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말도 못 할 거면 뒤에서도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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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말도 못 할 거면 뒤에서도 하지 마라
  • 정현진
  • 승인 2021.06.03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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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타임, 강력한 규제가 필요해
실명 앞에선 천사 익명 앞에선 악마
익명성, 살인무기로 사용해선 안 돼

“A가 남자 선배들한테만 연락하고 여자 선배는 선배 취급도 안 하더라이는 B 학생이 친한 과 동기들에게 카카오톡에서 한 말이다. B의 발언은 사람들 입과 손을 타고 해당 학과 전체에 퍼지게 된다. 결국 A는 오해를 풀기도 전에 일명 쓰레기로 찍히게 되고 결국 자퇴를 했다. 제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생기게 된 결과다. 그 배후엔 익명성이 있다.

전통 사회는 옆집에 사는 사람이 누구이고 몇 살이고 직업이 무엇이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지낼 정도로 투명한 사회였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는 서로의 삶에 대한 경계가 불분명했다. 하지만 현재 정보화시대로 들어서면서 공동체주의보단 개인주의 성격이 강해졌다. 자연스럽게 익명성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불합리한 것에 대한 내부 고발자 보호, 사생활 보호, 언론의 자유 그리고 비밀 선거까지. 처음에는 나름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짜뉴스를 퍼트리거나 허위·장난신고 그리고 악플까지 부정적인 측면이 수면위로 올랐다. 사람들은 직접 얼굴 보고는 하지 못할 말을 익명성을 무기로 삼으면서 상대적 우월감을 느낀다. 이러한 현상은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4월 늦은 밤, 에타에 게시물 하나가 올라왔다. “술집에서 CD를 폭행해 경찰이 출동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C가 경찰에 대들었다. ○○과 수준 나온다라는 내용이 이어졌다. 해당 게시물에는 수십 개의 좋아요와 댓글이 달렸고, CD를 폭행했다는 내용이 점점 확대돼 ○○과 전체를 비난하는 말까지 나왔다. 이게 참 어이가 없는 상황이 아닌가. C가 폭행했다는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고 댓글을 다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이들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자판이나 두드리는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전쟁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땐 가짜 뉴스가 쏟아졌다. 정읍소방서는 올해 1분기 동안에만 31건 허위·장난 신고가 발생했다. 가수 성시경은 악성루머로 해당 악플러를 고소한다고 밝혔다. 손흥민을 인종 차별한 악플러는 체포되기도 했다. 가수 제시는 자신의 성형수술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악플러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룹 AOA 출신 권민아는 악플로 인해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시 익명성이라는 방패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스탠퍼드대 명예교수인 필립 짐바르도는 몰개성화 실험을 했다. 실험은 학습자가 주어진 문제를 틀릴 때마다 실험 참가자는 학습자에게 전기 충격을 주는 방식이다. 사람들을 먼저 2개 그룹으로 나눴다. 첫 번째 그룹은 전신을 싹 덮는 실험복을 입혔고 얼굴도 감췄다. 두 번째 그룹은 입은 옷 그대로 참가하며 자신의 이름까지 적힌 명찰을 달았다. 이렇게 시험한 결과 역시 예상대로였다. 익명성이라는 방패가 생기자 첫 번째 그룹은 두 번째 그룹보다 2배 이상의 전기 충격을 학습자에게 가했다.

익명성은 단순 장난 수준을 넘어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특히 익명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사이버 공간, 대학생에게는 에타가 가장 위험한 공간이다. 그냥 익명이라고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당사자에게 떨어질 땐 아주 커다란 공이 될 수 있다.

딱 하루, 에타에 있는 모든 게시물과 댓글이 실명처리가 되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익명성이 나쁜 건 아니다. 성격 등 이유로 제대로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익명성만큼이나 좋은 도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에브리타임, 사전적 의미 가능하면 언제든지’. 정말 가능하면 언제든지 익명성에 숨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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