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과로사가 웬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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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과로사가 웬 말이냐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20.08.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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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제작된 ‘2020 연극 전태일-네 이름은 무엇이냐를 보고 노동자라는 존재, 위치에 대한 생각에 빠졌다. 이 연극은 평화시장에서 전태일이 활동했던 1960년대의 노동환경을 여실히 보여줬다. 직급, 직책으로 불리면서 이름 없이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헌법 10조에서 말하는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 가고 국가의 구성원이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연극이 끝나고 50~60년 전과 어딘가 닮아 있는 2020년 노동자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불과 몇 주 전 내가 사는 지역의 택배기사 한 분이 돌아가셨다. 택배 업무가 없는 일요일이었지만 출근해서 터미널 주변 잡초 제거 작업을 하다가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4년간 택배 일을 해 온 택배기사 이 씨는 한 달에 택배 약 10,000개를 배달했다고 하는데 한 달을 30일로 잡았을 때 하루에 대략 330여 개를 배달한 셈이다.

주변 동료들에 따르면 이 씨는 담당한 지역이 넓은 지역이어서 거의 매일 밤 10~11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동료들은 이 씨가 그렇게 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낮은 배달 수수료를 지목했다. 그가 받았던 배송 수수료는 건당 600원이었는데 노조는 도시에서 600원은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에 노조 측은 대리점 소장이 수수료 일부를 가로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CJ대한통운은 수수료가 정해져 있지만, 대리점에서 기사들에게 물량을 줄 때 대리점에서 수수료를 떼고 주는 경우가 현장에서 자주 일어나는데 이 씨도 그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씨는 CJ대한통운 외에도 롯데, 한진택배의 택배까지도 배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원칙상 이는 금지돼 있지만, 터미널 소장들이 영업을 통해 다른 회사의 택배를 가져와서 기사들에게 배송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9명의 택배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는데 그중 7명이 과로사라고 한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이 밖에도 최소 5명의 택배 노동자가 더 과로사했다고 밝혔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택배 노동자 산재 사망은 한 해에 평균 약 2.25명이었다. 2020년 상반기 통계로만 봐도 한 해 평균의 3~5배 정도의 택배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한 셈이다. 여기에 택배 노동자 5만여 명 중 7,000여 명만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택배 노동자 중 산재 사망자의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택배 수량이 늘자 택배기사들은 몇 달째 혹사당했고, 노조는 부디 하루만이라도 쉬게 해달라고 외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택배기사의 간절함과 국민의 성원이 모여 814일 금요일은 택배 없는 날이 되었고 쉬지 못하는 그들에게 단비 같은 휴일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들 중 다수는 휴일 이후 감당해야 할 밀린 택배 생각에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고 한다. 이 문제는 모두가 공감하듯 814일 하루 쉰다고 해결된 문제는 결코 아니다.

전주의 한 공무원이 코로나 대응 업무를 하다가 과로사로 순직했다는 소식이 들린 지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언택트 사회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노동자들의 과로를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택배기사와 공무원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과중된 격무에 시달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의료계 종사자들이다. 그들의 노고를 응원하기 위해 덕분에 챌린지가 등장하기도 했고 의료현장에 대한 문제들을 해결해달라는 목소리가 담긴 기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문제 해결은 당당 멀어 보인다. 더운 날씨 속에서 방호복을 입고 밀려드는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은 꿋꿋이 버텨왔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지금, 이대로 라면 누구 하나가 갑자기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최근에는 의사들의 집단 휴진으로 본래 맡지 않는, 맡아서는 안 되는 일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까지 맞닥뜨리면서 그 힘듦은 점점 과중되고 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전공의들은 원래도 과로에 시달리며 업무를 감당하고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욱 힘들어하고 있다. 최근 뉴스를 통해 전공의들이 파업하는 이유를 보면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만이 든다. 코로나 시국에 파업을 감행하는 것을 좋게 보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소리에는 꼭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에 따라 전공의 근무시간이 일주일에 80시간을 초과할 수 없지만, 의료계 종사자 대부분은 80시간을 넘어서 초과근무를 하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말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한다고 했을 때 하루에 약 13.3시간을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개혁안에 대한 이들의 외침을 이기주의라고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의견수렵을 통해 판단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이들이 이토록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의사가 더 늘어난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한 대책, 문제를 추가시키는 대책이 아니라 문제 하나하나에 필요한 조치들을 세밀하게 행해야 할 것이다.

원래 얘기로 돌아와서 의료인들도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 아무리 직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이들은 혹사당하는 것을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망하기 일주일 전, 일주일 동안에 129시간 이상 일한 고 윤한덕 전 센터장과 같은 사례가 더는 생기지 않아야 한다.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미루지 않고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삶의 끝은 죽음이지만 죽어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이 돼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고려하지 않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돈 때문에 사람들을 죽어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택배비 인상, 의료수가 인상뿐 아니라 그들의 실질적인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세심한 논의와 대안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2020년답게 노동자 모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근로 기준 위에서 일하며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보장받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예빈 (사학·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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