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은행나무, 아름다운 낙엽과 혐오스러운 악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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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은행나무, 아름다운 낙엽과 혐오스러운 악취
  • 이하성
  • 승인 2020.11.16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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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마다 발생하는 악취 전쟁
열매 맺는 암나무, 수나무로 교체
수나무, 수요 몰려 구하기 어려워

가을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거리를 노란빛, 빨간빛으로 물들이는 단풍이다. 이 중 거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아름다운 단풍을 지닌 데다 병충해에 강하다는 이유로 전국 곳곳에 심어졌다. 실제로 은행나무는 매연과 같은 각종 공해가 심한 도시 환경에 잘 적응했고 대기와 토양의 오염 물질을 흡수하는 정화 능력이 뛰어나 가로수로 매우 적합하다. 은행나무는 이런 여러 장점을 갖췄지만 열매에서 악취가 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은행 열매의 악취는 바깥 껍질에서 나는데 이는 나무의 열매 방어 수단이다. 바깥 껍질에는 은행산과 빌로볼 성분이 있어 피부에 닿을 경우 염증을 일으킨다. 이런 이유로 은행 열매는 동물을 통해 옮겨지지도 않고 열매가 무거워 자연적으로도 퍼지지 않는다. 야생에서 은행나무가 인간의 도움 없이 자생한 사례는 극히 드물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는 은행나무를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했다.
특히 한창 은행나무가 심어지던 90년대에는 현재처럼 수나무만 심는 방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기술이 없어 15년 이상 자란 은행나무만 암수를 구분할 수 있었다. 은행나무는 열매의 악취를 고려하지 못한 채 곳곳에 심어진 셈이다. 결국 끝까지 남은 암나무는 지금 악취를 내뿜는 애증의 가로수가 됐다.
은행나무의 암수는 눈으로 봤을 때 구별할 수 없어 각 지자체는 국립산림과학원에 은행나무 유전자 분석을 요청했다. 하지만 전국 지자체에서 같은 요청이 너무 많아 2017년부터는 유전자 분석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해당 기술은 2018년부터 4개 민간 기업에 기술 이전을 시작해 올해 3월에 완료됐다.
가을만 되면 은행나무 악취가 심하다는 민원을 반영해 각 지자체는 나무 종류를 다양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 가로수는 2005년 벚나무 29.1%, 은행나무 23.8%에서 2019년 은행나무 12.5%, 왕벚나무 12.0%로 은행나무 비율이 크게 줄었다. 또한 확보한 예산만큼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암나무가 크게 줄었다. 일부 지자체는 그에 그치지 않고 은행나무에 그물망을 설치하거나 진동 수확기로 낙과하기 전에 수거하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안동시 39,567그루의 가로수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9,492그루(49.3%)가 은행나무다. 2020년 안동시에 은행나무 관련 민원은 7건이다. 안동시는 민원이 접수된 나무의 가지치기, 열매 수거 등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그물망 설치, 진동 수확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김영식 안동시 공원녹지과 담당자는 “해당 방법들은 근본적 해결 방법이 아닌 임시방편이라 생각한다”며 “2021년에 문제가 되는 일부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 담당자는 “은행나무가 가로수인 노선이 정비사업 대상이 된다면 다른 나무로 교체하는 것 또한 논의 중이다”고 밝혔다.
한편 은행나무의 인기가 사그라들자 은행나무 묘목을 기르는 사람이 적고 그나마 있는 수요마저 수나무에 몰려 수나무를 구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우리대학 교목, ‘은행나무’
우리대학 교목은 은행나무로, 학내 가로수의 70~80%가 은행나무다. 학내 역시 열매 악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대학은 여느 해와 다름없이 미화직 담당자들이 교내를 청소하는 것으로 낙과에 대처한다. 하지만 청소하는 속도보다 낙과하는 속도가 빨라 바닥에 떨어진 열매들이 많다.
인문예술대 A학생은 “올해는 마스크를 항상 착용해 악취로 불쾌함을 느낀 적은 없다”며 “대면수업으로 교내를 오갈 때 혹여나 은행을 밟을까 봐 바닥을 보고 걷는다”고 말했다. 이어 A학생은 “가을이 오기 전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은행나무가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왜 해마다 총학생회가 열매 청소 공약을 하는지 이해했다”고 전했다.
박재섭 총무과 담당자는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또한 박 담당자는  “그물망을 설치한 다른 지역에서 그물망 낙하로 인명사고가 발생했으며 진동 수확기는 대여비가 상당히 많이 들고 나무를 손상하는 사례가 있어 두 가지 방법 다 고려하지 않는다”며 그물망 설치, 진동 수확기 사용에 대해 의견을 밝혔다. 박 담당자는 “학교의 교목인 만큼 학생들이 너무 미워하지는 말고 사랑해 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10월 30일 생활과학관 옆 도로에 은행이 잔뜩 떨어져 있다.
10월 30일 생활과학관 옆 도로에 은행이 잔뜩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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