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만의 뒤바뀐 판결, 낙태죄 헌법불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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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의 뒤바뀐 판결, 낙태죄 헌법불합치
  • 서영건 기자
  • 승인 2019.06.05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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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불합치 4, 단순위헌 3 ,합헌 2
2020년 12월 31일까지 일단 유효

 

1953년에 형법이 제정된 이래 존속되어온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에 헌법재판소(헌재)헌법불합치를 결정했다. 이로써 66년간 존재해온 법규가 삭제 수순에 접어들었다.

헌법불합치

헌법불합치 결정은 해당 법률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입법자의 입법 형성의 자유를 존중하고 법의 공백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해당 법률의 효력을 유지하는 결정이다. 이 결정이 있을 시 그 법률은 헌법에 위배되는 위헌법률이 되지만, 당분간 그 효력을 유지한다. 헌재는 낙태죄 규정이 20201231일 안에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여기에서 입법자란 법규의 제정 권력을 지닌 자를 의미하며, 이 사건의 입법자는 우리나라 국회를 말한다. 이번 선고로 국회는 헌재가 정한 시한 내로 낙태와 관련된 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도록 개정해야 한다.

낙태의 죄와 벌

낙태죄는 임신중절에 의해 태아를 살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범죄다. 현행법상 낙태죄는 임신 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어떤 방법으로 낙태를 했는지를 불문하고 임부가 낙태를 하면 처벌 대상의 범주에 속한다. 낙태죄는 5종의 유형이 있는데, 자기낙태죄 동의낙태죄 업무상 낙태죄 부동의 낙태죄 낙태치사상죄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헌재는 자기낙태죄와 업무상 낙태죄의 의사에 관한 내용(의사낙태죄)에 헌법불합치를 선고했다.

자기낙태죄는 임부 스스로가 약물 및 기타 방법을 이용해 낙태하는 것으로, 현행법은 이에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업무상 낙태죄는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임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하는 것으로, 이에 현행법은 자기낙태죄보다 형벌을 가중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선고는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에 한해 헌법불합치를 결정하고, 그 외의 낙태유형에는 합헌, 즉 유죄라는 의견을 유지했다.

헌재가 낙태죄의 위헌여부를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7년 전인 2012, 헌재는 합헌을 결정하며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낙태를 방지하기 위해 임부의 낙태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이고도 적절한 방법이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고, 인간으로서 형성되어 가는 단계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돼야 한다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고, 따라서 그 성장 상태가 보호 여부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며 낙태죄의 위헌성을 부정했다.

독일의 사례

1960년 이래 형법에서 낙태의 자유화가 논의된 것은 전 세계에 걸친 현상이었다. 낙태죄를 엄격히 처벌하던 독일은 1974년에 형법 개정을 통해 낙태가 임신 12주 이내에 임부의 동의를 얻어 의사에 의해 행해질 때는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 규정에 1975년 연방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보호는 원칙적으로 임신의 전 기간에 걸쳐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우선하며, 그 기간에 따라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며 위헌을 선고했다. 이에 독일 의회는 다시 형법을 개정해 제한적으로만 낙태를 허용했다.

이는 서독의 사례로, 서독에서는 낙태가 제한적으로 허용됐지만 동독의 경우 1972년 이래 임신 3개월 이내 낙태의 자유를 인정했는데 이는 1990년 독일통일 후 법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됐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연방의회와 연방헌법재판소간의 위헌판단을 거쳐 그 결과를 반영해 1995년에 낙태 관련 법규를 개정했다. 이는 임신 12주 이내에 임부가 낙태를 요구하고, 적어도 낙태시술 3일 전에 상담 후 상담증명서를 받아 의사가 낙태시술을 한 때에 낙태가 허용되도록 했다(독일 형법 제218조의 a 1). 또한 임부의 현재와 장래의 생활관계를 고려할 때 임부 생명의 위험 또는 육체·정신적 건강상태의 중대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낙태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는 임부의 동의를 얻어 의사가 시술하는 낙태도 허용된다(2).

헌법재판소의 판단

이번 사건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총 69회에 걸쳐 낙태시술을 해 업무상 낙태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가 제기한 헌법소원이다. 헌법재판관 9명 중 합헌의견을 제시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7명 중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 위헌의견을 냈다. 이중 헌법불합치 의견을 제시한 4명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 처벌하는 것 자체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긴다고 했다. 이는 낙태 처벌규정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자보건법상의 정당화 사유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며 낙태갈등 상황을 겪는 경우도 예외 없이 전면적·일률적으로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하고, 이를 위반할 때 처벌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입법자가 낙태의 형사 처벌규율을 재형성함에 있어 낙태의 허용기간, 사회적·경제적 사유의 명확화 등 태아의 생명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현을 최적화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할 수 있도록 주문했다. 아울러 입법자가 이와 같은 개선책을 법 개정을 통해 반영하기까지 현행법을 적용하되, 법 개정이 20201231일까지 이뤄지지 않으면 202111일부터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의 효력을 상실하도록 결정했다.

한편 단순위헌의견을 낸 재판관 3명은 마지막 생리일로부터 14주 무렵까지인 임신 제1삼분기에는 단순위헌 결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임부에게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다만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를 법률로써 규정하는 방식은 임신한 여성에게 낙태가 불가피한 사람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일 뿐, 임신한 여성에게 자기결정권을 부여하지도 보장하지도 않는다이는 사실상 그의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다는 의견을 냈다. 이를 근거로 임신 제1삼분기에는 사유를 불문하고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숙고와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고, 이로써 헌법불합치 4명과 단순위헌 3명을 합친 7명으로 위헌 정족수를 넘겼다. 그 중 다수의견이 헌법불합치이므로 이번 사건은 헌법불합치가 선고됐다.

합헌의견을 낸 헌법재판관 2명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면서 불가피한 경우에만 모자보건법을 통해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데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비해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보다 중시한 입법자의 위와 같은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은 낙태죄 적용의 예외를 뒀는데, 이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거나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임부와 배우자의 동의로 의사가 낙태시술을 한 경우에 한하고 있다.

이어 이들은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따른 낙태의 허용은 그 개념과 범위가 매우 모호하고 그 사유의 충족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도 어렵다결국 임신한 여성의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인데, 이를 허용할 경우 현실적으로 낙태의 전면 허용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해 일반적인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또한 헌법 전문(前文)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성관계라는 원인을 선택한 이상 그 결과인 임신·출산에 책임을 지는 것이 위와 같은 헌법 정신에도 맞는다낙태를 허용할 것인지 그리고 어느 시기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진지하고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다수 국민들의 의견이 도출된 다음 민주적 대의기관인 입법부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앞으로의 과제

이번 선고로 모든 낙태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헌재는 헌법불합치를 선고하면서도 낙태의 전면 허용이 아니라 일부분에 위헌소지가 있음을 판단했고, 입법자인 국회에게 재량을 부여했지만 이 역시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에 이재명 법학과 교수는 스스로 아무런 방어능력도 없고 사법상 또는 경찰법상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태아를 낙태로부터 실효성 있게 보호하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을 그 수단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출산을 지속할 수 없는 임부의 다양한 상황을 고려해 낙태를 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할 경우를 판단할 때에는 태아의 생명권을 포기할 만큼 중대한 법익이 인정되어야 한다낙태의 정당화 사유에 해당하더라도 낙태의 시기를 구분해 임신 초기의 낙태보다는 중기나 후기로 갈수록 그 요건을 어렵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낙태시술의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도 입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국회가 해결해야할 논점을 제시하고, 기존의 법률에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죄의 존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은 타당하지만, 모자보건법상 낙태의 정당화사유를 모두 수용하고 있는 점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전했다. 헌재로 들어왔던 낙태죄 폐지라는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에서 이를 두고 어떤 의견을 전개할지는 앞으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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