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도 노태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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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도 노태우’가 사라졌다
  • 이철승
  • 승인 2022.05.11 21: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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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맞선 민주항쟁의 흔적
방학 중 미화작업으로 사라져
“인문대 상징 사라져 아쉽다”

‘타도 노태우’. 인문학관 외벽에 하얗게 적혀있던 학생운동의 흔적이다. 30여 년간 수많은 인문대학생이 그 글씨를 보며 학생운동을 기렸고, 민주항쟁을 기억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지난 2월 인문학관 외벽 미화를 지시해 빨간 락카에 지저분하게 뒤덮였기 때문이다.  

'타도 노태우'가 지워진 인문학관 외벽
'타도 노태우'가 지워지기 전 모습

 

신군부에 맞선 학생운동 흔적

누군가는 김영균 열사의 흔적이라고, 누군가는 신군부에 분노한 어느 인문대생의 울분이라고 불렀다. 분명한 것은 이 글씨가 당대 학생들의 열망을 담아낸 채 30년 넘게 인문대 학생들의 기억 속에 자리했다는 사실이다.    

동문들의 구술에 따르면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1988년부터 대학생들은 학교건물과 시내 곳곳의 담벼락에 글씨를 남기는 이른바 ‘벽서운동’을 펼쳤다. 그 내용은 정권의 부정부패 비판이었고 ‘타도 노태우’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당시 학생들의 열망은 김영균 열사가 세상을 떠난 91년 5월로 이어진다. 91년 5월 투쟁은 명지대 강경대 열사가 4월 26일 백골단에게 구타당해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군부 폭력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투쟁이다. 5월 1일에는 우리대학 학생회관 앞에서 김영균 열사가 분신했다. ‘타도 노태우’와 통일마당은 인문대의 상징적인 장소였고 김영균 열사의 발인 행렬 역시 통일마당을 지났다.

 

민주화 기록보존, 이대로 괜찮나?

어이없이 사라진 ‘타도 노태우’만 문제가 아니다. 학생회관 앞 열사 분신 장소에는 동판과 함께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하지만 김영균 열사 추모사업회가 자체적으로 관리할 뿐, 대학에서는 공식적으로 기록 보존에 나선 바 없다. 오히려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모서리가 굽은 동판의 디자인을 반듯이 펴도록 지시했다. 또한 추모사업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중앙광장 조성으로 추모비 위치를 옮길 당시 대학 본부는 열사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 마련을 약속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대학 본부 관계자는 “방법을 찾아봤지만 현실적으로 남는 공간이 없다”고 해명했다.

다른 대학이 91년 5월 투쟁을 기억하는 자세와 비교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전남대는 2020년 교내 민주화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민주길’을 조성했다. 민주길의 일부로 김 열사보다 하루 앞서 분신한 박승희 열사를 위해 코스모스를 심고 ‘박승희 정원’을 조성했다. 명지대는 학교 앞에 강경대 거리와 민주광장을 조성했다. 열사가 쓰러진 학교 앞 담벼락은 동판과 함께 보존되고 있다.  

 

아쉬운 목소리 이어져

지난 31년간 인문대의 상징 아닌 상징이었던 ‘타도 노태우’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인문대 구성원들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인문대를 졸업한 한 학생은 “당연히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굳이 지울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졸업생 역시 “우리의 추억처럼 느껴졌는데 지워졌다니 아쉽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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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환 2022-05-23 17:56:33
통탄할만한 일입니다. 혹시 학교 당국은 어떠한 답을 내놓고 있나요? 후속기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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