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보존처리로 후대에 기록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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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존처리로 후대에 기록을 전하다
  • 이예빈
  • 승인 2021.05.10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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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류 문화재 보존·복원에 필요성 느껴
우리 유산 지키고 전하는 역할 하고파
다양한 활동 참여해 경험 쌓길 바라
모든 경험이 다음 과정 하는 데 도움

 

자랑스러운 솔뫼인을 찾아 <62>   국가기록원 학예연구사, 최현욱(사학·00) 동문

전공을 살려 사회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인문계열에서 국가기록원까지 입성해 그 유명한 조선왕조실록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의 자리에 가기까지 쉬지 않고 경험에 경험을 거듭한 그는 사라져가는 기록을 지키고자 기록물 복원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선왕조실록을 관리하는 것에 대한 소회를 밝힌 최현욱(사학·00) 동문을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만났다.

역사가 좋아서, 부산에서 안동으로

고등학생 때 국사 선생님이 강의한 한국사가 너무나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그 영향을 받아 역사 교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역사가 좋아 고등학교 시절 경주시와 안동시 등에 혼자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하회마을도 그때 처음 가봤어요. 당시에는 인적도 드문 곳이었는데 그때 하회마을의 역사와 환경에 반했던 것 같아요. 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막연하게 안동시라는 지역에 동경도 있었고 당시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안동대를 선택해 대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끝없이 경험하고 생각하다

사학을 전공하면서 민속학을 복수전공으로 공부했습니다. 사학과에서는 1차 사료, 즉 기록된 역사적 사실과 유물, 유적지로 역사를 배우게 됩니다. 민속학은 사학과 달리 기록되지 못한 민중의 삶, 구전으로 이어져 온 개개인의 문화이자 역사를 연구합니다. 당시 민속학을 배우며 학문의 스펙트럼이 넓어졌습니다.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과 개인에 대한 개별성을 이해하게 돼 인상적이었고 민속학 복수전공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배영동 교수님의 ‘박물관의 세계’라는 수업에서 학예연구사라는 직업을 배운 것을 계기로 학예연구사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학예연구사 공부 모임을 만들어 5~6명이 함께 준비했습니다. 그러다 학예연구사 공부를 시작한 4학년 봄쯤, 사학과 임세권 교수님의 지도 아래 조교 선생님, 선·후배들과 지표조사 보조원으로 청동기 시대 유적 확인 조사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임하리 주변 산을 다니며 도굴된 무덤에 있는 유물을 찾는 의미 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교수님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지류 문화재 보존처리에 대해 말씀해주셨어요. 당시 박물관에서 ‘원이 엄마 편지’를 발굴했고 그 의미가 번역되며 많은 언론이 관심을 두던 시기였습니다. 무덤 안에서 발견된 ‘원이 엄마 편지’는 훼손이 심해 지류 문화재 복원처리를 했었죠. 그 사례로 임 교수님은 지류 문화재 보존처리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그 분야는 특별하고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길이기에 이 학문을 권유하셨죠.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짧은 기간 동안 각 문중에 보관된 목판을 조사하는 사업에 참여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각 문중의 목판이 일반 창고에 아무런 관리시설 없이 허술히 보관된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이렇게 나라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여러 기록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죠. 이를 계기로 문화재보존학이라는 것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용인대 문화재보존학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종합적인 학문인 문화재보존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학부부터 문화재보존학을 공부한 대학원 동기들의 보존학 지식을 따라가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지역과 환경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학과에 다니며 배운 것이 아무 의미가 없진 않았습니다. 문화재가 갖는 의미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적 접근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학부에서 한 역사학 공부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국가기록원에 들어가기까지

일반적으로 학예연구사가 되려면 석사학위뿐만 아니라 국공립박물관과 관련 연구소 등에서의 경력도 필요해요. 그렇기에 문화재보존학 석사를 마친 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하며 다년간 경력을 쌓았습니다. 최근에는 경력직 학예연구사를 채용하기도 해 국공립박물관 및 문화재 관련 공공기관의 입사 시기는 빠르면 30대 초반이고 40대에 되는 경우도 있어요. 국가기록원은 2016년에 입사했습니다. 그전까지도 박물관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에 지원했고 몇 번을 낙방한 후 2015년 국가 공무원 민간경력 채용에 응시했습니다. 이때 국가기록원에서 ‘기록물 복원’ 관련 학예연구사를 2명 채용하겠다는 공고가 나왔죠. 1차에서 PSAT 시험을 치고 2차 연구 활동, 관련 기관 경력 심사 등을 거쳐 3차 면접을 통해 선발됐습니다. 첫 발령은 2016년 4월에 고향인 부산에 위치한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에서의 근무였어요.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은 ‘조선왕조실록’, ‘지적원도’와 같은 중요기록물이 많아서 문화재보존학을 전공한 학예연구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조선왕조실록 보존관리와 중요기록물의 보존처리를 담당하는 학예연구사로 현재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기록 보존에 담긴 의미

기록물 보존을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할 유산을 후대에 안전히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현재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에서 조선왕조실록 태백산 사고본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역사를 전공했기에 전부터 보고 싶었던 조선왕조실록을 관리한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더불어 엄청난 부담감과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실록을 관리하다 보면 정말 우리 선조께서 기록물을 관리하기 위해 큰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을 한가지 예로 들어볼게요. 선조실록은 최초에 쓴 실록과 수정된 실록 총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광해군 시기 북인에 의해 편찬된 ‘선조소경대왕실록’이고 다른 하나는 인조반정 이후 서인에 의해 추가 수정된 ‘선조수정대왕실록’입니다. 공통적으로 이들 실록에는 서인의 영수였던 율곡 이이 선생께서 돌아가신 내용이 나오는데 두 가지 선조실록이 이를 다르게 서술하고 있어요. 최초 선조실록에는 이이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이조판서 이이졸(이조판서 이이가 죽다)’이라고 아주 짤막하게 한 줄로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인조반정 이후 서인이 중심이 돼 수정 보완된 ‘수정실록’에는 이이 선생의 죽음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이 선생 돌아가셨을 때 왕과 백성이 매우 슬퍼했고 발인에는 수많은 인사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는 내용도 담고 있어요. 그의 생애와 거쳐 간 관직 및 업적, 성품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정치적 성향에 따라 기록된 내용이 달랐어요. 하지만 기존 작성된 실록을 폐기하지 않고 수정실록까지 함께 보관한 것에서 역사의 평가를 후대에 맡기는 조선 시대의 기록문화 정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기록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역사적 사실을 통해 충분히 설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기록원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일제강점기 때 강제동원된 분이 남긴 기록물을 수집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국가기록원과 업무 협약을 체결한 곳 중 하나입니다. 이번에 이곳에서 소장하는 기록물의 복원처리를 지원했죠. 처리한 기록물 내용은 일본기업에 강제동원되거나 징병된 분의 명부와 주소록 등으로 해외에 있으면서도 조선인끼리 서로 의지한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었어요. 이 기록물을 잘 복원해 꼭 후손에게 영구적으로 전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최근 관심 있는 일

예전에는 정부에서 모든 공문서를 종이에 기록했습니다. 종이를 사용한 기록은 영구적이지 못하기에 1950~1980년대에 생산되고 사용한 종이는 갱지라 보관할 수 있는 시기는 100년 이하입니다. 그래서 스캔과 보존처리 작업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 한지를 제외한 양지인 경우는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해 쉽게 열화되고 파손될 위험성이 높아 보존관리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의 이용이 확대돼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정부에서도 생산된 모든 기록물도 전자적 형태로 남겨지게 됩니다. 이러한 전자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보안과 메타데이터의 정리 등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이공계 전문가의 참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백만, 수천만의 디지털 기록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데이터 관리에 관심이 높아지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전역 후 복학하고 나서 어떤 길로 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 고민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대학생 시절에도 같이 공부하던 선후배분들의 진로 고민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고민을 나눈 선후배들을 보면 지금 다양한 분야 각자의 위치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난관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조금은 일찍 경험한 인생 선배로서 몇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너무 책상에만 있지 않았으면 합니다. 학과와 동아리 활동도 즐기며 재미있게 생활하면 좋겠어요. 대학에서 주최하는 해외 교류, 어학 관련 수업, 답사 등 학생이 참여할 기회가 많고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어요. 지금은 더 잘돼 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학과와 동아리에서 하는 활동을 통해 타과에 있는 선후배와 소통하는, 주로 생활하는 반경을 벗어나 다양한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도 소중합니다. 그 경험이 저를 발전시키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과의 대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물론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면 불편하고 귀찮을 수 있겠죠? 학과 활동 또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교수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고민을 분명히 말하고 교수님의 조언을 잘 경청하길 바랍니다. 무조건 교수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찾아보고 결국 본인이 선택하는 거라는 걸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고민은 깊게 하되 결정되면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세요. 다음 과정을 위해 걸음을 내딛는 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고 쉽지는 않습니다. 가고자 하는 길이 어떻든 여러분은 그 과정에서 겪는 경험을 버리지 않길 바랍니다. 어떤 경험도 다음 과정을 나아가는데 분명히 도움이 될 거예요. 현재 내·외부적인 환경이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모르게 많은 선배가 유리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각자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느끼길 바랍니다. 분명 여러분의 자리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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