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회 솔뫼문화상 소설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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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솔뫼문화상 소설 입선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19.12.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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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

이윤서(유럽문화·13)

 

어른이 된다는 건 마음이 죽어가는 것, 확실히 공감이 간다. 그는 생각했다. 검게 물든 천장에 옅게 켜진 스탠드에 비친 그림자가 일렁인다. 약간의 한기를 느낀 그는 덮고 있던 이불을 다시금 덮었다. 가까워지는 겨울바람에 자취방의 온기가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다.

흘낏하고 스마트폰을 통해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3시다. 바라지 않던 학과 행사를 끝마치고 돌아온 것이 1시 반. 침대에 누운 시간은 2시다. 의미 없는 일로 시간을 보낸 지 벌써 한 시간가량이다. 내일은 수업이 오후에 있다. 시간은 여유롭지만, 슬슬 잠을 청해야만 한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응어리져 새어나오는 푸념은 그가 수면에 드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짜증일 수도 있다. 어째서 의미 없는 일을 한 걸까. 친하지도 않은 인물과 서로 합을 맞추고, 웃고 떠든다. 친한 친구를 연기한다. 너무나 가식적인 행동에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은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적더라도 맘에 드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인물이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그러하지 않다. 싫더라도 웃음 짓고 어울려야 한다. 그것이 사회생활이라고 한다. 자신이 서툴다는 건 알고 있다. 고치면 조금은 가시덤불과도 같은 앞길이 조금 나아질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마치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지 않은가. 자신은 고집이 쌔다. 그러한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동시에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야만 앞길이 편해진다니, 능력위주 시대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등학교는 포장도로였다. 그리고 졸업하자 비포장도로, 아니, 온갖 위협이 득실거리는 야생에 내놓였다. 현실을 알고 있다 생각한 참이지만, 알고만 있었을 뿐. 겪지는 못했었다. 그렇기에 여실히 그 고통은 배로 다가왔다. 진심으로 즐거워서, 웃어본 적이 몇 번이었던가.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험난한 야생이 끝나고 미래가 보장된 길이 올 일이 없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아득하게 이 먼 길을 홀로 걸을 수 있을까. 막연한 공포심이 용기를 집어삼켰다. 마음 한 편에서 한심한 자들의 마음이 이해됐다. 자신이 걷고 있는 이 글이 그러한 자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흘러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자신은 다를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희망했다. 그는 곧바로 무서운 생각을 마음 한 구석에 치워버렸다. 그리고 잠을 자기 직전, 자신의 자취방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저 남학생이 사는 집일뿐이지만, 그는 마음의 위로를 받는 듯했다. 밖은 사회다. 사회는 자신을 공격한다. 하지만 집은 어떤가? 보호할 뿐만 아니라 마음의 위로를 해준다.

사회를 경험하고 나면 온 몸에는 자상(刺傷)이 가득하다. 붉은 피는 나오지 않지만, 마음의 피가 새어나온다. 이럴 때는 집에 들어와, 나를 다독이며 봉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죽어버리고 만다.

그래, 어쩌면 집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서의 가장 중요한 의료기관이 아닐까, 그는 자기 나름의 진리를 내놓았다. 낮은 사회성을 대가로 찾아낸 진리. 그는 나름 흡족한 표정을 이불 안에 묻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집이 최고야.”

그는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유일한 빛을 끄고 집 안을 암흑으로 물들였다. 점점 나른해지는 좋은 감각이 그의 몸을 덮친다. 그는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서, 이마 반 쯤 감긴 두 눈을 감았다. 내일도 내일의 시련이 찾아온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꾸준한 시련의 선고,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게 삶이다.

그래도 집에만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에도 나지막하게 토해낸 바람. 그는 두 눈을 감았다.
 

이변이 일어났다. 세상이 무너진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 했을 때,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는 그저 이리저리 방 안을 움직일 뿐이었다.

조금 늦은 아침 10시 경, 눈을 뜨고 일과대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건 더 이상 그에게 있어서 이룰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막혀있었다. 창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흰색 벽이었다. 정확히는 흰색 파티션에 가까웠다. 무슨 공사로 인한 사고이겠지, 이리저리 밀어보아도 벽은 밀리지도 않고 요리부동이었다. 그래서 당황함을 애써 감추며 소리를 쳤다. 이봐요, 여기 벽 좀 치워주세요.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질 뿐이다.

안되겠다, 그는 그저 소리칠 뿐이 아니라 집 밖으로 나가서 확인을 해보아야겠다고 판단했다. 기름기 가득한 부스스한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외투를 대충 걸쳐 현관문으로 직진했다. 도대체 어떤 공사를 하면 이렇게 일을 할 수 있는 건가, 이 일은 집주인에게 이야기해야겠다. 대충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현관의 손잡이를 돌렸다. 무의식적으로 손잡이를 돌림과 동시에 상체를 앞으로 향했고 그대로 그는 문에 부딪혔다.

그는 그대로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나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의 표정을 스쳐지나간 생각에 얼굴이 새파래졌다. 두 눈은 커졌고, 몸에서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놀라서 쿵쾅거렸다.

그는 다시 일어나서 손잡이를 미친 듯이 돌렸다. 손잡이가 돌아갈 뿐이지,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당혹스러운 사실에 숨이 가빠져오고 그는 문을 미친 듯이 두들겼다. 옆 집 사람이 이 소리를 듣고, 자신의 집을 찾아올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 그는 미친 듯이 문을 두들기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10분가량 그는 아무런 소식조차 없는 채, 미친 짐승처럼 아무런 소리를 질렀고 결국엔 포기하기를 선택했다. 양손은 빨갛게 부어올랐고, 목은 찢어질 것처럼 아파왔다. 목을 만지자,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웠다.

초조함이 그의 등골을 타고 전신에 흘렀다. 자신은 감금당했다. 어째서? 원인을 찾아보지만 알 수 없다.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자신이 집채로 감금당하는 그런 악질의 범죄를 일으키는 원인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인물이다.

어느새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어렸을 적 고친 버릇인데 극한의 상황에서 다시금 발현된 것인가. 아무래도 좋다. 자신은 지금 감금당했다.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할 뿐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나가는 방법도 현 시점에서는 모른다. 그렇다면 이건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인가? 언제까지? 그러자 어떠한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냉장고를 살펴보았다. 그저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온 것이 생각난다. 제발 식량이 그대로 남아있기를. 그리고 그의 바람대로 냉장고 안은 그가 바라는 대로였다.

적어도 1주일은 버틸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바로 집 안에 수돗물을 확인했다. 물이 나온다. 죽음을 회피할 수 도 있다는 너무나도 고마운 사실에 그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서, 침묵을 삼켰다. 대처할 수 없는 사실이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누군가의 못된 장난이 아닐까, 그는 그러기를 바랐다. 모든 걸 용서해줄 테니, 그저 지금이라도 심각성을 느끼고 문을 열고 나와 장난이었다고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 누가 자신에게 이러한 일을 하겠는가.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다. 두려움과 억울함과 분노, 감정이 섞인 산물이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어째서 자신에게 이러한 시련이 주어진 것인가. 이 일의 끝에서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은 것인가? 죽음의 공포가 스멀스멀 땅에서 피어오른다. 애써 모른척하려고 하지만 막을 수 없다. 다가오는 현실이기 때문에,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서 그것에 대한 예방책을 구해야만 한다.

그는 애써 눈물을 닦아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멈춰있던 사고를 움직였다. 모든 걸 포기하고 받아들인다면 죽음이 더 일찍 찾아올 뿐이다. 저항해야만 한다. 살 방도를 모색해야만 한다.

그는 어느새 막힌 코를 훌쩍이고는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황을 파악해야한다. 무한할 것 같았던 인생의 끝이 코앞으로 다가온 순간이다. 그는 냉장고를 비롯한 부엌에서 식재료를 하나둘씩 꺼냈다. 자신이 가진 식재료의 양을 확인해야만 한다.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버티기 위해서. 그는 눈물을 훌쩍이면서 하나 둘씩 꺼냈다. 전부 꺼냈을 때는 제법 양이 되었다. 하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식재료에는 유통기한이 있으며, 많다고는 하나 일반 남성의 자취방 기준이다. 최대한 아껴 먹는다 해도 한 달이 최고일지 모른다. 그는 머릿속에 한 달이라는 시간을 채워 넣었다. 일종의 사형 선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다. 그 안에 탈출해야만 한다. 방법을 모색하고 타파해야만 한다.

가능할까? 거대한 의문이 떠오른다. 숨이 차오른다. 목적을 잃어 행동을 하지 않자, 자신이 처한 상황이 그의 폐를 짓누른다. 턱 막힌다. 미쳐버릴 것 같다. 그는 정신력으로 버티며 쉼 호흡을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자,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목적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차례대로 행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정했다. 전기가 나오는 지, 인터넷은 되는 지, 그러한 것들이었다. 만약 인터넷이 된다면 수중에 전자기기로 도움을 구해볼 수 있다. 그는 무력한 몸을 이끌며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전기는 잘 나왔다. 이유는 모른다. 집이 그 자리에 있는 방증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벽을 부수는 것도 시도해볼만 하다. 가능의 유무는 모른다. 그저 시도할 뿐이다. 인터넷은 어떠한가. 그는 두려운 마음과 약간의 기대를 품고서 스마트폰을 켰다. 연결은 되어있다. 약간의 기대감이 희열로 변해간다.

그는 바로 메시지 어플을 이용해서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들어가서 읽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내용의 전송이 불가능했다. 이러한 게 가능한 일인가? 희열로 변한 기대감은 절망으로 그늘 더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동시에 자신에게 처한 일이 일반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란 게 더욱 확연해졌다.

벌인가, 신이 나에게 주는 벌인가? 무신론자라서?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여러 의문이 머리를 파고든다. 해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이 범람하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졌다. 그럼에도 자신은 살아남고 싶다. 주저앉는 것보다는 그래도 발버둥치고 싶다.

홀로 외로이 죽어가다니, 얼마나 한탄스러운 끝인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사고의 영역을 확장했다. 인터넷을 확인해보면 밖의 시간은 동일하게 흘러간다.

그렇다면 며칠 지나면 이상함을 느낀 동기, 부모님이 자취방으로 찾아오실 거다. 그렇다면 자신에게도 고립 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 날 같은 희망이 생긴다. 버티자. 그저, 버티자. 그는 자신을 다독였다.

아주 약간이나마 긴장이 풀리자, 멈춰있던 허기가 몰려왔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식욕을 채우는 것으로 풀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무계획과 즉흥성은 명줄을 앞당긴다. 그는 휴대폰 어플을 이용하여 알람을 설정했다. 하루에 두 끼를 언제 규칙적으로 먹을지 정했다. 규칙만이 자신을 이곳에서 구원해주리라는 믿음이 내놓은 행동이었다.

이후 외부로부터 고립 된 만큼, 걸어 다닐 수 없다. 그로부터 오는 운동량의 손실은 분명 신체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1시간이나마 운동을 하는 걸로 정했다. 그렇게 그는 작은 원룸을 왕국으로 선포하고, 법령을 정하듯 차근차근 자신이 지켜야할 수칙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완성 된 규칙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보호하리라는 믿음에 그는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일종의 성취감이었다. 이후 그는 집에 사다놓은 식빵 두 조각을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우유와 함께 먹었다. 그의 기준에서는 최소한의 식사였다. 결코 맛있을 수 는 없지만,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남겨진 시간을 탈출의 방법을 모색하는데 투자하였다. 빛이 투과되지 않고, 오로지 전등에 빛을 의지하기 때문에 시간 감각이 매우 모호해진다. 임시방편으로 1시간마다 알람이 울리게끔 하였지만, 그럼에도 흐르는 시간이 몸을 빗겨나가는 감각이다.

인터넷을 통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검색해보았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해법 따위는 존재할 리 만무했다. 그저 화장실문이 잠겼을 때, 그러한 특정한 상황에서의 해결법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실망은 어쩔 수 없었다. 이후 그는 집에 존재하는 아령을 들고서 창문을 막은 흰 파티션을 두들겼다. 부셔져라, 부셔져. 한 가지 열망을 담고서 손에 무게를 담은 채 내리찍었다. 다만 흠집도 가지 않았다.

그저 지치기만 했을 뿐이다. 오히려 지쳐 배가 고플 뿐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정한 규칙으로 식사까지는 5시간가량이 남아있다. 그는 이를 깨물었다. 평소에 내뱉지 않던 욕지거리를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는 분노를 표출했다. 머리끝까지 채워져 있는 스트레스를 그는 어떻게든 내보내야만 했고, 그는 분노하는 것을 방안으로 선택했다. 그나마 회복되었던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새어나왔다. 냉정하게 있기 위해 노력한다하더라도, 그는 초인이 아니다. 그릇이 작은 그에게는 넘쳐나는 양이었다.

이윽고 고립이라는 공포가 그의 숨을 죄어왔다. 그는 이리저리 눈을 깜빡이며 침대에 앉았다. 부자연스러운 몸을 이리저리 만지며 흥분한 몸을 진정시켰다. 서러움을 억지로 입 안에 우겨넣고서, 그는 눈을 떨리는 몸을 강제로 고정시켰다. ‘살아남자라는 한 가지 생각만이 그를 이끌 수 있도록 생각을 고쳐먹었었다.

그는 욕을 토해내면서, 눈에 힘을 줬다. 결심이 결코 무너지지 않도록 양 옆에 지지대를 세웠다. 자신은 살아남고 마리라.

그리고 그렇게 3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자신이 세운 규칙을 절대적인 규율마냥 지키면서, 그는 생존을 이어갔다. 얼핏 보면 구도자의 모습, 하루의 2끼 소식을 하며 정해진 일정에 맞추어 기계처럼 행동한다.

꿈의 내용은 알지 못했지만 악몽이었다. 3인 연달아 악몽이 그의 꿈을 갉아먹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해내려 하지만 한사코 몸이 떠오르기를 거부한다. 그저 잠을 청하면 악몽이 자신을 괴롭히리란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 정신을 갉아먹는 악몽은 신체까지 깎아먹었다.

적응하지 못한 소식(小食)의 영향도 있으나, 악몽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의 몸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듯이 초췌해졌다. 지독하리만큼의 두려움은 잠을 청하기 거부하기까지 만들었다. 그럼에도 규칙은 지켜야만 한다. 입술을 깨물며 억지로 피로함에 잠을 청했다. 그런 하루를 반복했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곳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낼 수 없다고 깨달은 것은 바로 사건 다음 날이었다. 벽을 있는 힘껏 아령으로 두들겨도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창과 문도 안 된다면, 차라리 벽을 부셔보자. 그런 생각으로 벽을 때렸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시멘트벽이라도 흠이라도 나야 정상인데, 그런 일도 없었다. 그저 튕겨나가는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누군지는 모르나, 자신을 이 장소에 감금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한 것 같았다. 그는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내심 이해하고 있었으며, 더 이상 마음에는 절망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문뜩 스마트폰이 떠올랐다. 자신에게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다. 잠깐의 여가라면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마음이 죽는다면 버틸 수 없다.

그는 그저 연락만을 기다리고 있던 스마트폰을 다른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본래 자신이 사용하던 방식대로, 누군가의 생활을 훔쳐보고 자신의 오락을 위해서 말이다. 스마트폰에서 방송인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이질적이었던 자신의 집이 다시금 익숙해졌다. 평소의 공간이 다시금 자신에게 돌아온 것 같았다. 그래, 이것이 일상이다. 새파랗던 그의 얼굴에 붉은빛이 돌아왔다. 며칠 간 보지 못했던 밖의 세상살이는 너무나도 즐거웠다. 한 번도 위로 올라가지 못했던 입꼬리가 양 쪽으로 번졌다.

무력감이 가득하던 며칠간 찾아온 희열의 순간이었다. 그는 눈에 불을 키고서 미친 듯이 여가를 즐겼다. 죄악감은 없었다. 어차피 자신은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남겨진 시간을 무료하게 만들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무료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고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시간을 값으로 지불하고 유희를 즐겼다.

그러다가 생각이 지나쳐갔다. 자신이 즐거워한다는 이유로 이 스마트폰을 가져가는 게 아닐까. 두려움에 오한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옷을 주머니 있는 옷으로 갈아입은 뒤, 쓰지 않으면 항상 주머니 안에 넣어놓았다. 항상 자신의 범위 안에 있어야한다. 그에게 있어서 스마트폰은 신줏단지가 되었다.

꼬박 하루정도를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냈다. 자신이 다짐한 일과는 지켰으나, 과연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불 안에 숨어서 스마트폰을 만져, 세상살이를 살폈다. 자신이 도피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은 스마트폰에서 새어나오는 방송인의 목소리에 바로 지워졌다.

그러다가 수면의 시간이 찾아오고 나서야 약간의 죄악감이 들었다. 사실은 나갈 방법이 있으나 자신이 단순히 모르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자신이 보낸 하루는 하수구에 빠진 금과 같다. 약간의 초조함이 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고작 하루다. 내일부터 다시 착실하게 살면 되겠지. 목을 죄어오는 죄악감에서부터 회피하기 위해 자신을 달랬다. 열심히 방법을 찾아보자.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그래, 내일은 스마트폰을 쓰지 말고 컴퓨터로 정보를 조사해보자. 도움이 될 정보가 조금은 있을 거야. 반드시 그래야만 해.

그는 있는 힘껏 자기방어를 했다. 그리고 그런 근거 없는 긍정 속에서, 씁쓸함을 느끼며 두 눈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분명 자신은 괜찮을 거야. 그렇게 나지막하게 토해내는 자신의 마음 소리를 뒤로하며 그의 의식은 점점 악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딱히 탈출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 채로 시간이 지났고 그는 감금된 채였다. 생활 패턴은 그가 처음 정한 일정에서부터 많이 달라졌다. 다만 평소의 일상과는 매우 흡사했다.

그가 지키는 일정이란 식사 시간과 수면 시간. 수면시간은 때때로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초췌한 꼴은 그대로였으나,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더 이상 얼굴에 초조함은 묻어있지 않았다.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금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범인의 머리로는 마땅한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방법을 찾기 위해서 킨 컴퓨터, 그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초기의 목적과는 다르게 컴퓨터를 이용하였다. 처음은 그저 막힌 머리를 윤활하게 풀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목적을 잃고, 동기를 잃어버렸다. 거대한 욕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유희에 빠지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자 그를 가두고 있던 벽들이 기능을 달리했다. 사회로부터 자신을 차단시켜주며, 자신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태우는 일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어주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볼 것 없이, 향락을 지키면 되는 장소. 사고를 달리함에 따라 감옥 같았던 이 장소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더 이상 이 장소에서 벗어나려는 걸 포기했다. 삶을 포기하려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안에서는 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부모님이 밖에서 해결해주겠지. 그런 사고가 어렴풋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주일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부모님은 걱정하실 테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하실 거다. 자신은 그동안 굶어죽지 않기만 하자. 이런 생각이 지나가고, 마음이 사뿐해지며 절제의 끈을 놓았다.

그렇게 그는 자기 쾌락에 온전히 시간을 소비했다. 외부로의 차단은 그로부터 자기 관리 또한 뺏어갔다. 초췌해진 그의 몰골은 더 흉측해졌다. 오랜 시간 감지 않아 떡이진 머리와 더부룩하게 많이 난 수염은 그를 노숙자처럼 보이게 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크게 달라진 자신에 놀라기는 하지만,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았다. 남의 눈치를 볼 일이 없는데 굳이 자신을 가꿀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행색이 폐인과 같다는 건 진작 인지했다. 다만 인지에 항상 개선이 함께 되는 건 아니다. 자신의 미래에 낙관적이었던 그는 이 감금된 생활을 자신에게 주어진 안식이라 생각하며, 그저 즐기기만을 원했다.

의사소통이 제한된다는 점을 제한다면 그는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키보드를 두들기며 게임을 즐겼으며, 모니터에서 새어나오는 방송인들의 만담을 듣고 타인들의 삶을 훔쳐보았다. 밖을 나가지 않으니 줄어들어가는 통장의 잔고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타인과 만날 일이 없으니, 그로부터 오는 대인 관계 스트레스를 겪지 않아도 된다. 수업에 들어갈 수 없으니, 학업으로부터 오는 부담감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이 벽은 그야말로 완벽한 변명거리다.

매일 꾸던 악몽도 어느 샌가 꾸지 않게 되었다. 이 장소는 낙원이다. 초췌해졌던 그의 얼굴에 생기와 함께 살이 붙기 시작했다. 운동은 안하게 된 지는 오래되었다. 하루 두 끼의 소식도 시간감각이 모호해지자, 그냥 허기가 질 때 마다 먹기로 했다. 식량이 떨어지기 전 까지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겠지. 식량을 한 달로 나눈 것은 자신이 그저 과잉반응 한 것뿐이다. 자기합리화를 하며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지웠다.

빨리 벗어나고 싶다던 바람도 사라진지 오래가 되었고, 때가 되었을 때 문이 열리기를 바랐다. 시간 감각이 희미해져 오로지 컴퓨터 앞에서만 생활을 한다. 현실 세계의 규범이 통용되었다면, 자신은 버러지라고 불려도 무방하다. 하지만 다르다. 이곳은 일반적이지 않다.

그는 입가에 실실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쾌락에 열중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다시금 지났을 때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그것은 그의 절규와 함께 시작하였다. 식량이 동나갔다. 그 사실과 함께 안락했던 그의 자취방은 다시금 그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그는 허겁지겁 냉장고 안을 살폈다. 눈앞의 사실을 인지하기 싫어서,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 살피지 않았었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두 손이 벌벌 떨린다. 냉장고에 있는 식량은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고 쳐도 최대가 5일이다. 안대가 풀리고 보이지 않던 죽음이 코앞에 왔음을 깨달았다. 입술이 부르르 떨린다. 그는 인터넷으로 인간이 음식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찾아보았다. 5일도 못 버틴다. 물이 있다면 일주일. 으아아,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머릿속에 자신이 헛되이 보낸 시간들이 흘러지나간다. 자신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포기한 것인가. 향락에 빠져 지낸 시간이 어느 정도였던가. 그 동안 자신의 부모님은 나를 찾는 데 실패한 것인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등골에 오한이 드는 것이 죽음이 자신의 몸을 쓱 훑은 것 같았다.

미련한 놈, 누군가가 자신을 비난했다. 자신이다. 마음 한 편에 잠가두었던 죄책감이 봇물 터지듯이 밀려나왔고, 자아를 덮쳐버렸다. 자기비난의 목소리들 속에서 그는 자아를 가까스로 유지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다시금 흰색 파티션에 가로 막힌 창문을 미친 듯이 두들겼다. 죽지 않을 거야. 죽지 않을 거야. 미친 듯이 소리치며 문을 부셔보지만, 가능할 리가 없었다.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분함에 그는 아령을 집어 던졌고, 그의 뒤쪽에서 식탁이 부셔지는 소리가 났다. 이제 와서는 아무래도 좋다. 그는 미친 듯이 욕지거리를 했다. 그 욕지거리는 처음에는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세상에 대한 부조리함으로 이어졌다. 어째서 자신이 이러한 상황에 쳐해야 하는가. 신이라는 게 있다면 어서 이유를 말해봐라. 이성을 잃고 신을 욕해댔다. 그럼에도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제가 잘못을 했다면 달게 받을 테니깐, 제발 죽이지만 말아주세요.”

흐느끼면서 자신의 끝을 흥정해본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신에 물들여진 그는 두 손을 부여잡고 미친 듯이 기도를 하였다. 이러한 자신의 몰골을 보고 비웃어도 좋으니, 제발 이곳에서만 살아가게 해달라고. 앞으로의 삶을 평생 신도로서 살아가라면 그리 할 것이니. 이러한 고독 속에서 죽어가게만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렇게 그는 독실한 신앙자와 같이 침대 위에 무릎 꿇고 앉아서 신이 응답하기만을 바랐다. 시간 감각이 모호해질 정도로 그저 바라고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무의미한 시간이 지나갔고, 식량은 동이 났다. 그럼에도 그는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렇게 3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기운이 없다. 말할 기운도 없으며, 자세를 바꿀 힘조차 그다지 남았다. 끝내 신은 자신에게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어떠한 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깍지 낀 손을 풀고서 그는 해탈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운이 없어 넘어질 뻔한 것을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았다. 이윽고 그는 책상에 앉았다. 벌벌 떨리는 두 손으로 종이 한 장과 펜을 하나 꺼내서, 힘겹게 한 글자씩 써나가기 시작했다. 맨 위의 제목은 유서’.

생에 처음 써보는 마지막 편지는 담담하게 써졌다.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쓸까 고민했지만, 자신의 죽음이 정신병과 같은 것으로 포장되지 않기를 바라기에, 쓰지 않았다. 그는 담담하게 자기고백을 했다. 이는 마치 글로 쓰는 고해성사와 같았다. 자신이 얼마나 우둔하고 나태한 존재였는가. 자신의 인생은 회피와 자기합리화의 연속이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조차 자신은 글러먹은 인간이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의 인간됨을 알았음에 탄식하며, 그럴 일 없지만 인생의 기회가 있다면 다시금 바뀌고 싶다. 자글자글해진 눈두덩이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그 눈물을 닦는 일 없이 글을 써내려갔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좋아하는 인간은 없다. 전부 노력하는 것이다. 싫은 티 내지 않으며 남에게 호의를 주며 관계를 만들어간다. 그걸 모두가 서툴게 시작한다. 자신은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관계가 끝나면 이어갈 생각 없이, 노력 없이 그저 집에 돌아와 그걸 전부 닫아버렸다. 자신은 그저 노력하지 않는 겁쟁이였다.

더 이상 글을 쓸 힘이 없어지자, 그는 손을 놓았다. 그리고 유서를 옆에 고이 옮겨놓고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온 몸에 힘이 없다. 물만 먹고 일주일을 버틴다고 했던가. 다만 자신은 다른 것 같다. 기력이 없다. 아마 죽음이 다가온 것이리라. 어느 샌가 목덜미에 사뿐히 앉은 죽음의 손길에 잠깐 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받아들였다. 나라는 자아가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이다. 적어도 추하게 갈 수는 없다. 멋있게 받아들이자. 그는 담담하게 혼란한 머릿속을 깨끗이 지웠다. 그리고 두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리고 이내 그 순간이 찾아왔다.

딸깍.

그의 눈동자가 놀란 토끼처럼 커졌다. 그는 남아있는 힘을 억지로 끌어내어서 떨리는 몸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워 천천히, 한발자국씩 움직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그의 두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그는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문의 손잡이를 열었다.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눈앞에는 백색의 세계가 있었다. 어쩌면 죽음일지 모른다. 그는 담담히 눈을 감은 뒤 조용히 발걸음을 땠고 문을 넘어 그곳으로 향했다.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추락하는 느낌도 무언가를 밟는 느낌도 없었다. 그저 아침햇살에 지저귀는 참새의 소리가 귓가에서 맴돌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눈을 뜬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천장이었다. 익숙한 집의 천장, 옆을 흘낏 보았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있었다. 북받치는 감정이 가슴에서 울렸지만 그는 그것을 참아냈고, 조용히 한 가지 말을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그건 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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