요.”
  “근데 이 영화 주인공 꽤 호감이지 않아요? 주인공이 후회를 막 하잖아요. ‘내가 이 알약을 왜 삼켰지?’ 토해내려고 하고, 알코올로 소독될까 싶어서 술도 마시고, 용변으로 나왔겠다는 생각에 잠깐 안심도 하고. 어떤 순간을 후회하고, 후회를 수습하는 그 과정이 나는 참 좋았어요. 주인공이 처음으로 부지런해지는 순간이잖아요. 후회가 제법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그건 모르겠고, 귀여워요, 주인공이.”
  그는 늘 후회를 사치스럽게 하였다. ‘태평’이라는 이름 값을 못할 정도로 근심도 많고 후회도 많은 편이다. 그리고 그의 사치스러움이 묻어나는 글을 사람들은 공감하고 좋아했다. 공감과 연민을 일으키는 그의 거침없는 생각들, 조금은 다정한 위로. 그게 그의 성공의 비결이었다. 오늘 그가 했던 말들을 되새겨보았다. 후회를 수습하는 과정이 좋았다는 말. 후회는 늘 허무함을 가져왔고, 영생은 그 허무함을 별거 아닌 것처럼 넘기기 힘들었다. 후회의 뒷수습 과정에서는 그가 이름 값을 톡톡히 했다. 그래서 오늘도 영생은, 후회를 통해 자신의 궤도를 수정하는 그의 태평함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영생이 수다스러운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걸 기록하던 순간과 맞닿아있었다.

*

  “중간에 말씀 끊어서 죄송한데, 지금 이거 작가님의 전 연인이 작가님 엿 먹이고 있다는 스토리인가요?”
  “지금 엄밀히 따지면 장르가 로맨스 아닌가 싶은데. 엿 먹인다고 표현 안 했어요.”
  “사랑했던 여자가, 오히려 작가님 글을 표절했으면서 적반하장 식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려 작가님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흐름이 느껴져요.”
  태평 씨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소리에 리듬감이 느껴졌다. 나는 그 소리에 맞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친구는 나를 사랑했을까요?”
  태평 씨가 묻는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작가님의 예술 필터를 씌우니까 사랑처럼 보이네요. 근데 그건 그 여자만 알지 않을까요?”
  “이 기자는 예술이 싫어요?”
  “네. 제가 과거에 예술에 미친 놈 만나봤거든요. 난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다 싫었어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가서 혼자 계속 생각해야 했으니까요.”
  “확실히 로맨스 싫어하는구나.”
  태평 씨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질문하라고 했다.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고도 덧붙였다.
  “소설과 영화의 내용 자체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소재가 겹치는 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렵죠. 왜 겹쳤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와 함께 거미를 관찰했으니까요. 거미를 보며 낙하를 떠올린 것도 그 친구랑 함께였어요.”
  “발레리나는 우연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의 수다스러운 몸짓을 좋아했어요. 나도, 그 친구도. 그 친구가 발레리나로 나오는 연극이 있었어요. 기억 못 한다면 어쩔 수 없겠죠. 그런데 그 친구가 자꾸 표절로 나를 끌어내리고 싶어 한다면, 저는 ‘붉으딩딩 왈츠’ 제목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판을 키워보려고요. 나 아니면 걔가 ‘붉으딩딩’을 떠올렸을까요? 정면 돌파한다고 기사에 써 줘요. 이 기자님이니까 특별히 말해주는 거예요.”
  “독자들이 재밌어하겠네요. 작가님의 러브스토리. 혹은 복수극?”
  나는 포크로 초코 케이크 모서리를 푹 찔렀다. 그러고는 포크에 눌린 크림을 입안에 가져다 댔다. 달콤하기보다는 쓴맛이 났다.
  “기사가 써져요? 표절 논란이 사그라들 것 같나요?”
  “글쎄요. 이걸 사람들이 믿을까요?”
  “그럼 이 기자가 여자도 찾아서 인터뷰해줘요. 내가 해준 이야기 꼭 꺼내고요. 그럼 그 친구도 납득할 거예요. 사실 우리는 합의 하에 세계관을 공유한 거라고요.”
  “합의라는 표현이 맞는 건가요?”
  “서로가 서로의 공간에 들어갔다는 거, 같은 부분을 기억하고 있다는 거, 서로의 기억을 둘 다 뭍 밖으로 꺼냈다는 거. 이게 다 암묵적으로 합의한 문제죠.”
  나는 피식 웃으며 수첩을 덮었다.
 “그 친구 만나면 꼭 전해줄게요.”

*

  태평 씨의 신작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은 ‘나미는 낙하의 끝을 알고 있었다.’로 끝이 난다. 낙하의 끝. 붉으딩딩 왈츠. 태평 씨와 유청 감독의 붉으딩딩한 낙하의 춤.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까지 들어버린 기분이었다. 태평 씨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퇴근한 나는 노트북을 켰다. ‘멸망’과 ‘낙하’를 여러 번 끄적거린 수첩도 펼쳐놓았다. 인터뷰를 잘 마쳤다는 문자를 남기자 곧장 재호 편집장이 전화를 걸었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네, 편집장님. 네, 네. 잘 끝냈어요. 아뇨. 미스터리랑 스릴러를 원했는데, 소설가와 영화감독의 로맨스만 실컷 듣다 왔어요. 네, 네. 표절 논란은 걱정하지 마세요. 작가님이 알아서 해결한다고 했어요. 네, 인터뷰 내용 정리해야 돼서 이만 끊을게요, 편집장님. 들어가세요.”
  나는 재호 편집장의 전화를 끊은 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며 핸드폰 녹음을 돌려 들었다. 녹음을 다시 들으려던 그때, 태평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머뭇거리다가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태평 씨의 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잘 들어가셨나요, 이 기자님?”
  “네, 오늘 인터뷰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잘 써주실 거라고 믿어요.”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말했다. 
  “들려요? 지금 열심히 쓰는 중이에요.”
  태평 씨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늘 나를 인터뷰한 걸 후회해요? 원하던 이야기가 아니어서 어쩌죠?”
  “아, 후회합니다.”
  나는 호흡을 한번 떼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제 작가님처럼 후회를 수습해보려고요.”
  내가 새하얀 창을 켜고 쓴 첫 문장은 이랬다. 

  저는 고태평 소설가의 신작 표절 글을 올렸던 유청입니다.

  나는 태평 씨의 책을 펼쳐 얼굴에 묻었다. 아직 전화를 끊지 않은 그는 조금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 듣고 싶은 얘기 있으면 연락주세요, 이영생 기자님. 그리고 앞으로는 예술에 미친 놈 만나지 말고요.”

*

  영생은 거미줄이 칭칭 감긴 허공을 바라보았다. 태평도 함께였다. 둘 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말을 아꼈다. 참다 참다 태평이 먼저 말문을 터트렸다.
  “거미는 좋겠다. 이런 넓은 집에 살고. 심지어 자기 능력으로 지은 거잖아.”
  “근데, 이렇게 넓으면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될걸?”
  “하긴, 바람 불고, 비까지 내리면 더 큰일이네.”
  태평이 하는 말과 동시에 공중에 바람이 불어 거미줄이 흔들거렸다. 살짝 길어진 태평의 뒷머리도 살랑댔다. 영생은 태평의 뒷머리를 한 움큼 쥐며 말했다.
  “거미줄은 거미줄이고, 난 이거 잘라주고 싶다.”
  “응. 잘라.”

  영생은 집에 와서도 아까 본 거미줄에 대해 생각했다. 거미줄을 보니 이상하게도 태평이 떠올랐다. 영생과 태평은 하늘에 집을 짓는 거미의 모습과 똑같았다. 서로의 공간이,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무자비한 손끝에서도 툭 떨어지고 말 가느다란 실타래 같았기 때문에 그것만 생각하면 영생은 괴로웠다.
  “태평 씨가 무모한 건 거미 닮았네.”
  영생은 태평의 어깨에 수건을 둘렀다. 그리고 가위로 조금씩 태평의 뒷머리를 잘라주었다.
  “내가 무모해?”
  “거미처럼 하늘에 집을 짓고 살잖아. 자꾸 높이 올라가려고 해.”
  “너랑 같이 올라가고 있잖아?”
  “나는 높은 거 무서워.”
  태평의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영생은 태평의 머리를 매만지며 이어 말했다.
  “바람 불고 비 내리는 것도 무서워.”
  “괜찮아, 거미도 낙하하는 법을 배우면 무서울 게 없을 거야.”
  태평의 말에 영생은 거미가 낙하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태평은 싱긋 웃었다.
  “영생아, 나중에 내가 쓴 소설로 영화 하나 만들어 줘.”
  “.......”
  “낙하하는 거미를 그릴 거야.”
  태평의 말에는 항상 확신이 있었다. 영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사라(국어국문·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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