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고집, 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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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고집, 고정관념
  • 안동대학교 신문사
  • 승인 2019.06.1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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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토요일 늦은 밤 TV에서 해주던주말의 명화는 나에게 재미있는 놀이였고, 문화적인 갈증을 해결해주는 수단이었다. 지금도 기억에 가장 남아있고 재미있었던 영화는 알 파치노가 주연한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이다. 다른 장면보다 알파치노와 가브리엘 엔워가 함께 추던 탱고는 여전히 나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포르 우나 카베사선율이 사춘기였던 나의 감성을 강렬히 자극했고, 그 음악에 맞추어 시각장애인인 주인공이 아무 어려움도 없이 탱고를 추던 장면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강렬한 인상 때문인지 나는 알파치노의 슈트는 검정색, 가브리엘 엔워의 드레스는 붉은 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몇 년전 영화가 재개봉하면서 다시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면이 다시 보면서 내 기억과는 달리 회색의 슈트, 검정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영화를 처음 봤던 1994년에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흑백 TV가 있었고, 흰색·회색·검정색 정도의 색으로만 장면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가장 좋아했던 탱고 장면은 나만의 느낌을 상상의 색으로 덧입혔을 것이고, 그것이 왜곡된 기억으로 남았던 것 같다. 결국 가장 좋아했던 탱고 장면이 예전보다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감동이 반감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 기억의 장면과 너무 다른 이질감에 영화가 표현했던 내용보다는 나의 기억이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았다.

흑백 텔레비전 시대를 지나 지금은 고화질 텔레비전이 일반화 되었고, 인터넷·모바일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다양한 색을 가진 매체들을 쉽게 사용하고 있다. 나는 이 모든 이런 모든 매체를 사용하는 혜택을 누리고 살아왔다. 이제는 텔레비전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영화를 보는 것에 더욱 익숙해졌고,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들을 손쉽게 이용하게 되었다. 개인방송 채널의 개설이 확대되어 다양한 영상을 올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콘텐츠도 기존 방송에 비해 제재가 비교적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소재와 내용은 더 다채롭고 자유스럽다. 우리는 스마트폰, 테블릿 PC로 쉽게 수많은 정보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산하는 역할을 가지게 되었다. 하루에서 수없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다양한 콘텐츠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렇듯 현재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개방성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다양성과 개방성을 가진 시대로 변화하고, 더 새로운 세대로 바뀌었는데도, 아직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흑백 텔레비전 시대가 지녔던 기억의 고집을 가지고 있는 사실에 가끔 놀라곤 한다. 기억의 고집은 편협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있으며, 상황이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편견으로 사건을 바라볼 때 나타난다. 가끔 뉴스 보도에서만 보던 장애, 동성애, 성별에 따른 혐오의 이야기들이 내 주변에서 들려올 때,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거나 사실을 호도하는 이야기가 거리낌 없이 전해질 때 내가 가진 기억의 고집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영화의 장면을 아직 오해하고 있는 것이 나의 기억의 고집이었고, 남자 또는 여자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었다. 나의 고정관념이 영화의 탱고 장면을 오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양한 특성과 개성을 가진 장애학생을 교육하면서 편견의 벽에 부딪치는 학생들에게 세상의 고정관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나 역시 아직 많은 고정관념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다만 우리 시대에 많은 새로운 매체와 다양한 콘텐츠들은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다양함속에도 편견과 고정관념을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가진 다름에 대한 이해와 인정, 그리고 사람에 대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기억의 고집인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학생들이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넘쳐나는 정보를 자신에게 맞게 구분·재생산하는 능력을 키우며, 다른 사람이 가진 개성과 특성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자세를 키울 수 있도록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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