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으로 가시오. 그쪽으로 걸을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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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으로 가시오. 그쪽으로 걸을까 하여”
  • 김혜미 기자
  • 승인 2019.06.03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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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만휴정에 들어가고 있다.
관광객이 만휴정에 들어가고 있다.

한 이방인이 말하길,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다 하였사옵니다. 이방인의 눈에 지금 대한은 빼앗길 틈도 없이 내어주고 있나 봅니다

20세기 초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던 미국은 필리핀을 식민 통치하는 조건으로 조선을 일본에 넘겨버리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한다. 주권을 뺏긴 채 조국과 이름을 달리한 상실의 시대는 앞으로 남겨질 이들의 시대로 전해진다.

대한민국은 올해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다. 뼈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린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지난해 우리는 힘없이 무너지는 조선 속 한 이방인의 쓸쓸하고 장엄한 모던 연애사에 열광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신미양요 시절 군함에 승선해 미국에 정착한 소년이 미군인 신분으로 조선에 들어온다. 그 후 이방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조선, 기록되지 않았지만 기억해야 할 무명의 의병, 동서양이 공존하던 맹랑한 시대, 그 속에서 조국과 이름을 뺏긴 상실의 시대를 깊이 그려낸다.

미스터 션샤인은 아름다운 영상미로 인기를 얻으며 드라마 촬영지 또한 우리의 발길을 사로잡는데 한몫했다. 드라마 속 이방인이 남긴 애수를 향해 걸어봤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드라마 주인공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에 위치한 만휴정은 유진(이병헌)이 고애신(김태리)에게 마음을 전했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빛이 감싸는 솔숲이 누각을 품고 있고 앞으로는 암반 위 계곡물이 쉼 없이 흐른다. 그 너머로 100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펼쳐진다. 이 반타석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수는 깊은 못을 이뤘다가 암반을 미끄러지듯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송암폭포다. 조선시대 문신 이돈우는 산이 더욱 높고 물이 더욱 맑았으며, 세 폭포가 연못을 이뤄 굽이마다 더욱 기이했다. 정자가 그 위에 있었는데 새가 놀라 날개를 펼치는 듯하고 꿩이 날아가는 것 같아 우리 고을 제일의 산수임을 알았다고 극찬했다.

송암폭포를 지나 몇 걸음 더 올라가면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라는 대사와 함께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다리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 발을 멈춘 사람들은 다리 위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러브를 외치며 그 순간을 담는다. 이곳에서 바라본 만휴정의 멋스러운 모습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우리가 봐야 할 곳, 만휴정

만휴정은 조선시대 문신 김계행이 만휴(늦은 휴식)’를 위해 지었다. 정면은 누마루 형식으로 개방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양쪽엔 온돌방을 둬 학문을 닦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그 안에 위치한 현판에는 쌍청헌이라고 적혀 있어 그 내력을 알 수 있다. 쌍청헌은 원래 김계행의 장인인 남상치의 당호였다. 남상치는 부귀와 거리를 두고 청백의 정신을 지킨 인물로, 1453년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폐위되자 묵계로 낙향해 쌍청헌을 짓고 조용한 삶을 살았다. 김계행은 148050세라는 늦은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돼 태장 당했으나 대사간에 임명됐고, 다음해엔 옥사에 갇혔으나 대사성과 대사헌에 임명되는 등 부침을 겪었다. 결국 70세라는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와 묵계에서 묵었다.

그 후 김계행은 장인의 숨결이 서려 있는 옛터에 그 정신을 이어가고자 만휴정을 지었다. 자신의 별장에서 세상과 절연하고 자신을 수양하며 늦게 얻은 휴식, ‘만휴를 즐겼다. 관광객 이창용(서울·56) 씨는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됐는데 만휴를 즐기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이곳에 있으면 책이 저절로 읽힐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단 하나의 보물, 청백

김계행의 호는 보백당이다. ‘보백은 김계행이 말한 우리 집엔 보물이라곤 없는데, 오직 청백만이 보물이다(吾家無寶物 寶物惟淸白)”에서 착안한 명칭이다. 이 한문은 반타석 바위에 새겨져 있다. 만휴정의 인문 정신은 바로 청백이다. 청백이란 재물에 욕심이 없으며 곧고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계행은 이를 매우 중시했다. 그가 81세가 되던 해 모든 가족과 친척이 모였을 때 몸가짐은 삼가고 남에겐 정성을 다하라며 경계의 메시지를 남겼다. 또한 그의 임종 때도 자손에게 청백을 전했으며, 장례는 소박하게 치르고 묘비를 세우지 못하도록 했다.

만휴정이 지어진지 500년이 넘었지만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변함없다. 이처럼 김계행의 아름다운 정신문화도 그 세월 속에 스며들었다. 이곳은 김계행에서 청백의 정신을 이어간 장소며, 유유자적한 만년의 휴식 공간이다. 그런 만휴정은 198612월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73호로, 201188일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82호로 지정됐다.

만휴정 보존이 잘 된 이유 중 하나는 단연 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다. 경북미래재단에 위탁받아 만휴정을 관리하는 강하륜 시청 문화예술과 담당자는 만휴정 주변 전경까지 문화재로 지정돼 수목 정비부터 정자 보수까지 관리한다만휴정 정자를 최대한 보존하는 선에서 보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명소, 고산정

고산정은 금난수가 청량산 암벽 옆에 지은 것으로, 19631월 보물 제182, 199211월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74호로 지정됐다. 이황의 제자인 금난수는 당시 선성의 명승지 가운데 한 곳인 가송협에 이 정자를 짓고 일동정사라 불렀다. 고산정은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주변 풍광이 뛰어나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금난수를 아낀 이황은 이 정자를 자주 찾아와 빼어난 경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이황의 시 서고산벽’, ‘유고산’, ‘고산견금문원등은 이 정자에서 탄생했다.

드라마는 이황의 시선을 역으로 담았다. 정자가 아닌 강 건너에서 한적한 풍경을 바라봤다. 청량산의 일부인 기암절벽과 고산정을 배경으로 유진과 애신이 나룻배를 타며 대화하는 장면은 우리의 마음을 간질였다. 미스터 션샤인처럼 뛰어난 영상미를 가진 드라마에서 나온 촬영지는 실제로 갔을 때 실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반면 이곳에서 잔잔한 강 위로 청량산과 조화롭게 서 있는 고산정을 올려다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드라마 속으로 가는 길

만휴정은 우리대학 정문에서 628번 버스를 타고 약 40분가량 이동 후 도보로 약 15분간 사람들이 향하는 대로 함께 걸어가면 나온다. 한편 고산정은 교보생명 앞에서 온혜 방향 567번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20분가량 이동 후 북곡, 가송 방향 567번으로 환승해 약 40분을 더 가면 도착할 수 있다. 이동 시간이 길어 따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창밖 풍경을 보며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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