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 깎아내리기, 굳이 그럴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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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장군 깎아내리기, 굳이 그럴 이유 없다
  • 김경연
  • 승인 2023.10.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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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산당과 현 공산당 차이 크다”

지난 8월 25일 육군사관학교(이하 육사)에서 독립 영웅 5인(▲홍범도 ▲지청천 ▲이회영 ▲이범석 ▲김좌진) 흉상을 철거 및 이전 계획을 밝혔다. 그 후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우당 이회영 기념사업회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백야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등은 기자회견을 열어 말도 안 되는 처사라며 극구 반대했다. 기자회견 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참석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사람의 흉상을 육사에 두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하며 공산 이력이 있는 홍 장군을 겨냥한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한국 역사연구회 등 51개 역사단체는 “국방부와 대통령은 이념이 독립보다 중요하냐”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육사 5인의 독립 영웅 흉상

육사 충무관 앞 독립 영웅들의 흉상은 지난 2018년 제99주년 삼일절을 맞아 총과 실탄을 제대로 보급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에 큰 타격을 입히며 독립의 불씨를 타오르게 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흉상을 설치했다. 당시 육사는 우리 군이 사용한 5.56㎜ 소총탄 5만 발 분량의 탄피 300㎏을 녹여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때 설치한 흉상을 지난 8월 25일 육사가 충무관 앞 5명의 독립 영웅 흉상을 철거 및 이전한다고 통보했다. 국방부는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장교 육성이라는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할 때 소련공산당 가입·활동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생도 교육의 상징적인 건물인 충무관 앞에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철거 이유를 밝혔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진실

홍범도 장군은 1907년 본격적으로 의병을 일으켜 일제의 탄압에 맞섰다. 홍 장군은 이후 1920년 봉오동 전투로 항일투쟁의 정점을 찍으며 의병 대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1930년대 홍 장군은 이미 일본군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돼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지내게 됐다. 이 당시 만주와 연해주 일대는 소련의 통제하에 있었다. 정부는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홍 장군이 공산 이력이 있다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강윤정 사학과 교수는 “그때의 공산주의를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아 북한과 연관시켜 취급하는 것은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최우선 과제를 구별해 해결해야

현재의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20세기 초반 공산주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 강 교수는 “현재의 최우선 과제와 그 시대의 최우선 과제를 생각하고 이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며 “당시의 최우선 과제는 민족의 독립이었고 독립을 위한 수단으로 반제국주의 세력인 공산주의를 선택해 독립운동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독립운동가 마음 생각해야

육사 내 독립 영웅 흉상 철거에 시끄러운 지금 강 교수는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처럼 독립운동가들은 그저 후손들이 일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사는 것을 원하셨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독립운동가들은 이념에 상관없이 오로지 민족과 조국의 독립만을 바라보고 모든 결정을 했다. 우리는 독립운동가의 뜻을 이어온 민족사적 정통성을 가진 자주적인 국민임을 알아야 한다.  

이념에 사로잡혀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것이 아닌 지금 우리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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