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차별’을 넘어 '치유와 공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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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차별’을 넘어 '치유와 공감’으로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3.10.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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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대한민국은 역사논쟁으로 뜨겁다. 그만큼 격동의 시간을 경험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한국근현대사 150여 년은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낸 시간이었다. 이루어낸 것도 적지 않지만, 숱한 과제를 남긴 역사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학살과 전쟁, 인권유린의 비극적 역사는 여전히 반복될까 두려운 강한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만큼 모두에게 민감하고 두려운 기억이다. 근현대 150년 역사 속에서 필자가 본 고에서 언급할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또한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굳이 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사건이 일어난 지 꼬박 한 세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관동(關東)일대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도쿄(東京)·카나가와(新奈川)·치바(千葉)·사이타마(埼玉)·시즈오카·야마나시(山梨)·이바라키(茨城) 등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 일로 조선인들이 두 번째 화살을 맞으리라고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지진 직후 요코하마(橫濱)와 도쿄에서는 한국인 관련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방화를 한다. 우물에 독을 넣었다. 여성을 강간한다.” 등 이었다. 관

련 유언비어는 지진발생 당일인 9월 1일 오후 경찰관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를 입증하는 개인의 기록물도 적지 않다. 유언비어는 관동지역 곳곳으로 확산되었다. 유언비어의 확산에는 내무성의 통첩이 결정적 구실을 하였다. 내무성 경보국장은 ‘조선인 폭동’을 기정사실로 상정하고, 엄밀한 단속을 요하는 전문을 각 지방 장관에게 통첩하였다. 이는 말단 군(軍)과 경찰조직에 의해 일본 민중에게 전달되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6일까지 각 지역 자경단이 조선인 학살을 자행했다. 통첩 내용 가운데 ‘유사시 적당한 대책’이라는 문구는 조선인 학살을 용인하는 함의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경찰관이 “조선인이 오면 죽여도 상관없다”라고 전달했다는 증언도 보인다. 19개 지역에서 3,686명의 자경단이 조선인 학살을 주도했음을 이미 여러 자료를 통해 밝혀진 바이다. 그러나 이들의 손에 학살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누구인지 그 전모를 알 수 없다. 조선인으로 오인된 일본인도 포함되어 있다. 일본 경시청에서 정리한 「자경단 조선인학살사건 예심종결서」를 비롯한 여러 기록과 조사에서 확인되는 숫자는 500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학살 숫자를 6,000여 명으로 파악하였다. 필자는 이 숫자에 무게를 두고 싶지 않다. 하나이든 둘이든 이미 ‘시작’되었다는 지점에 무게를 두고 싶다. 대지진이라는 두려움 속에 놓인 민중을 폭발시킨 진앙의 시작은 ‘거짓말’이었다. 이 거짓말은 근대시기 지속적으로 만들어진 조선인에 대한 ‘혐오 감정’을 ‘학살’로 폭발시켰다. 거침없이 죽여도 되는 ‘불령선인(不逞鮮人)’, ‘바퀴벌레 같은 조선 놈’이었다. 그 잠재의식이 지진이라는 혼돈 속에서 잔인하고 비극적 역사를 썼다. 그들은 어느새 곤봉·쇠갈고리·수창·엽총·낫·돌·철봉 등을 들고 거침없이 나섰다. 이 잔인한 역사는 한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지울 수 없는 그 시대, 그 사회의 총합적 민낯이다.        

이 역사를 두고 현재 우리는 심경이 복잡하다. 혹자는 망각되어야 할 외교적 차원의 걸림돌로, 혹자는 절대 망각되어서는 안될 인권유린의 역사로, 혹자는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문제적 역사 등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를 애써 기억하려는 이유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서일 것이다. 한국근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은 트라우마를 층층이 남겨놓았다. 만들어낸 주체도, 피해자도 다양하다. 개인의 경험에 따라 이를 자극하는 타자와 기억 방식도 상이하고, 복잡하다. 서러움과 아픔의 결도 사람마다 세대마다 다르다. 이는 건드리면 터질 수많은 뇌관이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3년 대한민국은 이를 치유·극복하는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치유와 공감의 언어보다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조장되고 있다. 100년 전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촉발된 조선인학살 뒤에는 이를 조장한 ‘권위있는 거짓 언어’와 조선인에 대한 민중의 배타적 잠재의식이 선행되어 있었다. 100년 전 그들의 민낯이 우리의 역사가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어떠한 신념과 이념도 기본권 앞에 놓을 수는 없다. 인간을 넘어 생태를 해칠 권리도 없다. 각자의 언어가 ‘분별과 혐오’를 조장하는지, ‘치유와 공감’의 잠재의식을 만들어내는 방향인지 꼼꼼히 살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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