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당선작_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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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당선작_채송화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0.12.0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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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화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된다는 말입니까?"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새어버린 박 선생님께서 눈을 부릅뜨고 큰소리로 소리친다. 평소에 학생들이 까불어도 허허 웃으시며 넘기는 분이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교감 선생님께 고함을 지르고 있다.

 

"학생은 말입니다. 선생이 가르쳐야합니다. 기계가, 컴퓨터가 어떻게 사람을 가르친단 말입니까?"

", 그러니까요. 내생각도 그래요, 그런데 이걸 해야만 지원금을 받죠. 박 선생님도 이 낡아빠진 학교에 불만이 많으셨잖아요?"

"뭐요? 교감선생님!"

", 이제와선 무르지도 못합니다. 정 선생님."

 

교감선생님께서 날 불렀다. 마음속으론 다른 생각을 하며 멍하니 있어 화들짝 놀랐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며 교감선생님을 바라본다. 박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약간 상기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 선생님께선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특별반을 맡아주세요. 그리고 김 선생님 김 선생님께서는 대조반을 맡아주세요."

"."

", 교감선생님."

 

특별반과 대조반, 교육부에선 4차 산업혁명 및 언택트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교육방법을 도입하고자 한다. 학생들의 교육과정을 분석하여 인공지능을 통한 교육, AI교육을 내세우며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고 우리학교는 시범학교로 선정되어 중학교 3학년의 두 학급을 선정하여 특별반과 대조 반을 운영한다. 특별반은 AI교육을 받고 대조반은 지금까지의 일반교육을 받아 한 학기 성적을 비교하여 앞으로의 교육정책을 정한다.

 

"다음 학기에는 두 반은 별관건물을 써주세요. 선생님들 교무실도 임시로 그쪽으로 써주셔야 되는데. 정 선생님은 컴퓨터실까지 거리가 꽤 먼데 괜찮죠?"

"저보단, 여기 김 선생님이 여기저기 다녀야 되니 힘들 것 같네요."

"…….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박 선생님은 저랑 잠깐 보고. , 정 선생님께선 업체 이 선생님이랑 전화해보셨죠?"

". 어제 통화했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내용은 그쪽이랑 통화해서 해결해 보세요. 박 선생님 가시죠."

 

교감선생님께서 박 선생님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박 선생님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기색이지만 그래도 따라 나섰다. 옆에 앉은 김 선생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걸어온다.

 

"선배, 선배는 준비 잘돼가요? 전 막막하기만 한데."

"글쎄, 준비라고 해도 잘 모르겠어. 이번이 아예 최초잖아? 그냥 담임업무 준비하는 거지. 그리고 넌 그냥 일반 학급담임 맡았다고 생각하고 준비해."

"그래도 담임은 아예 처음인걸요."

"뭐가 처음이 아니겠니?"

 

장난스럽게 놀리다가 옆구리를 한대 맞는다. 대학교 동아리 선후배로 처음 만나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같은 학교에 임용되어 만나게 됐다. 동아리 활동을 할 때는 그냥저냥 인사만 하는 정도였는데 막상 학교에 오니 그 짤막한 인연도 반가워 지는 게 사람 마음인 것 같다. 한쪽에 고이 접어놨던 마스크를 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은 별관정리 좀 하러 갈건 데. ?"

"그럼 저도 같이 가요."

 

김 선생, 주희와 같이 일어나 별관으로 향한다. 학교는 총 3개의 건물로 되어 있는데 교실이 모여 있는 3층짜리 본관 하늘관과 도서관, 체육관 급식실이 모여 있는 바다관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별관은 대지관으로 통로로 연결되지 않아 약간 걸어서 이동해야하는 위치였다. 전체적으로 ''자 모양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하늘관을 중심으로 바다관과 대지관이 마주보고 있다. 내가 맡은 컴퓨터과목은 하늘관에서 바다관으로 넘어가는 3층 통로에 위치해있어 대지관과 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컴퓨터실에서만 업무를 볼 수 있고 바로 옆에는 방송실이 세팅이 되어있어 별다른 문제는 없다. 다만 주희는 국어과목을 맡고 있어서 매 시간마다 다른 교실로 이동해야 된다. 대지관 교무실에서 왔다 갔다 하기엔 약간 거리가 있다.

 

"이번에 몇 학년 맡을지는 아직 안정해졌지?"

"? , 그래서 고민이죠. 왔다 갔다 하려면 아무래도 좀. 힘들겠죠?"

"괜찮으면 3학년 배정받고 3층으로와, 방송실에 자리 비워둘게."

", 그럴까요? 그런데 담임이 자기반 자주 안가도 되나요?"

"글쎄, 난 비교과라 뭐라 말해주기는 그러네."

 

대지관 교무실은 원래 간이 음악연습실로 사용되던 공간을 사용할 예정이다. 안에 들어있던 피아노 두 대는 저번 주에 치워냈고 빈 공간에 넣을 사무용 책상을 미리 문 앞에 끌어다 놨다. 오늘은 일단 안에 내부 청소를 좀하고, 아 청소기를 차에 놓고 왔네.

 

"먼저 가서 대충 큰 쓰레기만 정리해 둘래? 차에 청소기를 놓고 왔네."

"청소기까지 들고 오셨어요? 빗자루질 안 해도 되겠다."

 

대지관 앞까지 왔던 발걸음을 돌려 학교 뒤편 주차장으로 향한다. 여름방학동안 길게 자란 잡초들이 어느새 무릎높이까지 닿는다. 화단 한편엔 꽃을 심어놓았는데 그 앞으로 작은 인영이 쪼그려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서은이다. 무엇을 보고 있나 보니 작은 채송화 몇 송이가 조그맣게 피어있다. 서은이는 꽃을 멍하니 바라보며 멍하니 있다.

 

"서은아, 뭐하니?"

", ! 놀랐잖아요!"

"방학인데 학교에 왔네?"

", 쌤 이거 봐요 꽃이 폈어요."

", 예쁜 꽃이네. 무슨 꽃인지 아니?"

"헤헤, 쌤은 꽃 이름도 몰라요? 히히"

 

여느 중학생아이들이 그렇듯 제대로 대화가 흘러가는 느낌은 아니다. 꽃 주변을 보니 방학동안 관리가 전혀 안된 화단에 비해 채송화 주변엔 잡초가 없고 어느 정도 관리가 되어 있는 게 서은이가 잡초를 정리해 낸 것 같다.

 

"서은이가 화단관리를 했니?"

", 예쁘죠?"

"그래 꽃이 참 예쁘네."

"아니, 방학 때 나와서 꽃에 물준 제 마음이 이쁘죠?"

"그래, 상점 줄게."

"어예!"

 

서은이는 나한테 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한번하고 화단 한편에 놓인 가방을 매고 교문 밖으로 나갔다. 벌써 중학교 3학년이 된지 반년이나 지났지만 어째 하는 짓은 1학년 때와 비교해서 별로 달라진 게 없네.

 

차에서 청소기를 꺼내 별관으로 갔다. 별관 입구에는 어느새 큰 쓰레기 봉투하나를 들고 나온 주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그 큰 청소기를 들고 다니세요?"

"아니, 이번에 쓸려고 가져온 건데. 안은 어때?"

"테이프 붙어 있는 것 전부 때고, 먼지도 털어놓고 기다리고 있었죠."

"그럼 청소기는 내가 돌릴게."

"."

 

청소기를 교무실 한편에 꽂고 가볍게 한 번 빨아들인다. 바닥에 살짝 쌓여 있던 먼지들과 오래된 악보에서 떨어져 나온 듯 한 종잇조각, 피아노가 옮겨지면서 뜯어져 나온 작은 나뭇조각들이 청소기 안으로 사라진다.

 

"작년까지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진 공간에, 삭막한 바람소리가 빈자리를 채운다."

"주희야 그러니까 내가 피아노 치는 학생들 다 쫒아낸 것 같잖아."

"소음(小音)을 꺼트린 그의 손에서 소음(騷音)은 벌판을 달리는 기병처럼.."

"그만."

"네에. 책상 안으로 옮기죠."

 

청소기를 정리하고 문 양쪽을 활짝 연 뒤 주희와 함께 책상을 안으로 옮겼다. 사무용 책상 3. 의자 3. 그 외 학교 서버에 연결할 공유기랑 멀티탭이 든 상자를 책상위에 올려놓는다.

 

"저거 연결은 지금 하실 건가요?"

"아니, 나중에 하지. 어차피 업체 사람이랑 자리도 정해야지."

"업체사람. , 이 선생이라는 그 사람이요? 어떤 사람이에요?"

"통화 한 번밖에 안하겠는데 뭘 알겠어."

 

1주일 전 갑자기 전화 와서 뜬금없이 인공지능 이야기를 꺼내며 혼자 흥분한 채 말을 쏟아내던 기억이 떠오른다.

 

저는 항상 이렇게 될 거라 생각, 아니 예언 했습니다. 인간은 미완성이고 우리는 완성해 나갈 수 있는 것이에요.’

, 그래서 누구신가요?’

 

용케 전화를 끊지 않고 물어봤었다. 아마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겠지만

 

저는 이번에 특별반을 맡게 된 AI솔뫼의 이사 이무용입니다.’

 

스스로 무용이라 밝힌 그 목소리는 알 수 없는 확신으로 가득 차있었다.

 

별로 좋은 느낌은 아닌 것 같아.”

?”

아니야, 남은 일은 내가 할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벌써요? 저녁때까지 하고 밥이나 얻어먹으려 했는데.”

 

스마트 폰을 살짝 보니 오후 4시를 살짝 넘어가고 있다.

 

시간이 많이 비네, 아쉽지만 저녁은 나중에 사줄게.”

그럼 소 사주 세요.”

돼지로 만족하세요.”

. 그럼 먼저 가볼게요. 이왕 빨리 가는 거 저녁장이나 봐야겠네요.”

그래 그럼 다음 주에 보자.”

. 다음 주에 봐요.”

 

주희가 학교를 나가고 차에 타고 있는데 눈앞으로 힘없이 걸어가는 박 선생님이 보인다.

 

박 선생님.”

, 정 선생……. 별관정리는 다 끝났나봐.”

책상정리까진요. 박 선생님은 교감선생님이랑 이야기 잘,”

, 그 사람 얘기 하지 마요!”

 

박 선생님은 교감선생님 이야기가 나오자 언제 힘이 없었냐는 듯 목소리를 키웠다. 이내 아차 싶었는지 한숨을 푹 내쉰다.

 

미안해요, 뭐 그냥 답답해서 그랬어요. 다음 학기 준비 열심히 해요. 무슨 상황이……. 벌어질리 모르잖아요.”

 

박 선생님은 터덜터덜 교문 밖으로 나가셨다. 그 발걸음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진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짧은 여름방학이 순식간에 끝났다. 특별반 편성도 사실 딱히 어려울 것이 없었다. 기존에 있던 1반 학생들은 대조반, 2반 학생들은 특별반으로 지정되었다. 나와 주희는 기존에 쓰던 교무실에서 별관에 있는 임시교무실로 옮겨졌고 특별반 아이들 또한 별관의 비어있는 교실로 반을 이동해야 했다. 처음에는 대조반 아이들도 옮길 계획이었으나, 3학년 수업을 맡은 선생님들이 강력하게 주장하셔서 대조반은 1층으로 옮겨지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업체의 이 선생님, 이무용 대표가 앉아있었다. 아직 더운 날씨임에도 긴팔셔츠에 긴 정장바지, 그럼에도 땀 한 방울 나지 않은 채 준비해온 태블릿PC를 살펴보고 있었고 한쪽에는 특별반의 출석부를 펼친채 임으로 게속 아이들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얼굴을 익히고 있었다.

 

이 선생님.”

…….”

이 선생님?”

…….”

이무용 선생님.”

, 절 부르셨던 거군요. 죄송합니다, 아직 선생이라 불리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금방 익숙해지실 겁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10분 뒤에 첫 점호 시간입니다. 9시부터 1시간가량 담임시간을 가지고 105분부터 개학식, 개학식 끝나고 11시부터 3,4교시 연달아한 뒤 점심시간이니까, 옮길 것 있으시면 미리 옮겨놓죠.”

, 밖에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그나저나, 이 교무실 방음이 엄청 잘되는 것 같네요. 옆방에 있는 아이들소리가 하나도 나질 않으니.”

피아노 방이었으니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벌써 가시려 구요?”

먼저 들어가서 애들 좀 차분히 만들어 놓을게요. 안 그러면 그 태블릿 PC 보자마자, 난리가 나서 제어가 안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은 10분 뒤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교무실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짧은 여름방학동안 무슨 일이 많았는지 웃음소리가 창문을 뚫고 나온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선이 한순간 확 쏠린다.

 

, . 왜 들어와요?”

, 쌤이 이번학기 여러분 담임을 맡게 됐어요. 너무 좋지?”

와아! 아니요!”

박쌤은요?”

박쌤 짤렸어요?”

그럼 우리 수학 안 배워요?”

 

내가 한마디를 내뱉으면 여러 마디가 따라온다. 학교가 워낙 작은 학교인지라 몇 명 안 되는 구성이고 작년에 담임을 맡은 학생이 절반, 수업에 들어가서 얼굴을 아는 학생이 절반정도 되는 상황이다. 교탁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쳐 아이들의 이목을 좀 더 끌어모은다.

 

쿵쿵-

자자, 집중. 방학동안 어머님들께 문자로 안내되었는데, 아마 너희들 중엔 모르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 혹시 내가 어머니, 아버지께 이번 2학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들었다 거수.”

 

8명의 아이들 중 5명의 아이가 손을 든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여러분들은 특별반이야, 이번에 아주 최신 시스템, 형진아 뭐라고? 그래, 최신 시스템으로 교육을 받게 될 거에요. 그래서 반도 이동하고 담임 쌤도 나로 바뀌었어, 조금 있으면 쌤이랑 같이 여러분들을 맡은 쌤이 들어와서 이번학기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설명해 주실 거예요. , 질문 있는 사람? 그래 형진이.”

쌤 저는 왜 1반이었는데 2반으로 바뀌었어요?”

, 그래? 수학 쌤이 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ㅋㅋ 형진이 이리오고 수필이가 1반 갔잖아, 내 생각엔 말 안 듣는 애들만 모아놓은거임.ㅋㅋ

 

한 녀석의 장난스런 말에 아이들을 살펴보니 전체적으로 산만한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반은 그대로 오기로 한 것 아니었나, 나중에 교감선생님께 물어봐야할 것 같다.

 

드르륵-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사이에 이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들은 갑작스레 등장한 낯선 어른의 모습에 살짝 긴장했는지 순식간에 조용해 졌고 이 선생님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내비취셨다.

 

, 이분은 쌤이랑 같이 2학기에 여러분을 맡을 이무용 선생님이셔 다 같이 박수.”

와아

 

아이들이 적당히 박수를 쳐준다. 이 선생님은 어느새 칠판에 자기 이름을 적곤 얼굴 가득 영업용으로 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다. 지금 까진 못 느꼈지만 정말 회사원으로 보인다. 이 선생님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지금부터 시작하시면 된다고 말했다.

 

흠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솔뫼의. 아니 여러분과 함께 공부해 나갈 이무용이라 합니다. 잠깐 이야기 들어보니까 왜 반을 옮겼는지 궁금해 하는 것 같던데 맞나요?”

네에.”

여러분들은 이번 학기에 여기 이 태블릿으로 공부하게 될 거에요.”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이 선생님을 바라본다. 이 선생님은 화려한 언변으로 아이들에게 시스템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홀린 듯이 조용히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험을 보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에서 질문 있는 학생 있나요?”

…….”

그럼 지금부터 한사람씩 나와서 한 상자씩 받아 가도록 하세요.”

 

아이들은 앞에서부터 한사람씩 나와서 태블릿 PC를 받아왔다. 이 선생님의 회사, AI솔뫼에서 직접 만든 학습용이라 게임은 물론이고 인터넷 서핑도 막혀있는 제품이다. 아이들은 받자마자 진짜로 게임이 안 되는지, 인터넷 연결이 안되는 지 확인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정창 자체가 열리지 않게 막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쌤 바탕화면이 너무 구린데 바꿀 순 없나요?”

하하, 쌤이 그거 만드는 사람들한테 건의해 볼게요. 정 선생님 오늘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

 

시계를 슬쩍 보자 이제 막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대충 30분 정도 남았네요.”

, 방학식 까지가 아니라 오늘 수업시간 남은 거요.”

오늘요? 방학식이라고 빨리 끝나진 않으니 6교시 까진 할 거에요.”

, 그럼 시간은 충분하겠네요. 자 여러분 전원은 다 켰으면 바탕화면에 있는 검사 앱을 실행해 주세요. 화면 떴나요? 떴으면 이름 입력하고 다음버튼 누르면 심리 검사지가 나올 건데 오늘은 이것만 할 거에요.”

 

앞에 앉아있는 아이 옆으로 가니 흔히 말하는 인성검사 문항 같은 설문 화면이 띄워져있다. 아이들은 아직 눈치 채진 못한 것 같지만 문항수가 상당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려울 만한 어휘가 몇 가지 보인다.

 

, 하면서 어려운 말이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면 손들어요, 쌤이 알려주러 갈게.”

.”

 

아이들은 화면에 집중했고 이틈을 타 이 선생님께 궁금한 점을 물어 볼 수 있었다.

 

이 검사의 원리요? 글쎄요, 원리자체를 설명 드리기엔 약간 어려울 것 같아요, 일단 저희는 교육모델을 여러 가지로 묶어서 분류했죠, MBTI는 아시죠? 16가지로 사람의 성향을 나누듯, 최대한 많은 교육모델을 나누고 학생들을 분류할 수 있는 설문을 만들었죠. 이렇게 설문, 검사로 모은 정보는 서버에 올라가 인공지능이 분석하여 학생의 상태를 판단하고, 다시 인공지능이 그 학생에게 맞는 수업을 제곧하게 될겁니다. 사람의 손이 들어가는 부분은.. 오늘처럼 태블릿을 나눠주고 관리하는 정도? 당연하게도 저는 이방법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말한 이 선생님의 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진지해보였다.

 

인간은 부족해서. 완벽한 교육을 해낼 수 없다 생각합니다. 중간고사가 기점이에요. 아이들은 세상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 정 선생님 전화오신 것 같은데요?”

 

스마트 폰을 확인해보자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있었다. 복도로 살짝 나와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정 선생님, 지금 바로 1층 회의실로 와주세요.]

지금 바로 말입니까?”

[, 이 선생님 계시죠? 아이들 그분한테 맡기고 빨리 와주세요.]

, 바로 가겠습니다.”

 

이 선생님께 간략하게 상황을 전달하고 1층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엔 저번과 마찬가지로 교감선생님과, 박 선생님, 주희가 앉아있었다.

 

정 선생님 자리에 앉고, 지금 선생님들을 부른 이유는, 에 그러니까. 선생님들 반에 학생이 몇 명 바뀌었죠?”

,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학생 몇 명이 1반이랑 바뀌었다고.”

. 그러니까.”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말을 꺼내기 어려워하는 교감선생님의 말을 끊고 박 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최근 일주일정도 학교에 안 나오시는 것 같던데 못 본사이 흰머리도 늘고 주름도 늘은 것 같다.

 

이번 특별반운영이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두 반을 비교해서 더 좋은 교육방법을 찾는 것 아니었나요?”

겉으로는 그렇지만.”

 

박 선생님은 책상위에 놓여있던 파일에서 보고서로 보이는 종이 몇 장을 꺼내 나와 주희 앞에 놓았다. 종이 맨 위에는 AI기반 교육인력 조정계획이라 적혀있다.

 

“NICE서버 안쪽에서 발견한 계획서일세, 이번 특별반운영을 기반으로, 현직 교사들의 수를 조정한다는 것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난 아직 일을 그만둘 수 없네.”

 

앞에 놓인 계획서를 한 장 넘긴다. 실험학교와 학급 규모, 각 전문가의 예측과 기업, AI솔뫼에서 내놓은 예측이 적혀있었다.

 

계획은 2학기 말까지 일세, 이번학기의 성적을 평가해서 특별반이 더 높으면 교사의 인원을 줄일 것이고 대조반의 성적이 높으면 지금의 현황을 유지하겠지. 그래서 특별반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대조반으로 옮겼네.”

 

박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으시곤 말을 이었다.

 

미안하네……. 이게 내가 말할 수 있는 마지막 양심이야.”

어우 박 선생 일어나요, 정 선생님보고만 있을 거예요!”

 

교감선생님이 박 선생님을 일으켜 세웠고 어정쩡히 서있던 나도 박 선생님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박 선생님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하지 않는다. 교감선생님께 눈으로 인사를 하고 주희를 데리고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회의실밖에 나오자 주희가 조용히 말한다.

 

박 선생님께선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려고 하신 것 같아요. 반을 옮긴 아이들을 보면 단순히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아니라 수업에 잘 따라오는 아이들 위주로 옮기셨어요.”

그래…….”

저도 박 선생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해요. 컴퓨터가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에 거부감도 있고 이제 막 학교에 왔는데 잘릴 거라 생각하니 불안하기도 하고..”

나도 그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특별반 아이들은 처음 1주일가량 거의 설문지와 테스트만 하더니 그이후론 태블릿PC를 보며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화면을 보며 수업을 듣는다. 몇몇 아이들은 공책에 필기를 하기도 하고, 남들에게 잘 안들리게 중얼거리며 수업내용을 따라하기도 한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잠깐 화제가 되었지만 실제로 수업에 들어가는 선생님이 없으니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반면 대조반은 꾸준히 화제가 되고 있다. 아주 좋은 수업태도, 담당선생님들이 정성들여 만든 수업 자료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피드백이 주고받아졌다. 물론 이 뒤에는 박 선생님이 각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부탁한 결과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중간고사를 치르고 각 반에 대한 점수통계가 나왔다. 주요 과목의 평균을 보면 국어 72, 수학 61, 영어 77, 사회 84, 과학 75점으로 선생님들 예상보다 잘 봤다는 평이었고 특별반과 대조반만 비교했을 때 특별반은 평균정도에 걸쳐있는 반면 대조만은 3학년 중 가장 높은 성적을 받았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선생님들은 역시 AI는 안된다고 하지만 정작 사정을 아는 선생님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중간고사 때 이무용 선생님은 문제를 출제하지 않았다.

 

특별반 아이들은 오직 AI수업만 받으며 직접 배우지 않은 채 시험을 봤고 평균에 맞는 점수를 맞았다. 또한 특별반 아이들이 점점 AI수업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데 반하여, 대조반 아이들은 여느 중학생들이 그렇듯 점점 흐트러지고 있었다. 박 선생님은 담당서생님들을 독려하며 분위기를 잡아가려했다.

 

요즘 담배를 많이 태우시네요.”

, 정 선생……. 글쎄.”

 

교문 밖 학생들한테 보이지 않게 담배에 불을 붙인 박 선생님. 저번학기만 해도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던 분이 요새 들어서는 쉬는 시간마다 담배를 피우러 가시는 것 같다.

 

정 선생, 내가 틀린 걸까?”

무슨 말씀이세요?”

특별반 말이야. 내 생각보다 잘 운영되는 것 같더라고. 서은이 알지? 작년에 선생님 반이었던 애.”

 

화단에서 채송화를 보던 서은이가 떠오른다. 저번 특별반에서 대조반으로 이동한 학생 중 하나가 서은이였다.

 

, 무슨 일 있나요?”

서은이를 대조반으로 옮긴 이유는 서은이가 질문도 많이 하고 다른 아이들과 사이도 좋아서 수업분위기를 좋게 이끌어 갈 거라 생각해서 였는데 요즘들어선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아.”

그런가요?”

, 짐작 가는 거라도 있나?”

 

머릿속으로 작년에 있던 일이 떠오른다. 중간고사를 망친 서은이가 풀죽어있었고 아이들이 위로해 주며 넘어갔었다.

 

작년에 시험을 못 봐서 약간 풀죽어있었어요. 얼마 안가서 다시 활발해졌지만.”

시험이라……. 그러고 보니 짚이는 점이 하나있는데……. 아니야. 고마워.”

 

박 선생님은 담배를 끄고 학교로 들어가셨다. 문득 채송화 생각이나 화단의 꽃이 핀 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자란 잡초가 키 작은 꽃을 흔적도 없이 가리고 있었다.

 

다음날 오후 주희에게 문자가 왔다.

 

[선배, 어떡하죠?]

[? 무슨일 있어?]

[아니, 박 쌤이요. 애들을 크게 혼내서 애들이 막 운대요.]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오른다.

 

[최근에 서은이 한테 무슨 일 있었니?]

[서은이요? , 박쌤이 오답노트를 했는데]

[반 전체 아이들이 틀린 문제를 모아서 5번씩 써 오는걸 숙제로 냈다고 해요.]

[ 근데 서은이가 많이 틀려서 아이들 사이에서 미움을 좀 산 것 같아요]

[그게 박쌤이 애들 혼낸 이유라고 하고 싶은 거예요?]

[아니야, 이따 종례시간에 가서 애들 위로 잘 해줘.]

 

시간은 다시 흘러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왔다 추워진 날씨만큼, 학교의 분위기도 점차 차가워져 갔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있던 곳은 대조반이다.

아이들은 박 선생님께 혼난 이후로 쉽게 웃음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아무런 반응 없이 수업을 듣는 게 전부였고 대조반에 수업을 들어가는 선생님들은 그 불안감을 느꼈지만 쉽게 해결될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일반 학급에선 이미 이렇게 변한지 오래이며, 선생님들이 늘 접하는 수업 분위기 이기도 하다.

늘어지는 분위기,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거나, 수업에 맞는 교재가 아닌 다른 교재를 꺼내 혼자서 문제를 푸는 아이들.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학급의 풍경이다.

시험 2주전 이무용 선생님이 다른 교과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기말고사 문제에 상담하기 시작했다. 이 선생님이 문제를 준비해 미리 교과 선생님들과 맞춰서 풀이를 해보고 시험에 낼 수 있도록 난이도 조절을 하는 것 같다.

 

정말, 문제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그래도 5과목 준비하느라 고생하셨어요.”

사실 AI가 만들어낸 문제라 제가 고생한 것은 없긴 합니다. 하하

 

이 선생님은 옆자리에서 시험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이 문제들 전부 AI가 만든 거예요. 원래 난이도를 5단계로 나누어서 초급, 중급, 고급 난이도를 준비했는데, 이번 기회에 좀 더 난이도를 세분화 하도록 해야할 것 같아요. 확실히 현장에 나와야 고쳐야 될 점이 잘 보이네요.”

기말고사 결과 나올 때까지 학교에 계실 건가요?”

, 이왕이면 학교에서 마감 보고서까지 쓰고 가려합니다. 사실 이미 반쯤 완성해 놨어요.”

벌써요? 아직 시험 보지도 않았는데…….”

결과는 뻔합니다. 특수반이 이겼어요. 돈을 걸어도 좋습니다. 그만큼 자신 있어요.”

 

이 선생님은 이미 결과를 예상한 것 같았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중간고사 때는 이 선생님 쪽이 문제를 내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 선생님이 출제한 문제가 끼어있으니 특수반 아이들이 조금 더 유리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확정짓긴 어렵지만.

 

기말고사가 끝나고 시험 결과가 나왔다. 전체 평균은 국어 77, 수학 58, 영어80, 사회 84, 과학 88점으로 중간고사랑 비교해 봤을 때 수학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문제가 쉬웠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수반과 대조반은, 놀랍게도 대조반이 압도적인 성적차이를 내며 특수반을 압도해 버렸다. 교감선생님은 박 선생님에게 그럴줄 알았다며, 칭찬섞인 말을 건넸고 내 옆의 이무용선생은 이럴줄 몰랐다며 거의 완성시켜놓은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고 있다. 내 예상과도 반대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나 또한 특수반을 마무리하는 서류를 작성하고 퇴근할 때 주희로부터 문자가 왔다.

 

부르르--

[선배 전화주세요.]

 

무슨 일 있나?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

선배 어떡하죠? 전 전혀 몰랐어요.”

, 무슨 일인데 그래.”

저희 반 학부모 한분이 전화가 왔는데 미리 준 시험문제에서 안 나온 부분이 있다고 항의전화가 왔어요.”

?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시험지가 유출된 것 같아요.”

 

주희가 전해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박선생님이 기말고사 시험지를 몰래 학부모들에게 전해주었고 그로인해 대조반 아이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단 것이다.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라 고등학교 입시에 적용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큰 문제가 아닌가? 주희에겐 일단 알겠다고 교감선생님과 상의해보자고 전한 뒤 교문 밖 흡연 장소로 박선생님을 찾으러 간다. 그렇게도 절실한 마음이었을까.

 

교문으로 가는 길, 화단 한편에 이제는 말라버린 채송화가 눈에 담긴다, 겨울에 들어선 만큼 풀이 말라버린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교사도, 이제 겨울을 맞은 것 아닐까.

 

안태승(전자공학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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