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과 동양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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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동양의 시각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1.03.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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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반으로 나눠본다고 치자. 당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나눌 것인가? 의견이야 여럿 있겠다마는, 역시 동양과 서양으로 나눈 것이 주류를 차지할 것이다. 지리적인 이유를 제외하고서라도, 우리는 왜 세계를 동서양으로 구분지어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둘은 무엇이 다를까? 이 글에서는 그런 애매한 동서양의 사상, 행동양식 등의 차이점을 따져 원인을 분석하고, 둘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권유함으로써 마무리 지으려한다.
동서양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에는 사상만한 것이 없다. 지금껏 두 나라가 발전해온 경향을 보자면 외서내동, 서양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중시했고, 동양은 정신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사상의 흐름을 정리하면 실학이 조선 후기에 나올 만큼 기술에 대해 관심이 없다. 조선 역사의 대부분은 주자의 경전을 놓고 서민은 접하지도 못할 지도층만의 권력의 상징처럼 이용한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이는 극단적인 면에서 본 것이고, 중체서용을 주장한 중국이나 인의예지충효를 강조한 성리학을 예시로 들어도 실용성을 따지기 보다는 인격 도야 같은 정신적인 측면에 중점을 두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서양은 헬레니즘 시대부터 개인주의적 철학이 크게 융성해왔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물론이고, 개인의 수양을 강조한 스토아 학파 또한 자신을 위한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발전’ 에 목표를 둔 서양사상은 베이컨, 데카르트 같은 이성주의 철학자들에 의해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게 되는데, 진리탐구의 수단이 되었던 것이 바로 기술이었다.
기술의 발전은 서양인들의 관심을 자국의 영토뿐만이 아닌, 바다 저편으로 확장시키게 한다. ‘땅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은 서양의 대항해시대를 열게 해주는 시발점이 되었다. 서양에서 유독 식민지 정복을 공공연히 행해왔던 것은 그 시대의 주를 이루었던 이성주의 철학자들의 자연지배적 성향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격동의 르네상스 시대가 지나갔다 하더라도, 뿌리 깊숙이 자리한 그리스도교의 ‘인간주의 정신’은 서양인들의 뇌리에 박혀있었던 것이다. 보기 좋게 꾸며둔 서양의 정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들의 건축물들 또한 인위적임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동양의 정원은 어떨까? 마당에 작은 산수화를 담아두려 했던 일본, 작은 산과 인공폭포를 만들며 집 안에 도원향을 만들었던 한국. 그렇다. 동양의 정원은 자연을 모사한다. 부채에 산과 들을 그려 자연의 향취를 느끼고, 신화 속에 나오는 동물들은 때로 해학적인, 때로는 신성한 존재가 되어 우리들에게 교훈을 들려준다. 결국 동양의 사상은 자연 친화를 기초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분리되었던 시기를 상정하고 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교통수단이 발달되어 나라간의 교류가 활발해진 지금은 동양도, 서양도 각자만의 색을 고집하지 않고 서서히 상대의 것을 받아들이며 섞이고 있다. 조선 관료들의 일상에 서서히 커피와 양복이 들어왔던 것처럼 말이다. 무엇이든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있다. 자신의 문화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타문화를 배척하지않는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전혀 다른 것 두 가지가 융합할 때, 새로운 문화가 꽃피우게 되는 법이다.
고혜지(생활복지·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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