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시작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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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서 시작된 대화
  • 김혜미 기자
  • 승인 2019.06.04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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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이 전하는 언어의 소중함
손을 넘어 온 몸으로 말하는 수화
'한국수화언어교실' 현장
'한국수화언어교실' 현장

사랑과 꿈은 기적이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해도 번역 없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는 손으로 말하는 양양(진의함)’과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티엔커(펑위옌)’가 주인공인 대만 영화 청설의 명대사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말 대신 수화로 소통하는 남녀의 순애보가 다양한 감정의 결과를 만난다고 평했다. 이처럼 이 영화는 말이 아닌 손짓으로 감정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으며 수화도 하나의 언어라는 것을 말한다.

드라마에서도 수화가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차은상(박신혜)의 어머니는 언어장애인으로 수화를 통해 딸과 소통을 하거나 수화를 못 하는 사람과는 글로 소통했다.

가수 비투비는 노래 그리워하다안무에 수화를 넣어 많은 농아(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의 마음을 울렸다. ‘마음으로 보는 라이브에서는 농아인 박세현 양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화로 가사를 전달했다. 후반부엔 비투비 멤버 전체가 수화를 완벽히 구사해 더 큰 감동을 줬다.

본사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안동에서 열리는 한국수화언어교실현장에 찾아갔다. 안동시수화통역센터(수화통역센터)는 한국수화언어교실 수업 준비로 분주했다. 수업은 회화반, 입문반, 고급반으로 나눠 진행된다. 수업 시작 전 수강생들이 왜 수화라는 하나의 언어를 배우게 됐는지 그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가족을 품은 사랑 이웃에게도

회화반은 농아 강사가 직접 수업한다. 회화반 수강생 대부분은 농아 강사가 수업해 알아듣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김경은(24·임하면) 수강생은 처음에 걱정한 것과는 달리 너무 재미있다막상 수업을 받으니 선생님에게 내 의견을 말하기 위해 수화 연습을 더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수강생은 사회복지사를 준비하다가 이 교육에 참여했다. 김 수강생은 농아를 만나면 원활한 소통을 위해 수화를 배우기로 결심해 열심히 수강 중이다고 밝혔다.

이정화(56·용상동) 수강생은 청각 장애인 여동생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정식으로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 수강생의 동생은 어렸을 때 열병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청력을 잃었다. 청각 장애인이 된 동생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 결국 자퇴라는 길을 선택했다. 글조차 읽을 줄 몰라 필담도 할 수 없었고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는 수화로 대화를 나눴다. 그 후 농아를 보면 마음이 쓰여 어설픈 수화 실력으로 그들의 말을 대신 전달해줬다. 또한 수화교실로 인해 향상된 수화 실력으로 장애 가정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장관상까지 받았다.

이 수강생은 늦은 나이에 수화를 정식으로 배워 다른 수강생에 비해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수업할 때마다 동영상을 촬영하고 수업이 끝난 후 꾸준히 연습했다고 전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입문반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한다. 정현정(12·옥동) 수강생은 어린 나이에도 언니를 따라 수화교실에 첫발을 내디뎠다. 입문반에서는 표정 연습과 정확한 동작을 중점으로 가르친다. 정 수강생은 한 달 정도 배우니 표정 연습이 아직 어렵지만 재미있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타인을 돕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표유지(27·용상동) 수강생은 간호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수화를 배우게 됐다. 표 수강생 어머니가 일하는 병원으로 농아가 찾아왔는데 처음에는 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답답하고 미안한 마음에 수화를 배웠다. 그 후 농아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화만의 느낌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이에 표 수강생 어머니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 하는 딸에게 수화를 권했다.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김정현 입문반 강사는 수업에 열정이 넘친다. 처음에 그가 수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농아에게 POP를 가르쳤을 때부터였다. 통역이 있었으나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 후 수화를 직접 배우니 수화의 다양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강사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김 강사는 수화는 말과 비슷한 듯 다르다. 표현, 어순, 강조 등 다른 게 많아 배울 때 헷갈린다수강생이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잘 가르쳐 줄 것이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김 강사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수강생을 소개했다. 유독 표정 연습을 수줍어했는데 항상 끝나면 오늘 수업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는 갑상선 암을 앓은 후 수술 자국이 남아 있어 우울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수화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었다고 한다. 김 강사는 수화는 단순한 언어 수준을 넘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말이다고 덧붙였다.

우연한 수업, 피할 수 없는 필연

수화를 배우는 계기가 특별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옥주(38·평화동) 수강생은 회화반, 입문반을 수료한 후 고급반으로 왔다. 이 수강생은 평소에 수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수업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시간 나는대로 와서 배우고 있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알고 싶어지는 매력이 있다고 밝혔다.

고급반을 담당하는 김옥경 강사는 직장 생활 중 수화센터가 생겼다는 소식에 친구와 함께 수화를 배우러 방문했다. 처음 배우는 수화는 흥미에 그치고 말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다시 수화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 찾아와 지금까지 하다 보니 수화통역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게 됐다.

동시에 관용 수화를 중점으로 가르치는 교육까지 담당한다. 김 강사는 우연히 호기심에 배운 수화가 직업으로 될 줄 꿈에도 몰랐다지금 이 직업이 나에겐 필연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 강사는 수강생 중 한 명이 현재 우리는 다른 나라 말을 열심히 배우는 것처럼 언어의 한 종류인 수화를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그 학생 같은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나도 몰랐던 이상한 편견

박세슬(체육·13) 동문은 체육학과를 전공함과 동시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실습 장소를 수화통역센터로 정한 박 동문은 수화를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고 싶다며 말했다.

박 동문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은 수화가 세계 공용어며 오로지 손만 사용하고 모든 청각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수화는 세계 공용어가 아니다. 수화도 언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언어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외국어와 한국어가 다르고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으며 개인마다 특유 말투가 있듯이 수화도 마찬가지다. 또한 수화의 문장은 주동문과 능동문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 수화는 사동이나 피동 역할을 하는 형태소가 없기 때문에 공간을 이용한 주동문 형태만 사용한다.

둘째, 수화가 오로지 손만 사용해 표현하는 편견도 있다. 수화는 무표정에 손만 움직인다고 해서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시선 처리, 입 모양, 눈썹의 움직임 등 표정과 몸짓 크기를 사용해야만 정확한 표현이 가능하다.

셋째, 모든 청각장애인이 수화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입술 모양을 보고 말의 뜻을 이해하는 방식의 구화, 손바닥이나 종이에 글씨를 써서 대화하는 방식의 필담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다.

함께 사는 세상

마음속에 있던 사연을 들려준 수강생과 강사는 하나둘씩 교실로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함과 동시에 그들은 수화의 세계로 떠난다.

고급반 한쪽에 앉아 바라본 수강생과 강사는 수화라는 언어로 교감하고 소통한다. 하나의 수화도 모두가 스스로 참여하고 서로 바라보며 다른 세계의 언어가 아닌 우리의 언어라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울 땐 힘들고 지친 표정이 역력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교실 안에서 수화를 배우는 수강생의 표정엔 즐거움이 가득하다.

한편 한국수화언어교실은 안동시수화통역센터 3층에서 화요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3시간 동안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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