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통해 읽는 한 해의 마무리, 그리고 새해의 다짐 : 제야시(除夜詩)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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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통해 읽는 한 해의 마무리, 그리고 새해의 다짐 : 제야시(除夜詩)의 세계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0.12.0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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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가 시작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마감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종강을 앞두고 학생들이나 교수들이 저마다 분주하다. 더구나 올 해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온라인수업’이라는 낯선 제도를 통해 1년을 정신없이 보내야 했다. 교수들은 강의 녹화와 편집, 온라인 강의 등 각종 시스템을 배워가면서 수업을 전개해야 했고, 학생들 역시 교실에 가지 못하고 실시간 강의를 들으며 세간에는 소위‘사이버대학생’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처럼 비상(非常)한 시기일수록 저무는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기대하며 소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세밑이 되면 옛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을 돌아보고 지난 일 년의 세월을 반성하였다. 특히 시인들은 감수성이 예민해서인지 자기반성과 회고의 정도가 더욱 심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은 성취한 일보다는 이루지 못했던 일,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가지려 했지만 갖지 못한 것, 좋은 일보다는 후회되는 일에 미련이 남고 더 집착이 가기 마련이다.‘제야시(除夜詩)’에도 이러한 감정들은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돌아보기를 통해 새로운 통찰력과 삶의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 바로 이 점이 제야시가 갖는 미덕이자 옛 문인들이 제야시를 즐겨 지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나 해마다 한 번씩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자에게는 한 해 한 해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에게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 아닌 “연신우연신(年新又年新)”이 되는 것이다. 다음에 살펴볼 시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중국으로 사행을 가서 해가 바뀌는 제야에 서장관에게 준 것으로 포은시 특유의 객창감(客窓感)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상주 성안에 날이 저물고 나니                    
상주 성밖엔 사람 다니지 않네                    
집집마다 등불 밝혀 떠들썩 담소하며                
곳곳의 폭죽놀이에 귀신들이 놀라네                 
오늘이 바로 섣달그믐 밤인데                     
배 안에 묵는 길손은 마음 둘 곳 없도다             
…(중략)…
인생에 술이 있으니 어찌 마시지 않겠는가                   
내년에는 어디에서 이 밤 맞을까   
常州城中日云暮   常州城外人不行
家家明燈笑語喧   處處爆竹神鬼驚
今夕何夕是除夜   舟中宿客難爲情
…(中略)…
人生有酒胡不飮  明年何處逢今夕
위 시에는 「常州에서 제야에 서장관에게」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상주는 중국 강소성(江蘇省) 남부에 있는 도시로 상해(上海)와 남경(南京)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 시는 당시 포은 정몽주가 남경에서 천자를 배알하고 돌아가는 도중에 새해를 맞이하여 상주에 머무르면서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용시의 1-4구는 섣달그믐을 맞이하는 상주의 풍경이다. 12월 마지막 날 저녁이 되자 집집마다 등불을 켜고 가족과 친지들끼리 모여서 담소하며 시끌벅적 새해를 맞이한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음력설을‘춘절(春節)’이라 하여 가장 큰 명절로 지내고 있으며, 특히 이 날에는 온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화려한 불꽃놀이를 한다. 그런데 위 시를 보니 폭죽을 터뜨리는 불꽃놀이의 전통이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축제와 명절일수록 나그네의 외로움과 소외감은 깊다. 가족과 친구들끼리 모여 저마다 즐기는 세밑 축제의 현장에서, 배 안에서 하룻밤을 묵은 시인 일행은 마음 하나 둘 곳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행단의 동료들이 모두 나이 젊고 학식이 뛰어난 호인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이들과 함께 단란하게 화촉을 밝히고 서로 담소를 나누며 시를 주고받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인의 이역만리에서의 새해맞이가 행복하거나 즐거운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마지막 구 “내년에는 어디에서 이 밤 맞을까”라는 짧은 한 마디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가족과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나그네로 한 해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시인의 쓸쓸한 감회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하지만, 시인이여! 너무 슬퍼하지 말기를!! 어차피 우리 인생은 모두 나그네이고, 우리가 보내고 있는 오늘 하루도 사실은 섣달그믐과 다름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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