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경험, 생각에 그치지 않고 틀에서 벗어나 실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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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경험, 생각에 그치지 않고 틀에서 벗어나 실천까지
  • 조준희
  • 승인 2021.03.16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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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대학생활엔 두 배로 뛰어다녀
아시안게임 5위, 아쉽지만 후회 없어
다른 사람 미래에 따라가지 않고 도전
실패도 경험… 최고보다 중요한 ‘최선’

자랑스러운 솔뫼인을 찾아 <61>   제트스키 국가대표 선수, 이대수(원예육종·09) 동문

지난달 11일, 설 명절을 맞아 일산에서부터 고향 청송으로 내려온 이 동문을 만났다.
지난달 11일, 설 명절을 맞아 일산에서부터 고향 청송으로 내려온 이 동문을 만났다.

2020년도 전국 4년제 대학 취업률은 63.4%, 우리대학은 53%다. 대부분 졸업생이 전공에 얽매여 구직하니 취업 시장에서 헤매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학이 취업양성소로 불리게 된 것도 그 영향이다.
전공을 떠나 ‘덕업일치’를 실현 중인 제트스키 국가대표 이대수(원예육종·09) 동문을 만났다. 이 동문은 “원예육종을 공부하며 꼭 내 전공을 살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대학은 내 삶에서 또 다른 경험을 쌓는 곳이다”고 말했다.


소개
현재 캐나다 BRP사의 한국 수입원에서 제트스키 기술부 담당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트스키 국가대표 선수 생활도 겸하고 있습니다. 제트스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처음 발명한 곳은 일본이고 1972년 모터사이클 회사인 ‘가와사키(Kawasaki)’에서 제트스키를 처음 생산했습니다. 80년대에 세계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선 제트스키, 수상 오토바이 또는 P.W.C(Personal Water Craft)로 불리게 됐습니다.


원예육종과 제트스키
원래는 전공을 살려 아버지와 함께 농업(특수작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졸업 연도인 2012년 7월 초, 든든한 후원자이자 지지자였던 아버지가 농사일하시다 경운기 사고로 뇌를 크게 다쳐 돌아가셨습니다. 생전 아버지께선 농업을 반대하셨죠. 아버지는 가끔 본인이 젊을 때로 다시 돌아가면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택하겠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농업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평소 수상 레저를 즐기며 제트스키와 보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해병대 수색대 복무 시절 수상 인명구조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전역 후 포항 등지에서 안전요원 일을 하며 제트스키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곳에서 제트스키 대여업을 하는 형들과 친해진 덕에 지금의 회사로 입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계 만지는 걸 좋아했고 ‘젊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생각해 제트스키·보트 수리라는 직업을 선택했습니다.

이 동문은 우리나라 최초로 제트스키 국가대표 선수 자격을 얻어 2018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이 동문은 우리나라 최초로 제트스키 국가대표 선수 자격을 얻어 2018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대학생활
매 순간이 도전이었습니다. 사실 05학번입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컴퓨터 오락에 빠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컴퓨터가 좋았고 대구가톨릭대 컴퓨터공학과에 05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죠. 좋아하는 것과 전공은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엔 한 학기 수료 후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군대를 전역하고 다시금 안동대학교 원예육종학과 09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입학한 동기들보다 4살이나 많은 24살 때였습니다.
두 번째 대학생활을 늦은 나이에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학교생활도 학교생활이지만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부터 강연이나 해외 견학 등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신청했습니다.
처음 면접을 보러 왔을 때도 생각납니다. 지금 총장님(권순태 총장)이 학과장이셨습니다. “해병대 수색대 출신이라 물과 친하다”고 소개했더니 한가지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바다에서 상어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운 좋게도 며칠 전 TV 프로그램 ‘스펀지’에서 본 내용을 물으셨습니다. 상어의 코는 전기신호를 감지하는데 코를 때리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답했죠. 그 말을 하니 총장님이 ‘허허’하고 웃으셨죠.


신인전 1위부터 국가대표까지
대학교 4학년 2학기인 10월 현재 일하는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회사가 제트스키를 수입하는 본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트스키 경기에 빠졌습니다. 회사에서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준비한 첫 번째 대회에서는 낙수로 실격했습니다.
그 후 많은 연습 끝에 2013년 목포대회에서 신인전 1위를 기록했습니다. 많은 국내 대회에서 입상하고 제트스키 월드컵이 열리는 해외에도 출전하며 계속 경험을 쌓았습니다.
2016년쯤 아시안게임에 제트스키 종목이 채택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 해인 2017년 초에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는 발표가 났죠. 국내에서 치른 1·2차 2번의 선발전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해 최종 종합 1위로 선발됐습니다. 그 결과 2018년 8월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사실 70년 동안 기계 종목이 아시안게임에 정식으로 채택된 적이 없었습니다. 기계로 경기를 치른다는 것에 일각에선 많은 반대가 있었죠. 처음엔 이벤트경기로 시작하더니 시범경기를 거쳐 정식종목에 채택됐습니다.


첫 제트스키 국가대표
대한체육협회에서 인정받는 종목이란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국가대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고 신기했습니다. 욕심이나 자신감도 생기고 메달로 성과를 내고 싶었습니다. 설렘이 컸지만 처음이다 보니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습니다. 제트스키 종목에 6명이 함께 발탁됐는데 누구든 성과를 내자는 분위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시안게임이 정말 영광의 자리였으며 그와 동시에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제트스키 종목이 제18회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에 채택된 만큼 메달을 목표로 준비와 노력을 했지만 5위에 그쳐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2022년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동문은 런어바웃 리미티드 종목에 출전했다. 물 위에 부표로 트랙을 만들어 제트스키 여러 대가 경합하는 경기다.
이 동문은 런어바웃 리미티드 종목에 출전했다. 물 위에 부표로 트랙을 만들어 제트스키 여러 대가 경합하는 경기다.

비인기 종목, 훈련과 지원
첫 정식종목이었기에 큰 지원은 없었습니다. 훈련지원금 일부와 비행기 표를 받고 선수촌에서 먹고 잤죠. 국가대표 의류 또한 개인적으로 구매했습니다. 대한체육회에서 협회마다 정하는 등급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제트스키 협회는 준가맹단체라 옷도 사비로 사야 했습니다.
특히 제트스키 운용에 휘발유를 엄청나게 씁니다. 또 참가 클래스에 맞춰 제트스키를 튜닝해야 하는데 그 비용은 개인 부담입니다. 다행히도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회사에서 제트스키며 유류비, 튜닝부품 등 모두를 지원받았습니다. 훈련 또한 제대로 된 커리큘럼이 없었기에 외국 선수들의 연습 영상을 바탕으로 개인 체력운동을 주로 했습니다.
‘대회에 나가게만 해달라’는 심정이었습니다.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출정식에 불러주지 않아 우리 팀끼리 작은 출정식을 했습니다. 기계 종목이다 보니 기술자를 데려가야 하는데 ID카드 발급도 충분치 않아 선수촌 출입이 어려웠습니다.


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의암호 사고 소식을 듣고 친한 동생이자 자동차 유튜버 ‘카라큘라’인 이세욱 씨에게 같이 수색 봉사하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트스키를 타고 가면 단순히 논다는 인식이 있을까 회사 영업용 선외기로 수색했습니다. 회사 대표님도 좋은 뜻인데 조심하면서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세욱이가 아침 일찍 도착해 구조본부에 수색 봉사 등록을 했습니다. 물과 친한 사람들이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죠. 일어나지 않아도 될 사고라 더 가슴이 찡하고 슬펐습니다.
평소 제트스키를 즐겨 타던 의암호 하류인 청평에서부터 수색작업을 함께했습니다. 그때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면 많은 부유물에 비와 안개까지 겹쳐 수색작업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청평호에서부터 남이섬을 지나 백양리까지 올라갔는데 의암호에 가까워질수록 물살이 너무 세고 위험한 상황도 많았습니다. 그때 구조본부에서 위험하다는 연락을 받고 철수했습니다. 경찰과 군인, 공무원, 민간봉사 대원들까지 많은 분이 수색작업을 펼친 기억이 납니다.


최종 목표
제트스키 종목이 앞으로 활성화되길 바라죠. 많은 국내외 경기 경험과 엔지니어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후배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지도자의 목표도 갖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아쉽게 5위를 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아시안게임에서 꼭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기도 합니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어떤 일에서 생각 없이 무턱대고 실행하는 것도 문제지만 고민 또한 너무 많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남들이 한다 해서 다른 사람의 미래를 따라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대학생활을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공부하는 학과 전공에 얽매이지 말고 ‘덕업일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택했으면 합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첫 직업이나 하나의 직장이 거의 평생 직업이라 생각하는 세대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세대는 직업이 2~3개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너무 자주 바꿔서는 안 되겠죠.
저는 지금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했으면 합니다. 실패 또한 경험입니다.
“모든 일에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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