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입선작_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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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입선작_물고기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0.12.0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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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찼다. 이르게 다가온 추위가 낯설었다. 나는 잠시 창문을 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창문을 통해 뭉개진 풍경을 보았다. 내가 지내는 방은 창문을 통해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작은 직사각형으로 들어오는 빛은 언제나 흐렸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이른 새벽이었다. 창문 앞에 서서 불투명한 새하얀 햇빛을 바라보면, 홀로 동떨어진 세계에 떨어진 것만 같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사는 것이다. 방 안에는 시계가 없어서 더욱 그랬다. 그곳에서 나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꿈에 빠진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나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소리가 싫었다.

조용한 회색 방을 둘러보고 창문을 열었다. 가라앉아 있던 먼지 뭉치가 들어오는 빛에 반짝이며 발아래에 떨어진다. 가을이라고도 겨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날씨의 냄새가 풍겼다. 숨을 깊게 들이쉬면 서늘하고도 비릿한 냄새가 고인다. 바람 내음이다. 춥다. 나는 이제 말문이 터진 아이처럼 입을 열었다. 그러면 세상은 잃어버렸던 소리를 되찾은 것처럼 시끄러워진다. 지독한 담배를 태운 것처럼 하얀 숨결을 뱉는다. 독한 향기는 당연하게도 나지 않는다.

제멋대로인 자신에게 간섭을 해오는 사람은 없다. 이불 위에 엎어두었던 휴대전화가 길게 진동을 토해낸다. 아마도 전화다. 고개를 돌려 휴대전화를 확인하고는 몸을 움직여 스트레칭을 위해 팔을 죽 뻗었다. 불안한 자세를 유지해온 탓에 굽은 허리가 작은 비명을 지른다. 이제는 익숙했다. 그 후에는 허리를 굽혀 아린 부분을 몇 번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때까지도 몇 번이고 더 울리는 전화를 받은 것은 진동이 멎기 직전이었다. 발신인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됐다. , 엄마. 아니, 무슨 일은.

전화를 걸어오는 상대는 언제나 정해져 있었다. 전화는 스피커로 돌려두고, 미뤄두었던 빨래를 천천히 개었다. 잔소리와 같은 걱정의 말이 하나씩 건네져 온다. 나는 별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해서 언제나 웃고는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무렇게나 대답을 하면, 언젠가 사두었던 녹음기가 부착된 인형 같았다. 한때 인기가 많았던 캐릭터의 인형이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인형이었다. 기계음이 별로 섞이지 않아, 재미있게 가지고 놀고는 했었다. , 알겠어. . 성의가 없어 보일지도 모르는 건조한 말을 반복하면, 건조대 위로 옷이 하나씩 쌓여간다. 빈 곳에는 휴대전화를 올려둔 채다.

공부? , 열심히 하고 있지.”

말로만 응, . 정말로 하고 있기는 한 건지, 말로만 하는 건지…….”

아냐, 그냥.”

어떤 대답을 할지 고민하면 무게가 맞지 않아 건조대가 기울어진다. 급하게 붙들었지만 올려두었던 휴대전화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곧이어 개어두었던 옷들도 우수수 떨어진다. 무슨 소리냐며 물어오는 말에 나는 겨우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대답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당겼다. 필름 하나 붙여두지 않은 액정에 금이 갔다. 입술을 열었다가, 또다시 닫았다. 금붕어처럼 어떤 말을 벙긋 열었다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집에 있던 어항 속의 구피가 먹이를 먹기 위해 입을 벌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물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전화를 더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근데 엄마. 아빠는?”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나와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세상은 다시 소리를 잃고 만다. 고개를 들어 회색 방을 둘러보았다. 높낮이가 그다지 높지 않은 매트리스. 아무렇게나 펼쳐둔 채 정리하지 않은 이불과 의자에 걸쳐둔 옷가지들. 펼쳐두기만 한 채, 밑줄 하나 그어져 있지 않은 책이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치고 벽에 기대어 있는 나. 아직 전화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숨소리는 오래된 냉장고의 기동음에 묻혀 사라지고 있었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문득 열어두었던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나도 차갑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바닥에 휴대전화를 내려두고 창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들면 주홍빛으로 물든 하늘이 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니었는데 이미 해는 넘어가고 있다. 손에 걸리는 창틀을 쓸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건조대를 바라본다. 아슬하게 버티고 선 모습이 자신과 비슷해 보였다. 건들면 무너질지도 모른다. 한쪽으로 기울어 균형을 잃은 척추가 떠올랐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 중의 물기가 몸속 깊숙이 들어찬다. 휴대전화를 들고 작게 속삭였다.

다음 주에 집에 갈게. 돌아오는 말은 없다.

끊어. 이번에도 돌아오는 말은 없다.

어떤 문장보다도 돌아오지 않는 침묵이 익숙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를 끊으며, 다시 스트레칭을 위해 팔을 뻗었다. 기울기가 맞지 않는 어깨가 아팠다. 아리는 어깨를 손으로 주물렀다. 닫힌 창문 너머로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린다. 천진하고도 즐거움이 가득한 목소리에 유리창 위로 손을 얹었다. 손끝으로부터 축축한 습기가 오른다. 추악한 질투와 부러움이 속에서부터 차오른다. 나는 어려서부터 딱히 자라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어리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나이는 상관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 마치 물고기처럼.

금요일에는 하는 일이 없다. 집에 가기 위해서 차에 몸을 실은 것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차창에 고개를 기대고 있으면 우레와 같은 소리가 귓가를 두드린다. 울렁이는 세상에 빗소리가 섞여들었다. 덜컹거리는 몸이 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소나기라고 부르기에는 빗줄기가 거셌다. 눈을 떠 창밖을 보면 때늦은 빗줄기다. 어디까지 왔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외버스에서 내릴 때까지만 해도 비가 내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자취방에서는 아무리 해도 텔레비전을 볼 방법이 없어서 뉴스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휴대전화로 날씨를 확인하는 버릇을 들여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은 결과였다.

끼익처음 앉을 때부터 불안하게 소리를 내던 좌석이었다. 나는 입술을 내밀려다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버스에 거무죽죽한 얼굴을 더욱 푸르게 했다. 머리는 앞뒤로 흔들리고, 주위는 빙그르 한 바퀴 돈다. 옆에서 옆으로, 사람들이 밀려났다가 제자리로 발을 내딛고 있었다. 나는 속에서 치미는 구역질에 차창에 이마를 박았다. 출발하기 전에 먹은 삼각김밥이 체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부족한 시간에 물 없이 구겨 넣었던 게 후회가 됐다. 서늘한 표면에 이슬이 송골송골 맺혔다. 내 이마에도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힌다.

괜찮아? 옆에 함께 타고 있던 친구의 물음이었다.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이인지는 사실 헷갈렸다. 입가를 누르고 고개를 흔들었다. 물비린내가 코끝에 스쳤다. 움직임으로 아득한 두통을 느끼기도 전, 앞쪽으로 기우는 몸에 앞좌석에 얼굴을 박고 말았다. 어수선한 사람들의 놀란 듯한 목소리와 욕지거리가 윙윙거린다. 갑작스러운 정차에 튀어나오려던 비명을 삼켰다. 내가 상체를 웅크리며 고통을 삼키면 그 애는 길게 상체를 빼었다. 허리를 웅크린 나는 어느 때에 보았던 뮤지컬을 떠오르게 했다. 노틀담의 곱추였던가. 곁눈질로 확인한 그 애의 모습은 꼭 몸을 늘린 토끼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래? 입을 열어 질문을 건네도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언성이 높아지는 버스를 죽 훑은 나는 눈을 깜빡였다. 혼자 동떨어져 살피는 것은 조금 이상한 느낌이었다. 펄쩍이며 뛰어다니는 거친 문장들이 나를 지나친다. 그것들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날 무시한다.

깜빡, 깜빡. 눈을 감았다가 뜰 때마다 두통은 심해졌다. 누가 망치로 못을 박아넣는 것처럼 날카로운 고통이 울렸다가 멎는다. 버스가 멈추면서 춤추던 속은 아까보다 나아진 상태였다.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출렁이던 자신은 축축한 버스 안에 덩그러니 앉은 채였다. 무슨 일이냐며 몰려있는 저 사람들은 구피인가? 또 집 안에 있을 작은 물고기를 떠올린 채였다. 머리가 아프니 생각이 이상한 곳으로 튀고 있었다. 흉흉한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좌석 위로 고개를 빼기보다,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택했다. 갑작스러운 비에 바퀴라도 미끄러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의 결과였다. 여전히 거센 줄기가 창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지고 있었다.

닦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괜히 손가락으로 창을 문질렀다. 건조한 검지가 뿌득하는 소리와 함께 미끄러졌다. 옆 차선에 있을 차의 전조등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벽돌 건물의 붉은빛과 전조등의 노란빛이 얼룩덜룩 물에 번진다. 나는 그 위로 손을 얹었다. 비와 노란색, 붉은색. 노란색을 좋아하는 건 어린 것일까. 나이를 하나씩 먹을수록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이제 어른스러워져야지. 나는 어른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그냥 그저 그렇게, 물살이 이는 방향으로 흔들리기만 한 물고기처럼 존재했다. 그건 조금 서러운 일이기는 했다.

질척거리는 진흙이 밟히는 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점점이 커졌다, 작아지는 노란색을 오랫동안 눈에 담았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 하나가 떠오를 것 같았다. 몸을 움직여 창 쪽으로 몸을 밀어붙이려는 순간 다시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다시 기울어져 창에 이마를 박았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얼얼한 감각에 손으로 이마를 덮었다. 따듯한 이마와 다르게 손은 차가웠다. 너 이마에 혹 나겠다. 웃음기가 가득한 놀림조였는데 사투리인지 억양이 섞였다. 놀리지 마. 속삭이듯 고해진 문장에 불퉁한 말이 나가고 만다. 그 애는 그런 내가 웃겼는지 결국 깔깔 웃어버린다. 그 모습에 쏘아볼까 고민했지만, 고개를 흔들고 창문을 조금 열었다. 어쨌든 찬 바람이라도 맞으며 달 뜬 얼굴을 식히고 싶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었대? 창문에 비친 모습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까만 마스크를 내리고 있던 그가 마스크를 끌어 올리며 코를 찡그리는 게 보였다. 그보다 앞에는 내가 비쳤다. 창문 속에는 엉망으로 짧게 자른 머리카락의 나와 조금 긴 머리카락을 가진 그 애가 있다.

나도 모르지. 내릴 때 우산 없어서 큰일이다.”

그전에는 그치지 않을까.”

소나기겠지? 데리러 오라고 하긴 좀 그래.”

아마도. 대화는 금방 끊어지고 말았다. 금방 고개를 내려 손 아래의 휴대전화를 보는 모습이다. 흩뿌려지는 비에 젖어드는 바지가 축축했다. 흐린 날씨에 어둡게 내려앉은 세상이 고요하다. 소곤거리던 말소리도 잦아들어 간간이 정류장을 안내하는 기계음만 울렸다. 대화 하나 나누지 않으면, 이곳은 습기가 가득한 어항에 가까웠다. 나는 고개를 돌려 놓쳐버린 색을 찾기 위해 밖을 바라보았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모두 물방울에 뭉개져, 찢어질 듯이 흐렸다. 회색, 회색. 이따금 씩 보이는 앙상한 갈색. 붉은색과 파란색, 검었다가 햇빛처럼 밝은 하얀색이었다가. 전조등의 꺼질듯한 노란색이 깜빡이며, 내 머리도 창에 가까워졌다. 불안정한 버스가 신호등에 걸렸는지 멈춰 섰고, 나 역시 창에 가까이 몸을 밀어붙였다. 노란색. 머릿속에 노란색이 가득했다.

동그란 우산이 보였다. 아이들이 주로 쓰고 다니는 노란색의 우산이다. 똑같이 샛노란 우비를 입고, 누군가의 손을 잡은 채로 신호등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였다. 노란색. 나는 노란색을 좋다. 사람들은 저보고 유치하다고 말했지만, 노란색이 좋았다. 고작 색 하나를 좋아한다고 어른이 되지 못한다면 세상이 이상했다. 창 위로 손을 얹어 토닥여봤다. 꼭 어항을 바라보며 두드리던 모습과 닮았다.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소리만 들렸을 때는 쉽게 질투가 났는데, 직접 아이를 눈에 담으면 그런 마음은 들지 않는다. 졸려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큰 어항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 노란색이 예쁜 구피였다.

사람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사는 걸까. 관심을 두지 않고, 관리하지 않으면 혼자서 외롭게 죽고 마는 것은 아닐까. 타지에서 혼자 사는 것은 의외로 괜찮았다. 어쩌면 적막한 집에서 벗어난 게 좋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빠도 엄마도 바빠서, 어릴 때부터 자신의 친구는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들이었다. 알록달록한 색들이 가득한 어항. 내가 하는 일은 이마를 어항에 맞대고 구경하는 것만이 끝인 하루들.

나는 그래서 물고기가 싫었다. 가장 싫어한 것은 금붕어였다. 툭 튀어나온 눈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려하게 유영하는 모습은 분명 예뻤지만, 금붕어는 금방 죽고 말았다. 관리의 문제였는데, 금붕어는 잘 돌보면 오래 살 수 있는 물고기이다. 사람들과 물고기를 동일시하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사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그 모습이 닮았다. 사람도 작은 시선 하나 닿지 않으면, 시들어서 마음부터 닳아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자신은 금붕어였다. 물고기는 싫지만, 구피는 좋아했다. 이리저리 규칙성 없이 움직이는 모습이 창밖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과 같았다. 그럼 나는 이제 어항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시간에서, 소리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물속에서, 조금 외롭게 살았다. 친구는 없었다. 유치한 망상 같은 것을 하는 애와 놀아줄 아이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지만, 사람들과 함께였다. 무리에 섞이지 않은 채 홀로 존재했다. 쟤는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어? 기분 나쁘게.

그런 자신과 어울려주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노란 우산을 즐겨 쓰는 아이였는데, 나는 그 아이를 속으로 노란 구피라고 불렀다. 밝은 갈색의 곱슬한 긴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걸을 때마다 헤엄치듯이 유영하는 머리카락과 눈을 휘며 상냥하게 웃는 얼굴에 말 한 마디 한 마디도 다정하게 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좋았다. 구피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좋은 아이였다. 실수로 입 밖으로 낸 구피에 자신을 말하는 거냐며 웃던 아이. 긴 머리카락이 무척 잘 어울렸던 아이. 둥글게 웃을 때면 고운 볼이 패여 사랑스럽던 그 아이. 만약에 구피라는 별명을 지어주지 않았다면 너는 내 곁에 오래 머물러주었을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어렵다. 물고기를 물고기로 대하는 건 쉬운데, 어째서 사람은 어려운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멍청하게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 할 줄 알았고, 그건 결국 나의 문제였다. 서투르기만 한 아이에게 친절한 어른은 없었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상냥하지 않다. 그들은 이제 아이가 아니니까.

다음 정류장은

, 흔들리는 감각에 눈을 깜빡이면 옆자리에 앉아있던 그 애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애는 여기서 내리는 것 같았다.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썹을 모은 얼굴이었다. 마스크를 손가락으로 내린 채로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했다. 우연히 만났으므로 다음이라는 말은 누구도 꺼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도 들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노란색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한다는 게 그대로 선잠이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머리는 이제 아프지 않아서, 손으로 밀어 창문을 닫았다. 바람이 차단되자 내게 남은 것은 추위뿐이었다. 팔짱을 끼고 목을 최대한 수그리며, 이 이상으로 체온이 날아가지 않도록 고개를 숙였다. 발밑으로 내려두었던 가방을 허전해진 옆자리에 놓는다.

자신이 내릴 곳은 종점이었다. 바로 집은 아니었고, 거기에서 10분 정도는 더 걸어서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 만큼 그렇게 가득했던 사람들은 상당수 빠져나간 뒤였다. 덜컹거리며 멈추면서 비바람을 안으로 들여보냈던 버스지만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토끼 같던 그 애처럼 고개만 죽 빼내어 버스를 살피면 혼자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흔들리는 손잡이에 시선을 고정하고,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조용한 버스의 엔진 소리와 추적이는 바퀴 소리를 듣는 것은 좋다. 쓸모없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숨을 죽였다. 이미 밤에 가까워진 밖보다는 불을 켜 환한 버스 쪽이 구경하기에 편했다. 밖에서 보면 조금 웃긴 모습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소름 끼치는 모습일지도 모르고. 흔들흔들. 버스가 움직이는 대로 몸을 흔든다.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길어서 내려온 머리카락을 애써 손가락으로 넘겼다. 버스 안에서 몸을 흔들며, 멍하니 허공버스 손잡이를 보는 것이지만을 바라보는 여자라니. 누가 보았으면 기괴하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작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찬 바람이 가득하다. 따갑기만 한 피부를 옷 위로 문지르며 두드렸다. 찬 바람을 오래 쐬면 늘 이랬다.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안내음이 곧 종점임을 고했다. 나는 주머니 속에 아무렇게나 쑤셔놓았던 휴대전화를 들었다. 금이 간 액정에 손을 베이지는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었지만, 근처에서 싸구려 필름을 사서 붙인 채였다. 주소록에 저장된 번호는 얼마 없어서, 전원을 켜면 바로 보이는 번호 하나를 누른다. 오랫동안 연결이 되지 않는 수신음에 허공을 향해 숨을 불었다. 하얀 김이 어리다가 흩어진다. 상대방은 받지 않는다. 전화를 한 번 끊었다.

버스는 불안하게 흔들리다 멈추어 선다. 가방을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나면, 버스 기사에게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비는 거의 그쳐서 얕은 빗줄기만 세상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입을 열어 숨을 내뱉었다. 춥다. 새하얀 숨결에 허공에 피어오른다. 손으로 그것을 흩어냈다. 가느다란 비에 머리카락이 젖는 것이 느껴져서 조금만 걸어 정류장 아래에 섰다. 그리고 방금 내린 버스를 올려다보면, 새하얀 빛이 새어 나온다. 자취방에서 보던 햇빛을 닮은 색이었다. 나는 다시 전화번호를 누르고 연결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서 조심했다. 도로 위의 차 엔진음이 시끄럽다. 휴대전화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고, 쓸모없는 소리를 듣지 않게 숨을 죽였다. 좀처럼 이어지지 않던 전화가 이어진다.

, 엄마. 나 이제 도착했다고.”

아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오겠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저번 주에. , 그때. 내 말 안 들었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 것치고는 목소리는 괜찮았다. 나는 그 사실에 조금 안도했던 것 같다. 목이 잠겼다면 울었던 것 같으니까.

가방을 메고, 언제 했던 것처럼 말을 꺼냈다. 빗줄기가 얼굴로 흘러내려 방해였다. 손등으로 대충 훔치며 비를 맞을 휴대전화가 고장 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면 익숙하지만 어색한 거리가 보인다. 가게의 문을 닫으려는지 하나, 둘 불이 꺼지고 있었다. 이 시간에 혼자 걷는 것은 오랜만이다. 자취방을 잡은 뒤로는 집에 잘 들리지 않았었다. 어쩌면 엄마에게서 전화가 자주 오는 것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바쁘면서, 바쁘잖아. 나 시험 준비해야 해서 바빠, 못 갈 것 같아. 그런 변명 같은 말은 어느새인가 자신이 하고 있다.

눈 안으로 빗방울이 들어가 따가웠다. 눈을 몇 번 깜빡여 눈물을 흘리기 위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둠이 찾아드는 거리에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늘 이렇다. 유령 도시와도 같은 모습이다. 그 쓸쓸한 모습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게 이상하다. 혼자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까,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목소리를 억지로 짜냈다.

밖이야? , 나 아직 저녁 안 먹어서.”

아니, 같이 먹으면 좋잖아.”

먹구름 사이로 달이 보였다. 그믐달이다. 그 작은 빛이 꼭 전등 빛 같았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지만, 아주 오랫동안 작은 빛을 내뿜는. 나는 물을 먹어 조금 무거워진 듯한 발걸음을 옮겼다. 가방에 든 것들은 젖어도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아니 충전기는 조금 곤란하지만, 제 방에는 예전에 쓰면서 꽂아두었던 충전기가 그대로 있을 터였다. 누가 치워두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적막한 도로를 지나, 골목길 안쪽으로 향했다. 어느 집인지 모를 마당 개가 시끄럽게 짖는 소리가 울린다. 사람은 없지만, 그 외의 생명은 고요하게 살아있다. 나는 정겹게만 들리는 경고성 짖음을 달갑게 받아들였다. 조금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다.

나는 조용히 자신의 전화를 듣고 있을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저 집은 지나갈 때마다 개가 짖는다며 농담도 하며, 그리 오래 걷지도 않았는데도 차오르는 숨을 갈무리한다. 집에서만 지냈다고 체력이 떨어진 것 같았다. 억지로 잇던 말도 동나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시 우리 사이에는 소리가 끊기고 만다. 집에 거의 다다르고서야 먼저 전화를 끊었다. 언제 돌아오느냐는 물음은 하지 않았다. 새벽 중에 돌아왔다가 새벽 중에 나갈 것이다.

여전하네. 오래된, 조금 구식에 가까운 건물을 올려다보면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채다. 밤이라고 하지만 이른 시간이다. 주변에 살던 이웃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증이 들었지만, 신경 쓸 것이 아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없는지 확인을 끝내고서야 계단에 올랐다. 수명이 다했는지, 계단의 조명등은 켜지지 않았다. 어두운 계단을 휘적휘적 닿는 대로 걷다가 넘어질 뻔해서야 휴대전화로 발밑을 비추었다. 희끄무레한 조명에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그게 조금 웃겨서, 숨을 죽였다. 고요한 계단에서 웃음소리까지 울리면 정말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될 것 같아서였다.

문 앞에 다다르고 난 뒤에야 집에 먹을 게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계단을 내려보았고,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서 현관문 앞에 내려놓았다. 여기서 편의점까지는 또 금방이다. 작긴 해도 있을 만한 것들은 다 있다. 딱히 먹고 싶었던 게 있던 것은 아니니까 김밥과 함께 캔맥주나 사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을 누가 가져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져가도 돈 한 푼 나오지 않을 테니까 상관없기도 하다. 윙윙 울리는 공기를 무시하고, 휴대전화 뒤에 넣어 다니는 카드가 제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종종 지갑에 넣고 헷갈릴 때가 많았다.

, 있다. 무심코 입을 열면, 계단 전체로 내 목소리가 울린다. 나는 목을 움츠리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시끄럽다고 문을 열고 소리치는 사람은 없다. 다 잠들었거나, 집에 없거나조금 쓸쓸한 생각에 피부 위로 닭살이 오돌토돌 오른다. 여전히, 피부는 따가웠다. 손바닥으로 몇 번 내리치며 고통으로 가려움을 잊으려고 했다. 건조한 피부는 언제나 말썽이나 다름없었다. 자잘하게 소리를 내면 정말로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먹먹한 귀에 고개를 흔들었다. 귀에 물이라도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손으로 얼굴을 스쳐보았다. 물기가 묻어나와 옷으로 문대고 한숨을 크게 내쉰다. 울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밤에 울며, 비를 맞으면서까지 맥주를 사러 온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고집일지도 모르지만 그랬다. 물속에 있다가 나오면 누구나 축축하게 젖어있다. 그건 물고기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이다. 오히려 사람의 몸보다 축축하고, 흐늘거리고, 미끄덩한데 축축하게 젖어드는 휴지에 손에 힘을 주어 쥐면 꼭 문드러져 짓뭉개져 터져버린다. 예민하면서, 그렇게 약하기까지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릴 때의 나는 손에 어느 정도의 힘을 줘야 할지 몰라 이미 죽어버린 물고기를 너덜하게 만들었다. 젖은 숨을 삼키고, 눅눅하고 질척거리는 손을 다시 바지에 문질러 물기를 닦아냈다. 닦아내고, 닦아내도 축축한 손은 건조해지지 못한다.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답답한 마음에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숨이 턱 막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울적해진다. 혼자라고 생각해서인지, 내 손에서 뭉개지던 금붕어를 떠올려서인지.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앞을 바라보았다. 계단에 난 작은 창문으로 흐린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새하얀 빛이다. 햇빛은 아니었다. 달도 아니고, 아마도 근처에 있는 전봇대에 전등불이 들어온 것 같았다. 작은 직사각형으로 들어오는 새하얀 빛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흐린 빛에 하늘은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나 말고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꼭 자신만이 동떨어진 세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에 얼어붙은 듯이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희뿌연 빛에 눈이 너무 시렸다.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어서 나는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졌다. 축축했다. 잇새로 흘러나오는 흐느낌에 나는 몸을 웅크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외로웠다. 아무렇지 않았던 게 아니고, 무감한 게 아니다. 단지 실감하지 못해서, 겉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없어서 그랬을 뿐이다. 나는 문득 터져 나오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젖은 숨을 삼켜서 울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꺽꺽거리며 입을 앙다물었다. 방울지며 떨어지는 눈물이 손을 축축하게 만든다. 정적만이 가득한 계단 밑에서 울어도, 내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홀로 헤엄치는 금붕어는 나처럼 운 적이 있었을까. 내 미숙함으로 터져버린 자신의 몸을 보며, 그 검고 큰 눈으로 원망한 적이 있었을지 나는 모른다. 흐리게 빛나는 전등불이 꼭 어항을 비추는 것 같았다.

물속에서는 늘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제대로 된 수영 하나 하지 못하는 나는 팔과 다리만 휘적이며, 가라앉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소리 하나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홀로 남겨질 때면, 나는 나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소리가 싫었다. 추적한 물에 익사라도 할 것 같지 않은가.

황수빈(생활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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