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아픔을 묵묵히 견딘 ‘몽실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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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을 묵묵히 견딘 ‘몽실언니’
  • 김혜미 기자
  • 승인 2019.06.07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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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나타난 역사 현장
잊혀서는 안 될 하나의 사건
몽실언니 마을에서 권 작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몽실언니 마을에서 권 작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느꼈을 때만이 외로움도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친구이든 부모님이든 형제이든 낯 모른 사람이든, 사람끼리만이 통하는 따뜻한 정을 받았을 땐 더 큰 외로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 몽실언니 중

일본 빈민가에서 태어난 권정생 작가는 해방 직후 외가가 있는 우리나라 청송으로 온다. 그러나 가난으로 가족과 헤어져 여러 일을 하며 살아간다. 객지를 떠돌다 보니 결핵과 늑막염 등의 병에 시달리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해 그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게 된다. 그곳에서 강아지똥, 사과나무밭 달님, 점득이네등 많은 작품이 탄생한다. 그 중 몽실언니8·15광복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지만 꿋꿋이 헤쳐가는 몽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는 작가의 어린 시절을 토대로 창작됐다. 따라서 작가와 몽실은 어린 시절 생계를 위해 다양한 일을 했다는 점과 그로 인해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는 점, 몸이 성치 않았다는 점 등 많은 공통점이 있다.

몽실언니에는 작가가 한 달에 한 번 꼭 갔던 일직면 운산리에 실존하는 장소가 등장한다. 현재는 이곳을 몽실언니 마을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은 2014일직면 소재지 종합정비사업을 시작하면서 단순 마을 정비사업에 국한하는 것이 아닌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아동문학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곳에서는 버스정류장, 미용실, 세탁소, 동네통닭집 등 간판에서 몽실언니 캐릭터를 발견할 수 있으며 벽화로도 그려져 있어 소설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2017년부터는 작가의 기일을 전후로 권정생 문학기행이 열린다. 이는 몽실 공원에서 출발해 일직면 행정복지센터(일직면사무소)를 지나 운산장터, 일직우체국, 운산역, 일직면 보건지소를 하나의 코스로 각 지점에 스탬프를 찍을 수 있도록 부스를 마련해놨다. 본사는 이 코스를 따라 소설 속 몽실의 마음을 생각하며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직접 느껴보기 위해 일직면 운산리에 위치한 몽실언니 마을로 여정을 떠났다.

소설 속으로 떠나보자

시내에서 438번 버스를 타고 일직정류소에서 내려 마을로 내려가면 이곳저곳에서 몽실언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권정생 문학기행의 첫 코스인 일직면 행정복지센터 벽면에는 권 작가의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고 옆으로 그의 작품 속 캐릭터가 나열돼있다. 이와 같은 요소 덕분에 우린 쉽게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그곳을 관람하던 정윤종(46·울산) 씨는 가족과 안동으로 놀러 왔는데 아이와 함께 공감할 수 있고 그때 그 시절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인 것 같다내년에 권정생 문학기행행사가 열린다면 가족 다 같이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소설 속 장소, 과거 속 공간

일직면 행정복지센터를 지나 조금 걷다 보면 운산장터가 등장한다. 작가는 월말에 한 번 이곳으로 와 볼펜이나 고무줄 같은 물품을 사기도 했고 장옥에 들러 몽실과 닮은 할머니들과 한참 이야기를 하다 돌아갔다고 한다. 소설 속에선 몽실이 불편한 다리임에도 아버지와 아직 어린 난남을 위해 구걸하던 장소다. 몽실은 난남과 함께 장터로 나서지만 구걸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 우체국 옆 추녀 옆에서 기다리게 한다. 이곳이 세 번째 장소인 일직우체국이다. 이는 작가가 살던 조탑리에서 10리를 걸어와 이용했던 곳으로 작품 원고와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부쳤던 곳이다. 일직우체국에서 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운산역이 나온다. 이 역은 살강 마을에서 살던 밀양댁이 일곱 살 몽실을 데리고 댓골로 개가하기 위해 이용한 역의 모티브가 된 장소다. 또한 세월이 흘러 소녀 가장이었던 몽실이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해 이복동생인 난남과 영득, 영숙을 만나기 위해 이용한 역이기도 하다.

이곳을 관리하는 권오학 역무원은 이곳에서 일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스탬프 찍으러 오시는 분들이 간혹 있다. 가끔 기념촬영을 위해 철도로 아무 말 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이곳은 현재 운영 중인 역이니 미리 말해주기 바란다고 부탁했다. 이어 “2020년에는 철도가 이설돼 운산역이 없어질 수도 있다운영이 중단된 후 몽실언니 테마로 개발해 많은 사람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표했다.

역사의 순간을 담은 몽실언니

마지막 장소인 일직면 보건지소까지 완주하며 동네 풍경을 돌아보면 소설 속 내용과 오버랩 돼 과거 어려웠던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소설 속에 나타난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암담하다. 전쟁통에 먹을 것이 없어 갓난아기였던 난남에게 암죽을 해주지만 젖을 먹지 못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전쟁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어린아이들은 총을 쏘고 그 총에 맞아 죽는시늉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난남을 업고 삼십 리를 걸어 고모 집까지 갔지만 이미 고모가 불에 타 죽은 장면은 한국전쟁의 현실을 참혹하게 그려낸다. 이렇게 몽실언니는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설 몽실언니는 당대의 부정적인 모습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식량이 떨어져 장골 할머니 집으로 찾아간 몽실은 여자 인민군, 최금순을 만난다. 그는 몽실에게 쌀과 미숫가루를 주며 잠시 대화를 나눈다.

그 후 금순은 떠나기 전 몽실과 난남을 위한 식량을 두고 가 인간미 넘치는 장면이 묘사됐다. 또한 고모를 만나러 갔다 만난 아주머니가 식량을 챙겨주며 아버지는 돌아오실 거야며 위로해주는 장면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현실로 돌아와서

버스를 타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면 점차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내년이면 7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전쟁은 잊혀서는 안 될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드물고 무거운 분위기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가기 힘들다. 따라서 당시 몽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간접적으로 느끼며 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몽실언니 마을로 떠나 한국전쟁을 기리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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