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에 경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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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에 경중은 없다
  • 이동영 기자
  • 승인 2019.06.1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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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되면 우리의 잠을 방해하는 모기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점점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작년 8월에 서울시 모기감시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내에서 잡힌 모기의 수가 재작년에 비해 절반으로 감소했다는 보고가 나왔다. 어떻게 된 것일까?

원인은 다름 아닌 요즘 날씨에 있다. 암컷 모기가 물에 알을 낳으면 이틀 후 부화한 장구벌레는 수온에 따라 약 1~2주 이후 다시 이틀 동안 번데기가 된다. 이후 모기가 돼 다시 우리의 피를 빨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유충인 장구벌레에서 나타난다. 평균수온이 점점 상승하는 요즘, 장구벌레가 번데기로 변태하는 과정을 가지지 못하고 결국 죽어버리는 것이다.

모기가 여름에 보이지 않는다고 멸종한 것은 아니다. 모기는 여름에 새끼를 낳지 못하자 봄과 가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이렇게 상승한 기온은 모기가 아닌 말벌이나 바퀴벌레에게는 좋은 서식환경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모기들을 아예 없앨 방법은 없을까? 사실 모기를 박멸하는 방법은 이미 존재한다. 작년 9월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안드레아 크리산티 교수와 임페리얼칼리지 런던의 연구진은 모기의 성염색체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암컷 모기의 생식기능을 막아 실험실 내의 모든 모기를 박멸한 데 성공한 바 있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모기를 박멸시키지 않은 것일까?

실제로 모기 멸종에 대한 찬반 토론은 이미 해외 과학계에서 분쟁이 엄청나다. 산란기인 암컷 모기를 제외한 나머지 모기는 일반적으로 꽃의 꿀이나 과일즙, 나무 수액을 먹고 사는데, 이때 과일에 모기가 피해를 주며 상품 가치성을 떨어뜨린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있어서 각종 바이러스나 병균의 매개체가 돼 일 년에 약 70만명의 사람을 죽인다. 이러한 모기를 하루빨리 박멸시키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모기가 사라진다고 모든 상황이 진전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모기는 꽃의 꿀을 먹는 과정에서 식물의 꽃가루를 옮기는 수분의 역할을 하며 식물의 번식을 도와준다. 또한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는 모기가 한 번 산란할 때마다 약 150~200마리가 태어나는데, 이는 수서 생태계의 포식자에서 중요한 먹이 공급 역할을 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아메리카에 주로 서식하는 모기어라는 물고기는 그 이름에 걸맞게 장구벌레를 주된 먹이로 삼는데, 만약 모기가 멸종되면 다른 종 역시 멸종 위기를 겪을 수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의 곤충학자인 필 롤루니보스 박사는 모기가 사라지면 수만가지의 생물 종이 같이 멸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침묵의 봄이라는 책을 알고 있는가?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 저자의 침묵의 봄은 살충제와 제초제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당시 이 책이 발간되기 전까지는 DDT라는 살충제가 다양한 지역에서 쓰이고 있었다. 당시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해충만 박멸한다고 알려진 이 살충제는 당시 말라리아나 기타 질병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해줬고 DDT를 발명한 스위스의 화학자인 폴 허먼 뮐러는 1948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무언가 잘못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국조였던 흰머리수리의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레이첼 카슨은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발견했다. DDT에 중독된 모기와 다른 곤충들의 사체를 먹은 개구리나 참새와 같은 하위 포식자들이 죽어가기 시작하고, 이것을 먹은 뱀이나 맹금류인 상위 포식자들도 죽어갔다. 결국 최상위 포식자인 흰머리수리까지 영향을 받아 개체 수가 감소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인간의 섣부른 결정이 생태계에 초래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손꼽힌다.

사람의 목숨에는 경중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애초에 모든 목숨에는 경중이 없다. 그런데 단순한 인간의 결정으로 다른 생명의 무게를 저울질한다면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목숨마저 저울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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